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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간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문서라고도 할 수 있으며 책(冊)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된다. 대개 나무를 폭 1cm, 길이 20~30cm, 두께 3mm 정도로 끈으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지금의 책과 비슷한 크기라고 할 수 있다.논어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저서들이 적혀 있는 목간들이 중국에서도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목재가 잘 부패하지 않는 사막이나, 뻘에 묻혀 있던 상태로 많이 발견된다. 목간은 우리나라에서 여러지역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경주 안압지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에 적혀진 목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목간은 고조선때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중.일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에서는 교역을 위한 경제적인 목적으로 한자가 이른 시기에 쓰였던 것으로 보이며, 창원다호리 유적지나 김해에서는 목간과 필기도구인 붓, 칼 등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목간은 지식을 배우거나 정치.행정상 필요했던 문서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용도로 화물이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에서 사용하는 꼬리표형태의 목간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종이의 발명이후에도 견고함 등의 특징때문에 목간이 많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목간은 신라의 궁궐 연못이었던 안압지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꼬리표 목간은 당시의 조세제도나 물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문자기록은 목간이나 비석 이외에도 그릇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용품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주 노서리고분군 호우총에서 발견된 '광개토왕'이라고 적혀진 청동그릇이다.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연대가 정확히 적혀 있어서 신라 대릉원 일대 고분의 연대를 정확히 밝혀주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고분들에서 출토되는 여러 청동그릇에서 글자가 새겨져 있어, 삼국시대 문자생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일상생활 속 문자
문자 사용이 확대됨에 따라, 일상 생활에도 문자가 스며들게 되었는데, 문자자료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음식과 주거환경은 물론, 요리법이나 주머니 사정까지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주식으로는 쌀이나 보리, 피 등을 먹었으며, 음식의 간을 맞추는데 소금과 장을 사용하였다. 가오리 같은 생선은 물론 노루같은 고기도 젓갈로 담가 오래도록 보존하였다. 전복은 탐라산이 유명하여 일본에까지도 수출되었다. 귀족들은 차를 즐겨 운치있는 이름인 '다연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또 감초를 비롯한 다양한 약재가 활용되어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였다. 농민들은 봄 춘궁기에 곡식을 빌리고 가을 추수할 때 갚았는데, 수 섬을 빌리면 세 섬으로 갚아야 하는 이자 5할의 고리대였다. 강을 따라 물자를 날라 선박 건조가 중요시되었다. 쌀이나 면, 포목 등 물품 뿐만 아니라 일정규격의 금괴나 은판도 화폐 역할을 하였다. 벽돌이나 굴뚝, 흙으로 만든 불상 등 여러 개를 조립하여 제작하는 구조물의 부품에는 조립되어야 할 위치를 문자로 써 두었다. 인각와나 벽돌에는 제작연도와 제작자, 제작경위를 기록하였으며, 궁궐이나 절에 쓸 기와에는 건물이나 절이름을 새겨 넣었다. <출처:중앙박물관>



호우총 무덤의 '광개토왕'새김 청동그릇, 415년, 경주 노서동 호우총

호우에 있는 을묘년은 광개토왕을 장사 지낸 일년 뒤인 415년(장수왕3)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호우가 신라무덤에 묻힌 까닭은 고구려에서 왕릉의 큰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호우를 만들었으며, 그 제사의식에 사절로 참석하였던 신라사신이 호우를 경주에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서봉총무덤의 글자새김 은그릇, 481년 추정, 경주 서봉총


침으로 글자를 새긴 토기들, 고구려, 아차산성


기호새김그릇, 고구려, 아차산 시루봉 보루


인명 새김 그릇, 고구려, 아차산 시루봉


'고덕'새김 자루솥, 경주

차와 술
고대인들은 차를 즐겼다. 통일신라자료에는 차를 마시며 조용히 담소를 나눈다는 의미로 보이는 차, 정, 언이란 글을 쓴 접시가 차의 연못이란 의미의 다연원이란 기관도 있었다. 술도 즐겼는데 술 따르는 그릇을 주발이라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다언정'이라 쓴 접시, 경주 안압지


'주발'이라 쓴 굽대접조각


가오리 젓갈 그릇에 매단 꼬리표 목간, 진상한 동물을 기록한 목간, 젓갈 목간


전복을 담은 그릇에 매단 꼬리표 목간, '제일자'라고 쓴 꼬리표 목간, 동물의 오장 젓갈 그릇에 매단 꼬리표 목간, 경주 안압지 출토.


전복껍질로 만든 칼,


벼품종에 매달았던 꼬리표 목간(복제품,일본), 탈곡을 한 벼품종에 매달았던 꼬리표 목간(복제품,일본), 붉은 쌀 목간(부여), 곡식 이름을 쓴 목간(함안 성산산성), '화전'이라 쓴 목간(부여 동남리). 목간의 형식에 있어서 나라별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약물처방'이라 쓴 목간(안압지), '마'라 쓴 목간과 죽산품 꼬리표 목간(나주 불암리)


'본'새김 칠기합과 '숭'새김 곱돌뚜껑, 경주 안압지


'民'새김 청동병


'함'새김 청동접시, 경주 월성해자


'우청'새김 숟가락(경주 감은사지), '잉벌'이란 마을이름을 새긴 숟가락(서울 호암산성)


'多利'새김 은팔찌, 국보 180호, 무령왕릉


'부인대'새김 은띠끝꾸미개, 경주 황남대총


함안산성출토 목간

경남 함안의 성산산성 출토 꼬리표 목간은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인데, 세금으로 바칠 짐의 꼬리표다. 여기에 기록된 세금바칠 지역은 주로 낙동강 상류와 중류 지역이다.'강:배'란 기록도 보이는 점으로 보아 낙동강을 따라 상류에서 하류의 함안까지 물자가 수송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신성비를 보면, 경주 남산 신성을 쌓을 때 역시 낙동강 인근 지역의 마을 사람들을 불러 노동력을 동원하였다. 이들 지역은 당시 신라의 상주와 하주지역이었는데, 주의 치소 역시 낙동강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어, 6세기 물자나 사람의 수송 등 물류에 낙동강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창고'라 쓴 목간(경주), '좌간대식기'라 쓴 목간(부여)

대식제는 봄과 여름 2회 농민에게 벼를 빌려주고 추수기에 5할(혹은 3할)의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제도다. 사실상 나라에서 운영하는 고리대였으며 농민에게는 실질적으로 세금이었다. 5할에 대히 높은 이율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춘궁기의 물가는 추수기의 물가보다 높았기 때문에 추수기의 5할은 큰 이율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그렇다고 해도 5할은 적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경사' 묵서 벼루, 경주 안압지


환곡집계목간(복제품), 7~9세기, 일본


개선사터에 있는 석등탁본, 조 1백석으로 좋은 논 4결과 안좋은 논 10결을 샀다는 기록이 있다.


꼬리표 목간(부여), 십간십이지 표 목간과 구구단표 목간(복제품, 일본), '지악아식비기'라 쓴 목간(부여)


목간을 사용했던 형태로 주로 창고나 화물에서 단지에 물건을 보관하면서 그 내용에 대한 꼬리표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의 꼬리표 사용방법과 큰 차이가 없다.


곡식 가마니에 매달아 놓은 목간 꼬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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