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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경주 도봉서당, 서원 형식의 재실

younghwan 2011. 10. 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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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무열왕릉과 진흥왕릉이 위치한 경주 서악동 마을에 소재한 도봉서당이다. 서당이라는 이름에서 조선시대 초급 교육기관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서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원은 원래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현들을 모시기 위해서 후학들이 세운 사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립교육기관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초기 서원들은 학덕과 지역에 기반을 갖춘 인물이 운영하던 서당에서 출발해 그를 모신 사당을 설립하고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학문적 업적보다는 문중 인물을 모신 사당을 중심으로 서원이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이런 서원에서는 문중사람들이 모여 지역 여론을 형성하고 붕당정치의 지역기반이 되기는 폐단을 낳기도 한 것이다. 조선후기 서원의 남설로 세금의 은익, 지역사회의 파당성 등으로 많은 폐해가 생겨서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실질적인 서원 기능을 갖고 있는 일부만 남게 되었다.

 경주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대 학자였던 황정을 기리기 위한 재실이 있던 곳으로 어떤 이유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앞쪽에 서악서원이 있어서 서원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후 전란 등으로 훼손된 재실을 후손들이 일제강점기에 서당으로 중건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봉서당은 건물의 규모나 배치에 있어서 서원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 건물은 강당과 사당이 있으며, 최근에 재실등을 건물들을 새로 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서 볼 수 있는 서당들은 대부분 이 곳과 비슷한 건립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주 도봉서당 강당. 일제강점기에는 서원이나 향교 등이 교육기관의 기능을 가지지 않았기때문에 실제로는 재실건물로 보아도 무방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건물 양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강당의 형태와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강당 건물은 중앙 2칸은 문살이 달린 대청마루인 것으로 보이며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도봉서당 강당 앞 마당. 일반적으로 강당 앞 마당 양쪽에는 기숙사인 동.서재를 두는 것이 보통이나 이 곳에는 마당을 비워두고 있다.


뒷편에 앞면 4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사당 건물이 있다.


서당의 기숙사라고 할 수 있는 서재는 최근에 크게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서당 출입문이 숭앙문. 솟을대문은 아니지만 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다.



경주 도봉서당, 경주시 서악동 709-1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황정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45년(중종1)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라는 묘하재실로 건립되었다. 이후 전란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 일곽을 중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서당은 숭앙문.도봉서당.추보재.연어재.상허당 등 모두 7동이며 일종의 서원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치형식은 재사를 강당 뒤에 둔 전강당 후재사형인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예이다. 강당은 정면 5칸. 옆면 1.5칸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옆.뒷면에 쪽마루를 둘렀다. 사당은 정면 4칸.옆면 1.5칸이며, 중당협실로 구성된 바로 볼 때 강당 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재는 남쪽과 동쪽면을 모두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여 두 개의 정면을 갖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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