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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무덤의 변천과 껴묻거리용 와질토기

younghwan 2011. 10. 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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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들은 대부분 지배층의 무덤인 고분 발굴을 통해서 출토된 것들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삼한, 가야, 삼국의 고분들은 그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이며 가야를 제외하고는 초기에는 대부분 평지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으며, 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다. 무덤은 초기에는 현재와 비슷한 나무로 된 널무덤이 주를 이루었으며 후대에 들어서면서 돌무지 덧널무덤,굴방을 만드는 석실분으로 변했으면 특이한 형태로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독무덤의 형태를 한 곳도 있다. 후대에 화장이 성행하면서 뼈항아리를 묻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묻힌자들이 권위와 지위를 말해 주고 있다. 금관을 비롯한 장신구,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류,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토기를 비롯하여 금.은.유리 등으로 만든 그릇 등 다양한 형태의 물품들을 껴묻거리로 같이 묻어서 오늘날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무덤의 껴묻거리는 불교가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 형태는 간소화되고 부장품도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사찰이 많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6부가 힘을 합치다.
신라는 여섯 부족이 힘을 합쳐 세웠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보이는 박혁거세를 임금으로 추대하는 과정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여섯 부족이 커지면서 양부, 사량부, 본피부, 점량부, 한기부, 습비부의 6부로 발전합니다. 각 부는 독자성이 강하였지만 전체회의를 통해 6부의 대표 중 우두머리를 임금으로 뽑았습니다. 초기의 널무덤은 한 지역에서 연속적으로 대형 무덤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각부 사이에도 우열이 생기게 됩니다. 4세기 이후가 되면 경주의 중심 지역인 현재의 대릉원 주변에 대형 무덤드이 집중 분포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무덤의 변천
산 사람에게 쉴 집이 있듯이 죽은 이에게 집은 무덤입니다. 무덤을 만드는 행위는 시신과 영혼이 안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죽은 뒤에도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덤은 시대와 신분 등에 따라 그 크기와 부장품이 달라집니다. 신라는 5세기를 정점으로 화려한 황금을 묻은 거대한 크기의 무덤을 만듭니다. 왕의 죽음은 국가적인 위기이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사회적인 통합을 위하여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불교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생기면서 점차 크기도 작아지고 부장품도 줄어들게 됩니다. 죽은 왕의 넑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무덤과 그 안에 넣어둔 황금들은 당시 백성들에게는 회환과 슬픔이었겠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자랑이 되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널무덤.덜넛무덤, 경주 사라리 130호 무덤. 신라를 비롯하여 삼한시대나 가야의 무덤에서 삼국시대 초기에 많이 볼 수 있는 무덤의 형태로 한국식 동검, 와질토기, 철기 등이 많이 출토된다.

신라가 건국한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300년에 이르는 약 350년 동안 사람들이 죽으면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에 묻혔습니다. 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나무로 만든 널을 넣은 뒤 흙을 덮은 것으로 오늘날의 무덤과 비슷합니다. 한국식동검, 와질토기, 철기 등을 주검과 함께 넣었습니다. 널무덤에 뒤이어 나타나는 덧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따로 나무덧널을 만들고 그 속에 널과 부장품을 넣어 묻은 무덤입니다. 이중으로 주검을 보호하는 셈입니다. 덧널무덤은 2세기 중엽 무렵부터 나타납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돌무지덧널무덤, 황남대총북분. 경주도심 황남대총 등에서 볼 수 있는 무덤의 형식으로 덧널 위에 강돌을 높이 쌓아서 작은 동산을 만들었던 무덤의 형태로 도굴이 어렵기때문에 금관을 비롯하여 신라고분의 전성기 유물들 상당수가 이런 형태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신라에서는 왕이나 왕족 등 지배계층이 죽으면 돌무지덧널무덤에 묻었습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의 독특한 무덤으로서, 신라가 본격적인 왕권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4세기 무렵부터 시작합니다. 그 구조는 이전 시기의 작은 덧널무덤과 비슷하지만, 덧널의 둘레와 위에 강돌을 높이 쌓고 흙으로 덮어 작은 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금관을 비롯한 순금 및 유리제품, 칠기, 토기, 철기, 청동기 등 다양한 부장품들을 함께 묻어 당시 신라의 삶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돌방무덤, 포항 냉수리무덤. 무덤내부에 석축을 쌓아서 방을 조성하는 형식으로 삼국이 국가체제를 정비한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 무덤의 형태로 많은 유물들이 껴묻거리로 묻어두기는 했는데, 도굴이 많이 되어서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부여 송산리고분군의 무녕왕릉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6세기 중엽 이후, 돌무지덧널무덤 대신 돌방무덤이 새롭게 나타납니다. 율령의 반포와 불교의 공인 등 신라 사회 전반에 걸친 새로운 변화와 함께 시작된 무덤입니다. 돌방무덤은 경주 분지 주변의 낮은 구릉이나 야산에 주로 위치하며, 다듬은 돌들로 네 벽을 쌓고 그 위에 천정돌을 얹어 벽에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 있어 여러 차례 널을 안치할 수 있는 가족단위의 무덤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독무덤, 경주 인왕동 16호무덤. 독무덤은 한반도와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에 많았던 무덤형태로 삼국시대 이전에는 봉분을 만들지 않아 조사된 것을 거리 많지 않다. 전남 영산강 유역 고분군에서 출토된 독무덤이 잘 알려져 있다.

독무덤은 토기를 널로사용한 무덤을 말합니다.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난 독무덤은 근세까지 이어진 무척 오래된 무덤입니다. 삼국시대에는 두개의 항아리 입을 서로 맞대어 놓은 형태의 독무덤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독무덤은 대체로 어린아이들이 죽었을 때나 살이 썩은 뒤 뼈만 추려 묻는 세골장에 쓴 무덤입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전라남도의 영산강 유역에서는 사람 키보다 더 큰 독무덤들이 만들어졌으며, 그 무덤 안에서는 지배계층을 상징하는 금동관 등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뼈항아리, 경주 석장동 무덤

불교의 공인과 함께 신라 사람들 사이에 화장이 유행합니다. 주검을 불에 태우고 남은 뼈를 뼈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묻는 무덤입니다. 뼈항아리만을 묻는 경우도 있지만 석함을 마들어 그 안에 뼈항아리를 넣고 묻은 예도 있습니다. 뼈항아리로는 일반적으로 토기들을 썼습니다만, 중국 당나라에서 수입한 당삼채도자기나 유약을 입힌 항아리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와질토기
이전까지는 야외에서 토기를 구었지만 이제는 방처럼 밀폐된 가마를 만들었습니다. 환원염으로 구워져 회백색을 뛴 토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릇의 질이 달라진 것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에 사용되기 보다는 무덤에 껴묻거리로 주로 이용되었습니다. 와질토기는 영남의 독특한 문화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뚜껑굽다리항아리, 3세기, 경주 구어리


화로모양토기, 3세기, 경주 구어리


오리모양토기, 4세기, 포항 옥정리


뚜껑항아리, 3세기, 경주 조양동


새장식뚜껑항아리, 4세기, 포항 옥정리


짧은목항아리, 조양동38호, 조양동28호, 조양동 57호, 황성동, 조양동


항아리,  조양동 5호, 38호, 35호, 경주, 조양동 2호, 조양동


주머니모양 항아리, 조양동 5호,38호, 60호


화로모양토기, 경주

형식학
고고학자는 이것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어떻게 알까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형식학'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형식학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유물의 모양을 비교하여 만들어진 순서를 찾는 방법입니다.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형태, 형식, 양식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사용합니다. 형태란 그릇의 모양을 뜻합니다. 주머니호, 항아리와 같이 모양에 따른 기능의 차이를 형태라고 합니다. 형식이란 같은 형태에 속하는 토기 중에서 약간의 차이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양식이란 다른 형태의 것들 중 공통의 특징을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처: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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