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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서울 성북동 성밖마을과 성북동길 걷기

younghwan 2012. 11. 1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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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은 조선시대 창덕궁을 중심으로 한 동궐영역 뒷편 한양도성 성밖에 형성된 마을로 북한산 자락과 북악산, 한양도성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대표적인 성밖마을로 조선시대에는 도성 수비를 담당했던 여영청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지금도 서울을 지키는 군인들이 북악산자락에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소속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고양군 성북리로 되었다가 다시 성북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마을이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의 성북동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이 확장되고, 서울 성곽이 허물어지면서 성벽 너머에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북동은 서울 도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지은 도시형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또한 당시로서는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별장건물들도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북동의 이미지는 해방 이후 성밖언덕과 성북천 개울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서민주택들과 70년대 이후 개발된 북악산자락 아래 남향을 하고 있는 고급주택가들이 공존하고 있는 서울의 양극화된 도시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인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에 묘사된 채석장의 이미지와 안식을 찾을 수 없는 황폐화된 모습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시인이 묘사한 황폐화된 채석장은 고급주택단지로 바뀌었고, 시인이 표현했던 사람이 살던 동네는 지금 도시 빈민의 모습으로 바뀌어 도시민의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 된 아이러니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다.
 
 성북동은 서울에서도 옛 모습이 남아 있는 많지 않은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은 한옥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명소로 일제강점기 갑부였던 이종석 별장,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 시인 이태준 가옥,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최순우 옛집 등이 있고, 조선시대 제사시설 중 하나인 선잠단,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 등이 있다. 아직도 정겨운 골목길과 한양도성 성벽, 울창한 가로수길, 낡은 한옥과 서민주택, 언덕의 고급 저택 등 다양한 풍경이 남아 있는 서울에서도 걷기 좋은 명소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성북동은 조선시대 한양을 수비하던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북악산 동쪽편 계곡을 따라서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마을의 규모가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일제강점기에 서울 성곽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성밖에 자연스럽게 서민들이 집을 짓고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성밖 언덕에 밀집해 있는 서민주택들은 70년대 낡은 주택과 좁은 골목길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시인 김광섭이 살면서 건너편 채석장을 바라보면서 도시화의 안타까움을 적은 <성북동 비둘기>의 무대가 이 동네인 것으로 보인다.


성북동으로 들어가는 길은 성북천을 복개하면서 생긴 큰길과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벽을 넘어서 연결되는 옛길, 최근에 생긴 경복궁에서 삼청터널을 통해 연결되는 길, 성균관대학 뒷편 와룡공원을 지나는 고갯길이 있는데, 그 중 서울성곽을 보면서 와룡공원 고갯길에서 성북동길 걷기를 시작했다. 와룡공원을 지나면 성벽 바깥쪽으로는 예전에는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낡은 주택들을 볼 수 있고, 아직도 서울 도심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있는 집들을 볼 수 있다.


서울 삼청동에서 창덕궁과 성균관대학 뒷편 언덕을 통해 성북동으로 연결되는 도로.


최근에는 이곳이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크고 작은 식당과 카페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어느 도시든지 경치고 좋고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고갯길에서 성북동 안쪽 동네로 내려오는 길. 이곳은 원래 주거지 형성되지 않고, 도로가 최근에 개설되어서 그런지 잘 지은 고급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성북동에서도 제일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이 아직도 남아 있는 동네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심우장은 성북동에서도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주변에는 낡은 70년대풍의 서민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70년대로 여행하는 느낌을 주는 동네이다.


심우장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에 살았던 집이다. 말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마련해준 조그마한 거처로 서민들이 거주하던 성북동 성밖마을 언덕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저택이다.


성밖 언덕으로 올라가는 또다른 골목길


성북동은 성밖 언덕에는 60~70년대풍의 낡은 서민주택들이 밀집해 있지만, 성북천으로 따라서 조성된 큰 도로 주변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별장풍의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 현재의 도로는 성북천을 복개해서 만든 길로, 옛날에는 맑은 성북천이 흘렀기때문에 서울에서 한적한 분위기를 찾아서 별장처럼 지은 집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큰길 옆에 있는 일제강점기 한옥을 개량해서 지은 식당. 원래 부자였던 사람이 살았던 집으로 한옥으로서는 규모가 크고 마당도 넓은 편이다.


성북동의 중심이 되는 곳에 있는 성북구립미술관.


성북동 구립미술관 뒷편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인 상허 이태준 가옥. 성북동 골짜기에서 중간쯤에 위치한 이가옥은 지금은 복개해서 보이지 않지만, 성북동 개울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아담하지만 화려하게 지어진 한옥이다.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당시에 유행했던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별장이나 정자처럼 '-'자형 주택에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은 형태이다. 앞면 4칸 규모로 크지 않은 저택이지만 누마루를 설치하고 건넌방 툇마루에는 '亞'자 난간을 둘러 화려하게 꾸며진 저택이다. 마당은 넓지 않지만 크고 작은 정원수들을 많이 심어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는 한옥이다.


성북구 구립미술관 맞은편에 위치한 덕수교회. 원래 덕수궁 근처에 있던 교회를 이곳 성북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 교회 뒷편에는 일제강점기에 부호였던 사람이 지은 상당히 큰 규모의 별장이 남아 있다.


성북동 이종석 별장. 이 가옥은 사랑채를 겸하고 있는 안채 건물과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면 6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기단을 높게 쌓고 그 위에 집을 올려 놓고 있는데 건물의 높이도 일반 한옥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궁궐 전각과 비슷한 형태로 지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성북동에는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작은 사찰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성북동은 일제강점기 이후 많은 서민들이 집을 짓고 살면서 동네가 크게 형성된 곳으로 일반사람들이 살기 힘들었던 남쪽편 도성 성벽 바깥쪽 언덕과 성북천 개천가에 집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성북천이 복개되면서 많은 집들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도로 아래에는 하천가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의 집이 남아 있다.


도로 아래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성북천 하천가에 살던 집들


성북동 북쪽 언덕 부호들이 저택이 모여있는 길 입구에 남아 있는 오래된 슈퍼. 옛날 구멍가게라 할 수 있는 점포이다.


맞은편 도성 성벽 바깥쪽 언덕의 주택가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도 오래된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서울 성곽에서 내려다 보이는 성벽 바깥쪽 마을.


도로에서 보이는 성벽 바깥쪽 언덕. 성벽 아래에는 낡은 주택들이, 도로주변에는 큰 규모의 주택들이 대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이래로 원래 성북동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던 혜화동로터리에서 서울 성곽을 넘어서 성북동으로 들어오는 길.


서울과학고등학교 뒷편으로 서울 성곽을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서울 성곽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다.


언덕길에서 조금 내려가면 성북천을 복개해서 만든 큰 길과 만난다.


성북동 큰 길. 뒷편으로 서울 성곽과 그 아래 주택가들이 보인다.


성북동 남쪽편 언덕 아래 주택가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최순우 옛집.


이집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서울에서 크게 유행한 도시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 집으로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동소문(혜화문) 바깥 삼선교까지 이어지는 큰길. 성북천을 복개하여 만든 길이다.


간송미술관과 선잠단지가 있는 성북동 큰길.


큰 길 옆에 있는 조선시대 제사시설 중 하나인 선잠단지. 선잠단지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행하는 의례중 하나인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잠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단으로, 지금의 모습은 작은 제단과 뽕나무로 이루어져서 크게 눈에 띄는 유적지는 아니다. 하지만 누에치기는 조선시대에 국가 재정과 경제를 위해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그 장소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잠신의 신위를 현재의 사직단으로 옮겼다고 한다.


선잠단지 뒷편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전재산을 들여 수집한 우리나라의 문화재와 미술품 등을 전시하는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이다. 2층콘크리트로 지은 간송미술관은 최초의 근대식 사립 미술관으로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연구소에 가까운 건물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성북동길.


성북동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도시 한옥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지금은 성북동 언덕에 조성된 고급주택단지 입구에 해당되면서, 부자들이 저택에 비해서 약간 초라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성북동에서는 제대로 된 도시한옥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선 상가들. 한옥을 개조한 상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크게 유행한 도시형 한옥을 고쳐서 만든 상가건물. 70년대 분위기를 주는 건물이다.


상가 뒷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집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골목길 구조가 서울 북초과 비슷한 느낌이다. 뒷편 언덕에는 70년대 풍의 서민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한옥을 고쳐서 만든 또다른 상가건물.


이 길이 아마도 성북동에서는 원래 큰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큰 길 주변에 서울 한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성북동에서는 나름 평지에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주택들.


전형적인 서울 구도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막다른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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