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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고고관] 석기시대의 경주, 빗살무늬토기와 도구

younghwan 2011. 9. 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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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가 건국된 기원전 57년부터 고려에 멸망된 935년까지 약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도시로 대릉원을 비롯한 고분, 불국사를 비롯한 많은 절터들이 남아 있는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경주는 한반도 동남부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큰 강인 형산강과 태화강을 기반으로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던 국가이다. 이 지역의 역사는 기원전 수세기에 시작된 청동기시대부터 형산강 유역에 토착세력이 정주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 선사시대에는 이 지역에 주민이 정착해서 살았던 흔적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형산강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정착해서 살기에는 그리 적합한 땅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농경생활이 정착된 청동기시대부터는 형산상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지역에 정착하면서 일정한 세력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경주박물관 전시를 시작하는 석기시대 부분에 있어서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주거유적지가 없어서 그런지 유물들이 그리 많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고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는 감포지역 바닷가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박물관에는 경주동천동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 도구인 찍개가 전시되어 있고, 신석기 시대의 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여러지역에서 토기조각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다만 주거유적지가 발견되지는 않아서 단순히 이 지역을 이동하던 신석기인들이 남겼던 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석기시대의 경주
가장 오래된 흔적으로 감은사터가 있는 감포 대본리 바닷가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석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내륙의 강가에서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대본리 유적은 바닷가에 있습니다. 아마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이 달랐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토기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주로 해안가에 유적들이 있습니다. 울진 후포리의 모래 언덕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묻은 무덤이 발견되었고 울산 세죽리, 신암리 등에서는 조개무지가 발굴되었습니다 경주 황성동에서는 신석기시대의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지만 움집터나 다른 시설이 발견되지 않아 오랜 동안 거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식량을 찾아 이동하였기 때문에 신라를 건국한 사람들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것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찍개, 구석기시대, 경주 동천동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는 빗과 같은 도구로 토기에 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시간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각각의 개성을 토기에 무늬로 표현하였습니다. 옆에서 보면 비가 오는 듯하지만 아래에서 보면 빛이 나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처음 등장하는데, 주로 음식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다가 점차 다양한 용도.형태로 발전되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빗살무늬 토기, 신석기시대, 김천 송죽리. 전형적인 신석기시대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토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빗살무늬 토기편, 신석기시대, 경주 하서리


빗살무늬 토기, 신석기시대, 경주 황성동


빗살무늬 토기편, 신석기시대, 경주 황성동

신석기시대의 도구
바다에서 많은 식량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큰 낚시 바늘을 만들었는데, 웬만한 물고기는 입안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에 반해 강이나 가까운 바닷가에서는 그물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캐서 먹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그물추


이음낚시바늘, 신석기시대, 울산 세죽리


돌화살촉, 신석기시대, 경주


돌도끼, 신석기시대, 울진 후포리. 울진 후포리는 동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남한지역 동해안에서는 고성 문암리를 비롯하여 속초, 양양을 거쳐서 여러지역에서 선사시대인들이 거주했던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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