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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황남동 마을에 세워진 보물 68호로 지정된 효자 손시양 정려비이다. 우리나라에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세우기 시작한 많은 효자비, 열녀비들 중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려 명종 12년(1182)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동경유수가 효자 손시양의 행적을 국가에 보고하여, 왕이 직접 포상하여 세운 효자비이다. 비석은 높이 2m로 단순한 네모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앞면에는 '효자리'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그의 행적으로 130자로 적어 놓고 있다.
 
 이 비석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많은 비석가운데 불교와 관련되어 있지 않는 비석으로 고려시대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교적인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 비석이 있는 황남동은 경주의 대표적인 역사유적지구인 대릉원 서쪽편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로 옛 경주시청을 비롯하여 구도심을 형성하고 있었던 마을이다. 주변에 대릉원을 비롯하여 경주 오릉, 흥륜사지 등 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



경주 대릉원 서쪽편 황남동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고려시대에 세워진 경주 황남동 효자손시양정려비이다. 유물 자체는 네모난 돌기둥에 글씨가 새겨진 단순한 형태이지만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세워진 정려비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어 보물 68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비석은 단순한 네모돌기둥으로 앞면에 '효자리'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석 주위의 황남동 마을. 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서 그런지 오래된 한옥들만이 모여 있다.


경주 대릉원으로 연결되는 골목길. 경주 도심에 위치하고 있지만,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보물 68호, 경주시 황남동
졍려비란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이 비는 고려 명종 12년(1182)에 세워진 정려비이다. 화강암을 네모기둥 모양으로 치석한 것인데, 비몸만 있을 뿐 아래의 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없다. 앞면에는 효자리라 쓰고, 뒷면에는 5행 130자로 손시양의 효행 내용과 비를 세운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손시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돌아 가시자 3년씩 초막을 짓고 묘소를 지킴으로써 자식의 도리를 다하였다. 이 사실을 동경유수가 국가에 보고하자, 왕이 그 효행을 기쁘게 여겨 정문을 만들어 주고 포상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적인 비의 형식과 달리 네모기둥 모양으로, 고려시대에 불교와 관련되지 않은 비문으로서 희귀한 자료이다. 노천에 서 있던 것을 1977년에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비신의 높이는 약 2m이다. <출처:경주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