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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충주 제금당,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동헌 별관

younghwan 2011. 10. 2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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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 도심에 위치한 옛 충주목 관아공원에 동헌인 청령헌과 함께 남아 있는 별관 건물인 제금당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 건물 중 동헌 별관으로 지어진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규모가 큰 편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새날개 모양의 익공양식이다. 영빈관이 관아 건물로서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서 동헌이나 객사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면 7칸 중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른쪽 2칸과 왼쪽 3칸을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꾸며 손님들이 묵었던 것으로 보인다.

 충주목은 고려시대에 처음 전국에 지방행정단위인 목(牧)이 설치된 이래로 구한말까지 유지되었다. 남한강 조운, 영남 내륙지방과 조령과 죽령을 통해 연결되는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교통요지로 종3품에 해당하는 목사가 수령인 큰 고을이었다. 보통 지방관아에서 손님을 맞을 때는 주로 객사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충주는 워낙 방문하는 인사가 많아서 그런지 영빈관 형태의 별관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에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새로 중수하여 연대가 그리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 1970년대까지 중원군청 군수집무실로 사용하다가 옛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충주 관아공원에 남아 있는 충주목관아 영빈관 건물인 제금당. 동헌 건물과는 달리 대청마루는 2칸으로 두고 양쪽에 방을 많이 두고 있다. 대청마루에도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문을 달아 놓고 있다.


일반 한옥이나 객사 같은 건물들은 행사나 연회 등을 위해 넓은 대청마루에 개방된 구조를 하고 있는데 반해 영빈관으로 지어진 제금당은 대청마루에도 문을 달아서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왼편 2칸이 오히려 행사나 연회를 할 수 있는 누마루 형태의 개방된 구조를 하고 있다.


충주 영빈관은 특이하게 겹처마에 간략하나마 단청을 하고 있다.


화강석 석재를 사용해서 쌓은 석축기단. 동헌 건물 등과는 달리 그리 높게 쌓지는 않고 있다.


제금당 앞 마당.


제금당 뒷편


온돌에서 연기가 나오는 곳으로 보이는데 별도로 굴뚝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뒷편 아궁이


충주관아 제금당 전경



조선 초기 관아건물로, 귀빈들을 맞이하던 영빈관으로도 사용했던 건물이다. 고종 7년(1870) 청령헌과 함께 불에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충주목사 조병로가 다시 지었다. 그동안 중원군수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1983년 원형을 살려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익공양식으로 지었다. 가운데 2칸은 대청, 오른쪽 2칸과 왼쪽 3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꾸몄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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