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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경주 성덕왕릉 귀부, 생동감이 넘치는 거북받침돌

younghwan 2011. 10. 2.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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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왕의 둘째아들이자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손자인 성덕왕릉 앞에 세워졌던 비석의 받침돌이다. 비몸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으며 거북머리 또한 남아 있지 않다. 비석으로서 전체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조각수법이나 돌의 재질이 상당히 뛰어난 걸작으로 보인다. 거북은 모양은 근육질이 있어 보이는 크고 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발은 앞으로 나아 가련는 형상이다.  비몸이 없어져서 비석에 적힌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경덕왕때 만들었다고 삼국사기 기록에 남아 있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일명 '에밀레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성덕대왕신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성덕왕은 당나라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끌었으며 유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당나라문물을 많이 받아 들인 왕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에서 불국사라로 가는 국도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한 성덕왕릉 앞쪽에 남아 있는 성덕왕릉비의 귀부. 비몸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고 거북받침돌만 남아 있다.


이 거북받침돌은 머리를 비롯하여 훼손된 부분이 많아서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조각수법에 상당힘 힘있고 세련되어 있다. 땅을 딛고 있는 발이나 몸체에서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힘있게 땅을 딛고 있는 거북발. 후대에 만들어진 여러 비석이 거북받침돌에 비해서 조각수법이나 화강암의 재질이 상당히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거북의 등에 새겨진 벌집모양의 육각형 무늬. 태종무열왕릉 거북받침돌에 비해서 문양의 크기가 커진 것 같다.


비석을 올려 놓았던 자리. 이전에는 연꽃무늬였으나 이 거붇받침돌에는 당초문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거북받침돌위 뒷부분. 꼬리부분이 파손되어 있다.


뒷발은 앞발에 비해서 상세하게 조각해 놓고 있지는 않다.


뒷쪽에서 본 성덕왕릉비 거북받침돌


옆쪽에서 본 거북받침돌.



비석은 성덕왕릉에서 남쪽으로 조금 덜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덕왕릉 앞에서 본 거북받침돌


성덕왕릉



성덕왕릉 귀부, 경주시 조양동 666
이 귀부는 신라 성덕왕의 능비에 세웠던 받침돌이다. 거북머리는 깨어져 없지만, 발은 앞으로 나아 가려는 형상이다. 등에는 육각 귀갑무늬가 새졌고, 가운데에 비몸을 꽂았던 네모난 홈이 파여 있다. 여기에 새겨진 거북 등무늬나 당초문은 8세기의 신라 왕릉에 건립된 귀부의 제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신과 머릿돌은 없어졌지만 경덕왕때에 만들어 진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귀부는 6세기 이후부터 8세기 사이의 귀부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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