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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경주 효소왕릉 (사적 184호),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끈 효소왕의 능

younghwan 2011. 10. 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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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32대왕(재위 692~702)인 효소왕은 신문왕의 큰 아들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손자이기도 하다. 삼국통일 후 신라의 관제를 정비하고 당.일본 등과 수교하였다. 이학 교육기관인 의학을 설립하여 의학박사를 두고 중국 의학서를 교수하게 하고, 서시전과 남시전을 두어 경주의 시장을 활성화 시켰다. 동생인 성덕왕과 함께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효소왕릉은 경주 남쪽 불국사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생인 성덕왕릉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은 밑둘레 57m, 지름 15.5m, 높이 4.3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봉토분으로 자연석으로 둘레석을 쌓았으나 지금은 몇개만 드러나 있다. 당나라의 능묘제도가 도입되기 직전에 조성된 자연석으로 둘레석을 쌓은 고분에서 비슷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성덕왕릉과는 달리 석물을 세우는 등의 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왕릉으로 문무왕대 이래로 왜倭의 침입에 신경을 쓴 왕릉의 입지라고 볼 수 있다. 효소왕은 그의 아버지 신문왕을 위해 낭산 북쪽 황복사에 석탑을 세웠으며, 후대 그를 위한 불상과 사리를 추가하였다고 한다.



경주 낭산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효소왕릉은 자연석으로 쌓은 둘레석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왕릉에 비해서 약간 작아 보인다.


효소왕릉 앞에 있는 작은 혼유석.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효소왕릉


효소왕릉 주변의 소나무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앞으로는 철로가 지나가고 있어서 접근성은 그리 좋지 않은편이다.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몇분을 걸어들어와야 한다.


경주 낭산 북쪽편에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이 석탑에는 효소왕이 그의 부친을 위해서 이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사리함과 금동불상이 출토되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 아미타불좌상(국보79호)와 부처입상(국보80호).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각각 넣은 것으로 보인다.



신라 효소왕릉 (사적 184호), 경주시 조양동 산 8
이 능은 신라 32대 효소왕(재위 692~702,김이공)이 모셔진 곳이다. 토함산 서쪽에 있는 형제봉의 동남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구릉 말단부 서쪽에 있다. 능은 밑둘레 57m, 지름 15.5m, 높이 4.3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보호석인 둘레돌을 돌렸으나, 지금은 몇개만이 드러나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가까운 곳에 성덕왕릉이 있으다. 효소왕은 시장을 개설하여 경제력을 확충하고, 당나라.일본과 문물을 교류하는 등 국력을 키우는 데 힘썼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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