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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경주 배리삼릉(사적219호)과 경애왕릉(사적222호), 신라 마지막 박씨 왕들의 능

younghwan 2012. 7. 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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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배동 남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배리삼릉은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앞쪽에는 신라 8대 아달라왕, 가운데에 53대 신덕왕, 뒤쪽에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8대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700여년의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외형의 봉분을 하고 있어서 그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곳이다. 가운데 신덕왕릉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은 2차례 도굴을 당하여 내부 조사를 한 결과 통일신라 무덤양식인 굴식돌방무덤을 하고 있으며, 벽면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어서 벽화가 없는 경주의 신라고분에서 벽화의 흔적이 처음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경주 나정 부근의 경주남산 서쪽편 기슭 아래에는 일성왕릉, 지마왕릉, 배리삼릉, 경애왕릉을 포함한 6곳 왕릉이 있는데 박씨로서 왕위를 계승한 왕들이다. 특히 통일신라가 멸망할 무렵 박씨로서 왕위에 오른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의 능은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를 계승했다는 의미로 이곳에 왕릉을 조성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박씨로서 마지막으로 왕위에 올래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다 후백제군의 기습을 받아서 죽은 경애왕릉른 배리삼릉에서 남쪽으로 2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주에 조성된 마지막 신라왕의 무덤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왕릉의 화려한 모습과는 동떨어진 석물을 비롯한 특별한 장식이 없이 작은 봉문만이 있다.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금오산이라고도 불리는 경주 남산을 등발하는 출입로에 배리삼릉이 위치하고 있다.


경주 남산 등산로 옆에 신라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보이고 그 안쪽에 배리삼릉이 자라잡고 있다.


소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배리 삼릉


배리삼릉은 비슷한 외형의 고분 3기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박씨로서 왕위를 계승한 3명의 왕들이 묻힌 곳으로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있다.


배리 삼릉 중 맨 앞에 위치한 신라 8대 아달라왕의 능. 앞에 놓인 상석은 후대에 놓여진 것이다.


가운데 위치한 신라 53대 신덕왕의 능. 2차례에 걸친 도굴이 있어서 내부 조사를 하였는데 통일신라 무덤양식인 횡혈식 돌방무덤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신덕왕은 헌강왕의 사위로 효공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고 하며, 재위 기간은 5년 정도로 후삼국시대 견훤과 궁예의 침입을 대응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일 안쪽에 있는 신라 54대 경덕왕의 능.


뒤쪽에서 본 배리 삼릉


배리 삼릉 주변의 소나무숲

배리 삼릉, 사적 219호, 경주시 배동
이 곳에는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아달라왕(재위 154~184)은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장에 나아갔다. 그러나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자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왜에서는 사신을 보내왔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8m, 높이 5.4m, 지름 18m이다. 효공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백성들이 헌강왕의 사위인 신덕왕(재위 912~917, 박경휘)를 추대하였다.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61m, 높이 5.8m, 지름 18m이다. 두 차례에 걸쳐 도굴을 당하여 1953년과 1963년에 내부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매장주체는 깬 돌로 쌓은 횡혈식 돌방으로 밝혀졌다. 경명왕(재위 917~924,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 공격을 물리쳤다. 중국 후당과 외교를 맺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0m, 높이 4.5m, 지름 16m이다. <출처:경주시청>


경애왕릉 입구


배리 삼릉에서 남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경애왕릉으로 들어가는 소나무숲길


소나숲 사이로 보이는 경애왕릉


경애왕릉은 경주에 남아 있는 마지막 신라왕릉으로 당시의 국력를 말해주듯 봉분의 규모도 작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왕릉이다. 신라 55대 경애왕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와 연합하여 후백제를 견제할려고 하였으며, 후백제 견훤의 기습공격을 받아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다가 죽었다고 한다.


경애왕릉 전경

경애왕릉, 사적 222호, 경주시 배동
이 능은 신라 55대 경애왕(재위 924~927)을 모신 곳이다. 밑둘레 43m, 지름 12m, 높이 4.2m 규모로 흙을 둥글게 쌓은 형태이다. 남산의 북서쪽 구릉의 끝이자 인천의 동안에 위치하고 있다. 왕은 53대 신덕왕의 아들로 927년 포석정에서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쳤다. <출처:경주시청>


배리삼릉과 경애왕릉 앞을 지나는 경주와 언양을 이어주는 도로.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난 꽤 운치있는 길이다.


배리삼릉 앞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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