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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토용과 십이지신상

younghwan 2011. 10.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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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유물은 삼국시대 내물마립간대부터 시작한 황금문화시기에 조성된 경주도심 대릉원 일대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사찰건립 등에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기때문에 이전 시대에 비해서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은 유물은 많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무덤에서 껴묻거리로 출토된 유물 중 대표적인 것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용과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역할을 기대했던 십이지신상일 것이다. 토용에서는 당사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이나 복식 등을 알 수 있으며, 함께 출토되고 있는 수레 등 생활용품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여인상과 문인상은 통일신라 복식에 대해서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법과 제도를 확립하다.
고대국가는 백성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법과 규정을 만들고 제도를 고쳐 나갑니다. 고대의 법률인 '율령'이 정비되는 과정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23대 법흥왕(재위 514~540) 7년에 율령을 반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6세기대의 비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주로 신분제도, 관등제, 재산권 등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여기에는 복식에 대한 규정도 있습니다. 신분에 따라 옷이나 장신구의 재질과 종류에 차별을 두었습니다. 7세기가 되면 당나라의 복식제도를 따라 다시 고칩니다. 경주 황성동과 용강동의 석실분에서 출토된 토용들은 이러한 복식제도의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출처:경주박물관>

토용은 무덤에 껴묻기 위하여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토용의 의복이나 모자 등 복식을 보면 매우 자세시 모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표정도 사실에 가깝도록 묘사해 놓았습니다. 함께 출토된 수레 등 각종 생활물품도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충실하게 나타내었습니다. 토용을 보면 당시 신라인이 생활했던 모습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 출토유물, 7~8세기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에서도 여러 여인상이 출토되었는데, 체격이 큰 여인상과 작은 여인상이 같이 출토되었다. 신분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강동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작은 여인상


용강동 무덤에서 출토된 문인상.


남자상


당나귀와 수레바퀴, 마구가 있는 말.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경주 황성동 돌방무덤 출토유물, 7~8세기


황성동 돌방무덤은 약간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복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황성동 무덤에서 출토된 동물상

여인상
7세기에 만들어지 경주 황성동의 돌방무덤에서는 인물상과 동물상 등 다양한 토용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중 여인상은 신라 여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머리는 가르마가 선명하고 살짝 묶어서 왼쪽으로 틀었습니다. 오른손을 아래로 늘어뜨려 병을 쥐었고, 왼손은 소맷자락에 가린 채 웃음을 머금은 입을 살짝 가리고 있습니다. 치맛자락 밖으로 살작 내민 자그마한 발끝이 수붑은 여인의 미소와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에서도 여러 여인상이 출토되었습니다. 체격이 큰 여인상과 작은 여인상이 있는데 신분 차이를 나타내는 듯 합니다. 황성동 출토여인상에 비해 중국 당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황성동 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포항 냉수리 돌방무덤 출토유물


뿔잔. 각배라고도 불리는 뿔잔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인데, 통일신라시대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장식구


세고리장식칼자루


금은반지

십이지상
십이지는 방위와 시간을 맡아 지키는 12신사으로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12종의 동물을 상징합니다. 십이지의 기원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 출현하였고, 수나라에 이르면 머리는 동물의 모습이지만 몸은 사람의 형태인 토용으로 제작되어 무덤에 부장됩니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때 유입되어 무덤조각과 불교미술에서 조각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게 됩니다. 처음에는 토우형태의 조그만 십이지상이 무덤내부에 부장되거나 무덤주위의 땅 속에 묻혀 방위신으로서 역할을 띠게됩니다. 그러다가 십이지가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확립되면서 신장상의 모습으로 무덤 둘레의 호석에 직접 조각되는데 평복과 갑옷을 걸친 두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십이지상이 조각되어 있는 무덤은 대체로 왕릉 내지 그에 버금가는 무덤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십이지상(돼지),  김유신무덤 둘레석을 장식하고 있던 십이지신상이다. 곱돌을 갈아서 만든 것으로 십이지신상을 대표하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십이지상(양), 8~9세기


십이지상, 돼지.닭.쥐, 8~9세기, 전 민애왕릉

전민애왕릉 출토 십이지상
이 십이지상은 1984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실시한 방성리 소재 전 민애왕릉의 주변 정리 때 발견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십이지상들이 선 자세이지만, 이 곱돌십이지상은 평복차림에 이른바 공수한 좌상입니다.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처리되었으나, 머리부분만은 그 동물이 갖고 있는 특징을 뛰어난 솜씨로 표현하였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십이지청동저울추, 통일신라, 경주 성동동


청동십이지상, 7~8세기, 경주 용강동


십이지상, 9세기, 경주 화곡리

경주 내남면 화곡리에서 1968년 수습조사된 십이지상입니다. 뼈항아리에 유골을 넣고 이를 돌합에 넣은 후, 둘레에 토제 십이지상을 묻었습니다. 십이지 중 3점(용,뱀,말)은 조사전에 이미 멸실되어고, 나마지 9점만 남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대형 무덤의 호석에 십이지를 둘러 무덤을 보호하는데 화곡리와 같이 작은 뼈항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둘레에 십이지상을 넣은 것은 처음 확인된 것입니다. 9세기의 장례풍습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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