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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경릉과 창릉, 세조의 두아들 덕종(추존)과 예종의 능

younghwan 2012. 8. 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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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고양시 신도동에 소재한 서오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왕실을 능원이 조성된 곳으로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능원이 있는 곳이다. 서오릉은 1457년(세조3)에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 곳에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세조가 터를 잡은 곳으로 그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과 왕비의 능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서오릉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릉은 세조의 장남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추존)과 어머니로 인수대비로도 많이 불리는 소혜왕후의 능이다. 서오릉 안쪽에 위치한 창릉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이다. 예종 또한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왕비인 안순왕후는 소혜왕후와 함께 연산군대까지 살았다. 소혜왕후와 안순왕후는 세조가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부터 성종, 연산군대까지 살았던 인물로 아마도 조선왕조 이야기를 묘사한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경릉과 창릉은 왕릉의 조성을 간소하게 한 세조의 유지를 받들어 광릉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양쪽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형식을 하고 있으며, 봉분에는 병풍석을 두르고 있지 않다.


세조의 장남인 덕종(추존)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인 경릉이다. 세조대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세자를 안장하기 위해 터를 잡은 곳으로 성종대에 덕종으로 추존되면서 왕릉으로 격상되었다. 인수대비로 많이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도 이곳에 같이 묻혀 있다.


왕릉 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박석을 깔아 놓은 신도와 어도


경릉은 세조의 유지에 따라 하나의 정자각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에 봉분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 왕릉과는 달리 오른편 언덕에 덕종(추존)의 봉분이, 왼쪽편 언덕에 소혜왕후의 봉분이 조성되어 있다.


경릉의 정자각


정자각 월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왕릉 앞 전경


정자각 내부. 


정자각 오른편에 위치한 수복방


왕릉 수장자의 생애를 적어 놓은 비석이 있는 비각


비각 내부의 비석


경릉은 세자의 묘로 조성되었기때문에 난간석이나 마주석 등이 없고 석양과 석호도 1쌍만 설치되어 있다. 


왼쪽편 언덕에 있는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소혜왕후의 능. 소혜왕후의 능은 왕비로 격상된 연산군대에 조성되었기때문에 난간석을 두르는 등 왕릉으로서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경릉에서 창릉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

경릉
경릉은 덕종(추존)과 왕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이다. 덕종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세자가 되었으나, 2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1457) 뒤에 그의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덕종으로 추존하였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 환학의 딸로 세조 즉위년에 세자빈이 되어 월산대군과 성종 형제를 낳았으며, 성종이 왕위에오른 뒤 왕비로 추존하면서 소혜왕후라 부르게 되었다. 연산군 10년(1504)에 68세로 돌아가셨다. 특히 불경에 조예가 깊었으며, 부녀자의 예의범절에 관하여 쓴 내훈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출처:문화재청>


서오릉에서 제일 안쪽에 위치한 세조의 둘째 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 경릉과 마찬가지로 세조의 유지에 따라서 간소하게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형태를 하고 있다. 왕릉을 조성하는데에는 중국 <주례>를 바탕으로 풍수지리설, 입지조건 등 여러가지가 고려되는데 그 중 정치적인 면도 많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예종은 후사가 없어 형인 덕종(추존)의 아들인 성종이 뒤를 잇고 있는데 그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세조가 입지를 정하고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추존)의 무덤이 있던 이곳에 능을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창릉 입구의 홍살문.


창릉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들어간 신도와 어도


창릉 정자각


창릉 정자각 내부


정자각 왼쪽편의 수라간 건물터


수장자의 일생을 적어 놓은 비석


예종의 봉분이 있는 왼쪽편 언덕. 봉분에는 세조의 능인 광릉의 예를 따라서 병풍석을 하지 않고, 난간석만 있다.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 예종의 정비는 당시 실력자인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으로 능은 파주에 있는 공릉이다. 예종 사후에 능을 조성할 당시에도 한명회가 실력자이기는 했지만, 왕릉을 파주로 정하는데까지는 힘을 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 계비인 안순왕후의 능이 조성된 것도 안순왕후가 인수대비와 함께 성종대를 거쳐서 연산군대까지 대비로서 높은 위치에 있었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창릉으로 들어오는 길

창릉
창릉은 조선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세조2년에 세자가 되었고, 세조 13년(1468)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지 13개월 만에 20세로 경북궁에서 돌아가셨다. 안순왕후는 우의정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예종 즉위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연산군 4년(1498)에 돌아가셨다. <출처:문화재청>


* 참조: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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