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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청주 충청병마절도사 영문, 조선후기에 세워진 병영 출입문

younghwan 2012. 11. 2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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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도청소재지인 청주시는 삼국통일에 큰 기여를 한 김유신 장군의 출신지역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5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이 설치된 곳이다. 고려초에는 호족세력이 강했던 지역 중 하나로 청주목이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조선후기에는 충청도 내륙지역의 국방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서산 해미에 있던 충청병영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충북도청과 청원군청이 있는 청주 구도심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청주목 관아 객사가 있던 곳으로 객사건물은 남아 있지않고, 객사 누각 건물인 망선루, 충청병영 출입문을 비롯하여 척화비 등이 남아 있으며, 뒷편 청원군청내에는 동헌 건물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병영은 각도의 육군을 지휘하는 책임을 맡은 종2품 무관인 병마절도사가 머무르는 곳으로 충청도, 경상좌.우도, 전라도, 평안도, 영안남.북도에 각1명씩 총 7명의 전임 병마절도사가 임명되었다. 이는 지방군수들의 직위가 정3품 목사에서 종6품 현감까지 그 직위는 다양하지만 각기 관찰사 아래에 독립적인 행정단위로 상.하관계가 없었기때문에 비상시 효율적인 대처가 어렵고, 지방수령들이 대체로 문신들이었기때문에 군사적인 지식이나 경험의 부족으로 전쟁 등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힘들기때문에 각도에 군사를 통솔할 병마절도사를 두었다. 충청병영은 원래 서산의 해미읍성에 있었는데, 이는 조선초 군사적 관심사가 해안으로부터 침입하는 왜구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역에 병영을 설치했기때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읍성위주의 방어전략이 대규모 전쟁에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었기때문에 산성을 축조하고 군사조직을 정비하는 단계에서 고을 규모가 크고 상당산성이라는 방어시설을 갖추었으며,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청주지역으로 충청병영을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병영의 옛 관아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고 현재는 중앙공원내 병영 출입문만이 남아 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문,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이 건물은 청주읍성 안에 있었던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출입문이다. 이 곳 안쪽의 병영에서 종2품의 병마절도사가 충청도의 군사 업무를 주관하였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청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자 효종 2년(1651) 해미에서 병영을 옮겨왔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가운데에 대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기둥은 네모진 높은 화강석 주초 위에 세워, 대문의 장중함과 안정감을 두었으며, 기둥 아래쪽이 비에 젖어 썩는 것을 방지하였다. 2층은 우물마루를 깔아 누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으며, 닭벼슬난간을 설치하여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조선시대 후기 병영의 출입문 형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며, 나무를 다듬는 방법, 지붕의 추녀곡선 등이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아름다운 전통 목조건축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청주시청>



청주 구도심 관아가 있던 곳은 지금은 청주 중앙공원이라는 도심공원으로 바뀌어 있고, 그 입구에는 충청병영 출입문인 남아 있다. 관아 출입문은 '아문'이라고 부르는데 병영출입문이라서 이 출입문은 '영문'이라고 부른다. 관아 출입문인 아문과 비슷한 형태로 앞면3칸, 옆면 2칸의 문루 형식을 하고 있다.


관아 출입문은 국왕을 상징하는 출입문으로 겹처마에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공포는 익공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네모진 화강석 위에 기둥을 세워놓고 있으며, 다른 출입문 문루에 비해서 기둥이 굵지 않은 편이며 날렵한 느낌을 준다.  1층 가운데에 대문을 달았다고 한다.


문루 아래 내부. 화강석 주초를 상대적으로 높게 쌓았는데, 비가 오면 침수되는 경우가 잦은 청주지역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뒷편에서 본 충청병마절도사 영문

청주입각수
입각수는 고려시대 청주목 객사문 앞에 있었던 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고려 공양왕 2년(1390) 5월에 이색.권근 등 10여 명이 이성계의 반대파로 지목되어 청주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마침 큰 장마로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이 나무에 올라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청주 객사의 마당이었는데, 일제시대 충청북도 도청이 이곳에 있다가 이전하면서 공원이 되었다. 나무는 축대를 둘러 보호하고 있다. 입각수라는 이름은 나뭇잎 혹은 그 뿌리의 모양이 오리발 모양에 가깝다고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높이는 약 20m, 밑둘레 8.6m, 수령은 900여년이 넘는다. <출처: 청주시청>


청주 중앙공원은 원래 청주목 관아 객사가 있었던 자리로 옛 객사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객사 마당에 있던 수령 900년이 넘는 오래된 고목인 입각수가 남아 있다.


이 나무는 생김새가 오리발같이 생겼다고 해서 입각수라고 부르는데, 지금도 생생히 살아서 잎을 피우고 있다.


입각수 뒷편 마당으로 모아 놓은 관리들의 공덕비


청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중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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