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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통해서 많은 문서들이 오고갔던 사회였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방관청은 세금납무, 병역, 재산권 관리 등을 위해 주민들의 호적과 토지대장을 관리하고 많은 소송들이 진행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호적, 호구단자, 소송관련 문서 등 많은 공문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또한 개인간에도 혼인, 물적 거래를 위한 계약, 향약 등 마을 단위의 협약을 위해서 많은 문서를 만들었고, 이런 문서들에서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과 생각, 규범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사회생활에 필요했던 다양한 형태를 문서들을 소장.전시하고 있는데, 다른 박물관에 비해서 그 수량이 많고 종류도 다양한 편이다. 

사회와 경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서와 만나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서를 시작으로 진학,취업, 이사, 결혼,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과정이 문서 속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사회의 모습인 경제, 신분, 제도, 풍속, 의례 규약 등의 다양한 흔적과 변화가 문헌자료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옛날에는 호구단자와 호적에 신분과 가족구성을 기록하였다.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계례에도 절차에 따르는 여러 문서가 있었다. 혼인할 나이가 되어 짝이 정해진 후에는 혼인을 청하는 청혼서, 이를 허락하는 허혼서, 남녀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그 외에 혼례에 필요한 납폐서, 물목 등의 문서가 두 집안을 오갔다.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백패.홍패 등의 교지를 받았고, 관료가 되면 교첩이라는 임명장을 받았다. 관료생활을 하면서도 승진, 좌천, 업무 등에 수많은 문서를 받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는 자신의 뜻을 남기거나 재산을 나누는 내용의 유서나 분재기 등을 만들었다. 죽음 후에는 부고를 비롯한 각종 제문과 부의단자, 제수단자 등을 작성하고, 장례와 제사를 치렀다.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농업은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이는 국가재정에 있어서도 주요한 수입의 근원이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토지를 늘리고, 토지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토지대장인 '양안'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조사하여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세제도를 운영하였다. 이밖에도 경제생활과 관련된 문서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증여.분배하는 개인간의 문서에서부터 국내상업, 대외교역을 알려주는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조선후기가 되면 농업, 상업, 수공업, 광업 등 국내산업이 발달하고 화폐경제가 자리잡으면서 쓰이는 문서 역시 더욱 늘어나게 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제1호 보험증, 1897년. 조선 농상공부에서 양주군 남면 상무동에 사는 김원순에게 발행한 보험증서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묘지도


고풍, 1796년. 새로 부임한 관리가 행하를 주는데 쓴 증명서. 이 고풍으로 보아 화성에 부임했던 관리는 화성의 동장대에서의 활쏘기 성적에 따라 행하를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하는 새로 관직에 임명되어 그 관청의 서리 등에게 돈이나 선물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육사계첩, 1636년. 궁중의 물자 조달을 담당하는 6개부서의 관리들이 모여 만든 계의 장부이다. 책의 뒤쪽에는 택당 이식의 발문이 있다.


유서필지와 조선시대 문서들. 유서필지는 관청의 관리들과 일반인들이 알아야 할 공문서 작성방법, 공문서에 쓰이는 이두문을 읽고 쓰는 법 등을 적어 놓은 책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녹패와 조선시대 소송문서. 녹패는 1881년. 관리의 녹봉(봉급) 문서로 주로 이조.병조에서 발급하였다. 녹패에 적힌 녹봉 등급에 따라 관리들은 광흥창에 가서 녹봉을 받았다. 이 녹패는 통정대부 행 형조좌랑 이인우의 것으로 매월 녹봉을 받았다는 도장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 소송 문서에는 이두문이 많이 적혀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소유권 말소 신청서(1928년, 풍영섭 기증). 초료(1844년), 녹성책(1839년). 소유권말소신청서는 일제강점기의 토기 조사 사업을 할 때 땅과 번지가 합쳐지면서 한쪽 편의 소유권을 없애는 (등기말수) 신청을 받은 문서이다. 초료는 출장가는 관리에게 음식, 하인, 말, 말먹이 등의 제공을 명하는 문서이며, 병조에서 발행하였다. 이 초료에는 수원 출장이 끝나면 경기감영에 반납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녹성책은 평택현의 군사 관련 기록을 모아 놓은 책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호구단자, 호적 작성을 위해 호주가 가족 사항과 구성을 적어 관청에 제출하던 문서. 각 호는 세금을 거둬들이고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한 기초 단위였으므로 나라에서는 관리와 유지에 힘을 쏟았다. 이 호구단자는 김상헌이라는 사람이 작성한 것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관문, 관문은 관계가 동등하거나 낮은 관청에 보내는 문서로 주로 두 관청 사이의 사무를 의논하고 시행하기 위한 것이다. 문서 끝부분에는 '관'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교첩, 1882년. 교첩은 조선시대에 주로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내리던 임명장이다. 이 첩은 고재길이라는 사람에게 내린 것으로 강화도 정족산성에 있는 사고의 참봉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관노비대장, 1842년, 박병길 기탁, 관청소속 노비 대장


준호구, 1849년, 준호구는 관청에서 개인의 요청에 의해 호적사항을 증명해 준 문서이다. 신분, 가족사항, 노비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소송을 걸거나 새로운 호적을 만들 때, 과거에 응시할 때, 도망간 노비를 잡아올 때 등 여러 경우에 신청하여 발급 받았다. 이것은 1849년 여주에 사는 이선익의 준호구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완문, 1903년. 조선시대 관청에서 개인, 서원, 향교, 단체 등에게 발급해준 문서. 사실의 확인, 권리의 인정, 허가 등에 대한 내용이 많으며 그 밖에 매우 다양한 내용으로 발급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노비문서, 토지지를 사고 판 문서, 돈이나 물건 등을 빌리거나 맡길 때 주고 받은 문서 수표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한 문서들이다.


개인간 거래에 사용된 각종 문서들. 손을 그려 넣은 수결과 한글로 쓴 각서 형태의 문서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