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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세묘와 숭혜전, 신라 김씨 시조인 김알지와 그 후손 중 처음 왕위에 오른 미추왕을 모신 사당

younghwan 2012. 6. 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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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김씨, 박씨, 석씨가 돌아가면서 왕위를 승계하다가 신라 17대 내물왕(재위 356~402년) 때부터 '마림간'라라는 왕의 칭호를 처음 사용하면서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였다. 신라에 가장 오랜기간 왕위를 세습한 김씨의 시조는 계림에서 금으로된 조그만 궤짝에서 태어났다는 김알지를 시조이며, 그의 7대 후손인 미추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미추왕릉이 있는 경주 대릉원에서 정남방향 담장밖에는 미추왕과 문무대왕,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모신 사당이 있고, 그 앞쪽에는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를 모신 사당이 계림세묘가 있다. 숭혜전은 원래 신라 마지막 임금으로 경주김씨의 실질적인 시조라 할 수 있는 경순왕을 모신 사당이었으나 고종대에 그 기능이 확장되어 김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미추왕,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을 같이 모시는 사당으로 바뀌었다. 이는 신라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를 모신 경주 오릉의 숭덕전과 김해 김씨 시조인 수로왕을 모시는 사당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숭혜전의 기능을 확장하던 고종대에 월성 석씨의 시조인 탈해왕을 모신 사당이 숭신전도 세워졌다.

 미추왕(재위 262~284년)은 김알지의 6대손으로 조문왕의 사위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에 백제와의 약간의 충돌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던 시기이다. 미추왕의 뒤를 이어 석씨인 유례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며, 이런 형태의 왕위계승은 내물왕대까지 이어졌다. 내물왕이후 신라가 멸망하기까지 대부분의 기간동안 왕위를 계승한 김씨는 경순왕의 후손인 경주 김씨를 비롯하여, 안동김씨, 광산김씨 등 600여개의 관향이 있다고 한다.



숭혜전의 외삼문에 해당하는 숭혜문. 대체로 고종대에 세워진 건물로 역사적인 내력은 깊지 않으나 범신라 김씨의 조상을 모시는 사당으로서 의마가 있는 것 같다.


내삼문에 해당하는 숭혜전 사당 출입문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사당인 숭혜전, 사당 뒷문으로 대릉원내에 있는 미추왕릉과 연결된다.


사당 앞에 있는 작은 건물인 제기각

대릉원내에 있는 신라 13대 미추왕릉. 개방되어 있는 다른 왕릉과는 달리 미추왕릉은 봉분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출입문으로 삼문을 두고 있다.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성격의 건물인 영육재와 경모재


영육재 뒷편 재실 건물


숭혜전 관리인 거주하는 주택

경주 숭혜전, 경주시 황남동
숭혜전 건물내에는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인 13대 미추왕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30대 문무대왕 그리고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처음 월성에 사당을 지어 영정을 모시고 제향했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인조 5년(1627) 동천동에 새로 사당을 지어 동천묘라 하고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 경종 3년(1723) 경순왕전으로 고치고 정조 18년(1794) 지금이 위치로 옮기고 황남전이라 고쳤다. 그 후 고종 24년(1887)에 미추왕의 위패를 모시고, 이듬해 문무대왕의 위패도 같이 모시게 되었다. 이때 고종황제가 사당을 크게 짓게하고 숭혜전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앞면 5칸, 옆면 3칸인 맞배집으로 왼쪽에 영육재, 오른쪽에 경모재가 있다. 앞에는 경순왕 신도비와 비각이 있고, 길 건너에 계림세묘가 있다. <출처:경주시청>


숭혜전 앞 넓은 마당. 숭혜전 앞쪽으로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를 모신 사당인 계림세묘가 있다.


숭혜전 출입문 동쪽편에 세워진 경순왕 신도비


계림세묘로 들어오는 골목길


계림세묘 내삼문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를 모신 사당인 계림세묘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있는 월성 북쪽편에 위치한 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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