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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청주 망선루, 청주목 관아에 있던 공식 행사를 위해 세운 누각

younghwan 2012. 11. 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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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도청소재지가 있는 청주시는 삼국시대에 상당현과 서원소경이 설치되었으며, 가야가 멸망한 이후 김유신 장군으로 대표되는 가야후손들이 세력을 잡았던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원경이 설치되었고, 고려시대 이후로는 지방관제 중에서는 높은 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정3품 목사가 수령인 청주목이 설치되었다. 청주는 동쪽으로는 상당산으로 비롯하고 크고 작은 산들이 있고, 서쪽과 남북쪽으로는 금강 지류인 무심천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청주 구도심으로 상업의 중심지인 상당구 남문로 일대에는 조선시대 읍성 안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조선후기에 충청병영이 청주로 옮겨오면서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 관아가 모여있던 지역이다. 그 중 관아의 중심건물인 객사가 있었던 장소인 중앙공원에는 관아 건물 중 충청병영 영문과 누각인 망선루가 남아 있고, 객사 마당을 지키던 크고 작은 고목들과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를 볼 수 있다. 망선루는 앞면 5칸인 큰 규모의 누각건물로 그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올라가지만 여러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의 건물은 그 내력이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주 망선루,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이 건물은 고려시대 청주관아의 객사 동쪽에 있던 누각 건물이다. 청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궁궐로 돌아가다 청주에 머무른 기념으로 과거시험을 치렀는데, 이때 합격자의 방을 휘경루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세조 7년(1461)에 목사 이백상이 중수하고 충주 한씨 한명회가 누각의 이름을 고쳐 망선루라 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유지되다가 일제 때 무덕관 건축으로 철거되었다. 이때 김태희가 중심이 되어 1923년 남문로 제일교회 뒤로 옮겨 교육 및 집회장소로 활용되었다. 그 후 기둥이 심하게 부식되어 붕괴의 위험이 있어 2000년 12월 현재의 자리에 옛 모습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팔자지붕으로 새로이 복원 건립하였다. <출처:청주시청>



청주관아 객사가 있던 중앙공원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망선루. 청주목 관아에서 공식연회를 여는 장소로 지어진 누각건물로 그 연대는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 조선초 세조때 한명회가 누각의 이름을 '망선루'로 바꾸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2층 누각 건물이다. 고려시대부터 누각이 존재했지만 여러차례의 중수를 거쳤고, 현재의 건물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아주 높은 건물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누각이 헐리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져 교회건무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망선루'라 적힌 현판.


누각은 큰 주춧돌 위에 굵은 기둥을 올렸으며, 꽤 큰 규모의 건물이다.

청주 척화비,
이 비는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고종 8년(1871)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의 하나이다. 대원군은 고종 8년(1866)에 프랑스 함대가 침략한 병인양요와 고종 8년에 미국이 통상을 요구하며 침입한 신미양요를 물리친 후 더욱 쇄국을 다지고자,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외세를 경계토록 하였다. 비문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 먹는 것이다"의 열두자를 큰 글씨로 새겼다. 그 옆에는 "우리의 만대 자손들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작은 글씨로 새겼다. 그후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어 간 봄에 일본 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다. 이 척화비도 버려져서 석교동 하수도 뚜껑으로 쓰이던 것을 1976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것이다. 비석은 높이 108cm, 너비 47cm의 크기이다. <출처:청주시청>


망선루 옆에는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전국적으로 세웠던 척화비가 남아 있다. 원래 다른곳에 버려졌던 것을 찾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망선루 오른편에 남아 있는 공덕비로 보이는 비석들


천주교 청주 순교자 현양비, 구한말 천주교 박해시 이곳 청주목관아에서도 천주교 신자에 대한 처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큰규모의 관아가 있던 곳에서는 순교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청주목 객사 마당에 있었던 오래된 고목


청주 구도심 번화가 객사가 있던 자리에 위치한 중앙공원. 서울 탑골공원과 비슷한 분위기를 하고 있다.


공원 안쪽에 위치한 망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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