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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상이라 함은 부처의 형상을 회화.조각 등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조각상을 말한다. 불상에서 말하는 부처라 함은 여래의 상을 의미하는데 그 범위를 넓혀서 보살상, 신장상 등도 불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상은 불교가 탄생한 이래 수백년 동안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원래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Pagoda)이나 보리수,금강보좌 등이 불교신앙의 대상이었으나 불교가 서역을 통해서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리스나 이집트 등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지역과 인도의 마투라라는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하여 전파되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보여지는 부처의 형상인 불상에서는 사실적인 면이 강조되지 않아서 그리스나 헬레니즘문화권의 조각상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불상이 처음 생긴 간다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상을 보면 매우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있으며, 외형에 있어서도 그리스 조각상과 비슷한 특징들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어 보인다.

 삼국시대 불상을 보면 고구려 불상한 강건하면서 절제된 표현을 하고 있으며, 백제의 불상은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불교의 도입이 늦었던 신라는 소박한 것이 특징이었으나 삼국통일 후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사실적이고 빼어난 조각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를 대표하는 불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2점의 반가사유상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이 있으며, 석굴암 본존불상이 매우 빼어난 작품이다. 또한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룡사 금당에 모셔졌던 신라 3대보물 중 하나였던 금동삼존불상으로 추정되는 높이 5m에 이르는 황룡사장륙상이 유명하다.

 불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부처상은 일반적인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부처상이 있고, 실제 존재했던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석가모니불, 부처가 설법한 진리를 형상화한 비로자나불, 미래불로도 여겨지는 아미타불, 과거불이자 병을 고쳐주는 부처인 약사불이 많이 남아 있다. 부처 이외에도 부처를 모시는 협시보살로서 보살상이 또한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보살로는 미륵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이 있다. 또한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로 양쪽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아미타불과 협시보살로 양쪽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같이 있는 삼존불 또한 많이 남아 있다.

신라의 불교조각
불상은 불교의 교리와 신앙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불상은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 중국으로부터 들어왔으며, 6세기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한국적 조형감각이 두드러지는 불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삼국시대 고구려 불상은 강건함과 절제된 양감을 잘 표현하였으며, 백제 불상은 정교함과 세련미를 보인다고 한다면, 신라불상은 소박한 것이 특징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삼국 불상의 특징이 조화를 이룬 불상을 만드는 한편, 인도 굽타시대 불상양식의 영향을 받은 중국 성당양식이 도입되어 8세기에는 석굴암 불교조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불교 조각사상 절정의 불상을 만들어냈습니다. 9세기 무렵부터는 중국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유행하지 않던,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이나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이 널리 유행한 것도 주목할 점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석조불좌상, 경주 인왕동 출토, 7세기전반

이 부처는 인왕동 부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인왕동은 국립경주박물관 인근 동네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확한 발견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보통 부처의 이름은 부처의 손모양으로 알 수 있습니다. 손가락 끝이 하늘을 향한 오른손은 시무외인이라고 하는데,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반대로 손가락이 땅을 향한 왼손은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원인입니다. 그런데 이 손갖춤은 모든 부처가 할 수 있는 손모양입니다. 그래서 부처의 이름을 단정할 수 없습니다. 4등신에 가까운 신체, 동글동글한 얼굴은 장창골 미륵삼존불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러한 특징을 보이는 불상은 주로 7세기 전반에 조성되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석조불입상, 경주읍성 출토, 8세기

이 불상은 옆에 있는 불상과 그 재료가 다른데, 바로 사암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상은 대개 화강암을 재료로 하였습니다. 양질의 화강암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경주지역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불상의 재료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장인집단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재료의 강약에 따라 도구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정과 망치로 한 조각 한 조각 떼어내야 하는 화강암 조각에 익숙하던 장인이 조그만 힘을 주어도 돌이 깨져버리는 사망으로 불상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생김새도 무척 다릅니다. 우선 얼굴만 보면, 좌우폭보다 앞뒤폭이 유난히 긴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서양사람의 얼굴을 보는 듯 합니다 얼굴 생김새 뿐만 아니라 옷주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불상은 인도 굽타시대 마투라 지역의 불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석조불 입상

이 불상은 경주 남산 도당산토성 동쪽에 있는 왕정골 절터에 있던 것을 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약간 살이 오른 얼굴은 탄력감이 느껴지며, 옷 주름은 단이 져 있어 마치 실물을 보는 듯 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삼국시대 불상에서는 볼 수 없던 특징인데, 사실성이 강조된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받았기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통일신라 불상의 정수라 할 석굴암 본존불에서 볼 수 있는 사실적인 인체표현과 종교적 숭고미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바로 길쭉한 얼굴, 밋밋한 신체, 어색한 손 모양에서 받은 느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의 사실적인 불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물로 신라사람들이 자기화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바로 중국의 새로운 불상을 받아들이면서조각상이 아닌 그림을 모본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그림은 평면이기 때문에 입체로 재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왕정골 불상과 매우 비슷한 불상이 동국대학교 박물관 등에도 있는데, 모본을 단 한장만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장 그려 유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약사불, 경주남산. 약사불은 모든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주는 부처로서 대의왕불이라고도 불리는데, 약사불을 모신 불전은 지금은 그리 많지 않은데 비해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곳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1930년대 경주 남산의 개선사터에서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경주읍지'에 따르면, 개선사는 금오산 동쪽 기슭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조선 인조9년에 그 자리에 대승암을 세웠다고 합니다. 왼손에 둥근 단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불상은 부조상이라도 마치 조각상을 보는 듯 고부조로 조각한 것에 비해, 이 불상은 매우 얇게 조각되어 있어 그 조성시기가 통일신라 전성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근한 얼굴, 양발을 벌려 직립한 모습, 굴곡이 섬세게 표현되지 않는 점등으로 미루어 일반 백성들이 주도하여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됩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석조선각불좌상, 9세기말

이 부처의 네모난 얼굴은 옆에 있는 왕정골 출토 부처와 비슷합니다만, 어깨가 좁아 왜소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얼굴에 비해 낮은 머리와 육계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입니다. 또 동심원이 반복되는 두광은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 부처의 네모난 얼굴은 8세기 불상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그러나 어깨가 좁고 왜소한 것은 9세기에 조성된 불상의 전형입니다. 두광의 표현에서는 강한 토속성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특징은 잦은 반란과 호족의 성장으로 중앙집권이 무너진 9세기 말 이후의 불상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어, 이 불상의 조성시기 역시 그 즈음으로 여겨집니다. 이 불상의 조성주체는 옆의 개선사 터 약사불과 마찬가지로 일반백성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부처, 부처는 Buddha의 음역으로 '깨달은 자'를 의미합니다. 부처를 부르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답니다. 그 중에서 여래라는 말이 있는데, 여래는 '진리의 재현자, 열반에 다다른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는 지금부터 약 2,500여 년전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진리탐구와 수행을 통해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실존 인물입니다.
비로자나불,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치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 비로자나불입니다. 화엄신앙의 비로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를 뜻하는 법신불이기 때문에 형상화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7세기 무렵 중국에서 먼저 불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신라인들은 보관을 쓴 중국의 지로자나불의 모습대신, 여래의 모습에 지권인을 맺은 비로자나불을 창안하였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정토에 가게하는 부처입니다. 무한한 진리의 빛을 상징하여 무량광불로 불렸으며, 도교의 불로장생 신앙과 결부되어 무량수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약사불, 약사불은 모든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주는 부처로서 대의왕불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부처는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불상의 명칭
0 광배(光背),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진리의 빛'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나뉘며, 이 둘을 합하여 거신광이라 합니다.
0 육계, 원래 인도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던 상투에서 유래된 것으로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0 백호(白毫), 경전에는 부처의 양눈썹 사이에서 빛을 내어 무량세계를 비친다는 희고 부드러운 털이 오른쪽으로 말려있다고 합니다. 보통 0 불상에서는 둥근 돌기로 새기거나 보석을 끼어 넣었습니다.
0 삼도(三道), 불상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의 말합니다. 삼도란 생사를 윤회하는 인과를 나타내며, 번뇌도, 업도, 고도를 의미합니다. 불상뿐만 아니라 보살상에도 표현되었습니다.
0 법의(法衣), 부처가 입은 옷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내의와 상의, 겉옷인 대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0 수인(手印), 불.보살이 자신이 깨달은 것을 밖으로 표현하기 위해 짓는 손모양으로, 인도어로 무드라라 합니다.
0 대좌(臺座), 불상을 안치한 받침대인데, 석가모니가 성도할 때 보리수 아래에 앉았던 금강보좌에서 유래합니다. 대좌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연꽃대좌가 보편적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십일면관음보살입상, 경주 낭산 출토, 8세기.  중생의 여망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구제하여 주는 보살로 삼국시대부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로 지금도 전국 사찰에서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관음보살을 모신 대표적인 사찰로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를 들 수 있다.

큰 얼굴과 머리 위 중앙 화불 주위의 얼굴까지 합하여 총 11개의 얼굴이 있어 십일면관음보살이라고 합니다. 경전에 따르면, 정면의 세 얼굴은 보살의 모습인데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왼쪽의 세 얼굴은 분노하는 모습인데, 슬픈 마음을 일으켜 악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며, 오른쪽 세울굴은 흰 이를 드러낸 모습인데 바르게 행하는 사람을 더욱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뒤쪽 얼굴 하는 웃는 모습으로 모든 중생을 웃음으로써 거두어 들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십일면관음보살은 이 보살상 외에 석굴암에도 있습니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의 경우 삼단으로 11개의 얼굴을 배치한 반면에 이 십일면관음보살상은 한단에 일렬로 배치한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이렇게 일렬로 배치한 에는 중국이나 일본, 인도 증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신라인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을 보면, 이 불상은 경주 낭산 중생사 터 부근에 있던 삼존불 가운데 오른쪽 협시보살로 여겨지는데 현재 본존불과 왼쪽 협시보살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석조관음보살입상, 분황사출토

분황사에 있던 상으로 원래 머리와 몸체가 떨어져 있던 것을 붙였습니다. 이 보살상은 동그란 얼굴, 감은 듯 만 듯한 눈, 짧은 코, 좁은 어깨, 왜소한 신체, 대좌의 화려한 연꽃무늬 장식이 특징인데, 이러한 특징은 9세기의 불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 보살상은 9세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미륵삼존불, 경주 남산 창창골 출토, 634년. 부처로 오해하기 쉬운 미를보살은 어려운 시대에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로 전쟁 등의 시기에 많은 사람의 숭배를 받았던 보살이다. 미를보살을 모신 불전을 미륵전 또는 용화전이라고 부른다.

1924년 경주 남산 장창골 한 석실에서 발견되어 그 이듬해 박물관으로 옮겨온 불상입니다. 삼화령 미륵삼존불이라고도 부르는데, 왜 그럴까요? 그리고 이 불상을 왜 미륵삼존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삼국유사'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선덕왕 때... 꿈에서 깬 생의가 표시해 놓은 곳을 찾아 땅을 파니 과연 돌미륵이 나왔다. 생의는 그 돌미륵을 삼화령 위에 옮겨 놓고 선덕왕 3년 그 곳에 절을 짓고 살았는데..."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컨대 선덕여왕 3년, 634년에 경주 남산 삼화령 생의사라는 절에 있던 미륵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상처럼 천진나만한 불상이 주로 7세기 전반에 조성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위의 기록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이 삼존불과 같이 의자에 앉아 있는 미륵불을 찾아볼 수 없지만, 중국에서는 대부분의 미륵불이 의자에 앉아 있는 예가 많아 이 삼존불을 미륵삼존불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출처: 경주박물관>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인도 간다라 지역에서 출토된 미륵보살입상이다. 우리나라의 불상과는 달리 매우 사실적이고 섬세한 표현을 하고 있으며, 외형에 있어서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킨다. 

보살, 보살은 Bodhisattva의 음역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본래는 석가모니 성도 이전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점차로 위로는 부처를 따르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끌어 성불하기에 힘쓰는 존재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미륵보살, 석가모니에게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석가모니가 죽은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 이 세상에 내려와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도 하는데,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합니다. 이 보살은 중생의 여망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구제하여 준다고 합니다.
대세지보살,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주는 힘을 지닌 보살입니다.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부처의 옆에서 보좌하는 보살입니다.
문수보살,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돕기 위해 나타나는 보살입니다. 보현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부처의 협시보살입니다.
보현보살, 자비나 이치를 상징하는 보살로, 모든 보살의 이법을 실천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중생의 수명을 연장시키 주는 덕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장보살,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까지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입니다. 지장보살은 다른 보살상과 달리 민머리의 스님모습이거나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으로 많이 표현되었습니다.

보살상의 명칭
0 보관(寶冠), 보살이 쓰는 관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난다는 화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0 영락, 목이나 팔에 두르는 구슬을 꿴 장신구
0 천의(天衣), 하늘나라에 사는 천인의 옷으로, 보살상이나 천인상이 걸치는 숄 형태의 옷
0 계인(契印), 손에 물건을 든 수인을 말하는데, 약부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살, 신장, 나한상들이 이 계인을 취합니다. 계인에 보이는 물건은 연꽃, 법의, 여의주, 불경, 무기 등 다양한데, 관음보살의 경우 정병을 들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군의, 보살이 입고 있는 하의로 인도 남성의 하의인 치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