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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강화 망월돈대, 바다를 막은 제방에 쌓은 돈대

younghwan 2011. 11. 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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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 서북쪽 해안에 쌓은 제방에 위치한 망월돈대이다. 이 돈대가 위치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일대는 남쪽편 외포리 부근 국수산와 북쪽편 별립산 주변을 긴 제방으로 연결하여 간척한 곳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간척지는 조선후기 강화도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자체적인 식량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한다. 망월돈대는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고려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내가천 수로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 돈대는 해안가 높은 언덕에서 사방을 감시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에 이 곳 망월돈대는 해안가 평지에 약간의 둔덕을 만들어 그 위에 석축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망월돈대는 잘 다듬은 석재로 석축을 쌓은 높이 2.5m, 가로 38m, 세로 18m 규모의 직사각형 형태의 돈대이다. 돈대 내부에는 3문의 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를 두고 있으며, 원래부터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여장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망월돈대 북쪽으로는 창후리 선착장에 위치한 무태돈대가, 남쪽으로는 제방 남쪽끝 지점에 위치한 계룡돈대가 있다. 망월돈대와 계룡돈대에서 간척지 제방 앞 해안을 감시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 하점면 망월리입구 삼거리에서 망월리 마을을 지나 넓은 벌판으로 나 있는 농로를 따라서 조금 들어가면 해안가에 망월돈대가 보인다.



강화 망월돈대 전경. 현재의 모습은 허물어졌던 돈대를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망월돈대 출입문. 문짝은 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석을 가공해서 쌓은 다른 돈대와는 달리 이 곳 망월돈대는 큰 화강암 석재를 다음어서 석축을 쌓고 있으며, 상당히 견고해 보이는 석축이다.


망월돈대 내부.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으며 군사는 많이 주둔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망월돈대에는 3문의 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를 두고 있으며, 석축 위 여장은 보이지 않는다.


블랑기포를 설치했던 포좌


돈대 바깥으로 보이는 석모도와 강화도 사이의 바다.


돈대 성벽 위에서 본 출입문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돈대 내부의 모습.


망월돈대에서 무태돈대가 있는 창후리선착장까지 해안을 제방으로 쌓아 간척지 농토를 만들어 놓고 있다. 돈대를 쌓을때 간척사업도 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제방 안쪽의 넓은 간척지 농토. 멀리 보이는 산이 별립산이다.


돈대남쪽편으로는 강화의 주산인 고려산에서 발원하여 고려저수지를 거쳐 간척지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면서 흘러내리는 내가천이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내가천 수로 끝을 작은 포구로 사용하고 있다. 갯벌위에 작은 어선들을 볼 수 있다.


내가천 수로의 제방길.


망월돈대 남쪽편 해안. 남쪽으로는 계룡돈대가 위치한 황청리까지 제방이 이어져 있다. 바다너머로 보이는 곳이 석모도이다. 석도도 또한 두개의 섬을 연결한 간척지가 주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망월돈대가 있는 강화군 하점면과 내가면 일대의 넓은 농토. 이곳은 넓은 갯벌을 생활 근거지로 하여 고대인들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정착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고인돌들은 멀리 보이는 고려산 주변에 분포하고 있다.


바깥쪽에서 본 망월돈대.


망월돈대 들어가는 길.


하점면 망월리 마을에서 돈대까지 들어오는 넓은 농로. 뒷편에 보이는 산이 강화도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산이다.


하점면과 내가면 일대의 넓은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는 내가천 수로. 농사가 끝난 가을철이지만 수로에 물을 가득채워 놓고 있다.


내가천 끝에 있는 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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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돈대,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령에 따라 유수 민원진 때 축조한 것이다. 40~120cm의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가로 38m, 세로 18m, 높이 2.5m 규모로 축조한 것이다. 돈대 북측 장성은 고려 고종 19년(1232)에 강화로 천도하면서 해안방비를 위해 처음 쌓았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10년(1618) 안찰사 심돈이 수리를 하였고, 영조 21년(1745) 유수 김시환이 다시 고쳐서 쌓았으며 '만리장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출처: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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