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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청주동헌, 조선시대 청주목사가 근무했던 관아 건물

younghwan 2012. 12. 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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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목은 삼국시대 서원경이 설치되었던 청주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기구로 고려가 국가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 광종대에 전국에 12개 목(牧) 중 갑오개혁으로 전국의 행정체제가 개편되기까지 유지되어 왔다. 청주에는 병자호란 이후 해미읍에 있던 충청병영이 옮겨와 상당산성을 중심으로 내륙의 군사적 거점이 되어왔다. 청주 구도심으로 대부분의 행정기관이 모여있는 상당구 남문로에는 객사가 있었던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 중 일부가 남아 있다. 중앙공원 뒷편에는 원래 충주목 관아 동헌이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은 청원군청이 소재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KT지사가 들어서 있는데, 대체로 충주목과 충청병영에 속했던 많은 관아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원군청 본관 뒷편에 남아 있는 청주동헌은 조선시대 높은 직위였던 정3품 목사가 수령이었던 충주목의 위상을 보여주는 큰 건물이다. 앞면7칸, 옆면 4칸의 건물로 중앙부처 관아건물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이다. 왼쪽 3칸은 큰 대청마루로, 가운데 3칸은 온돌방, 오른쪽 1칸은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다른지역 관아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청원군청 사무실로 사용되었다고 현재는 옛모습을 복원하여 군청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청주동헌,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
동헌이란 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건물이다. 청주동헌은 문헌기록에 의하면 서원현감 이병정이 10칸 규모로 창건하고 근민헌이라 하였으며, 후에 청주목사 이덕수가 28칸 규모로 크게 중창하고, 이름을  청녕각으로 바꾸었다. 또한 이 건물의 처마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 "도광5년을유5월일 청주아전개건 와조각"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순조 25년(1825)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벽과 내부를 개조하여 청주군청과 청원군청의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2008년에 해체보수를 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출처:청주시청>


청주시 상당로 청원군청 뒷마당에 남아 있는 옛 청주목 동헌. 앞면 7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관아 건물이다.


지금은 동헌 마당에 군청건물이 세워져 있어서 옛 관아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없도록 건물이 배채되어 있다.


원래 청주동헌은 10칸 규모의 크지 않은 건물로 '근민헌'이라 하였으나, 후에 28칸 규모로 크게 중건하면서 '청녕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을 수령이 재판이나 민원수렴 등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인 넓은 대청마루.


가운데 3칸은 고을 수령이 업무를 보고 손님을 맞이하는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왼쪽 1칸은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


누마루 바깥쪽 판문이 닫혀 있어서 어두운 느낌을 주지만, 원른 문을 열어두고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다른 지역 관아에서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청주동헌 앞쪽 1칸은 툇마루를 두고 있으며, 앞쪽으로도 축대를 쌓아서 높게 건물을 조성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마치 평지위에 건물을 조성한 것처럼 보인다.


온돌방 뒷편 굴뚝


동헌마당에는 청원군청 건물이 세워졌다.


동헌이 있었던 청원군청과 객사가 있었던 중앙공원 사이에는 KT건물이 있다. 이곳에는 구한말 전신을 도입할때 우체국으로 사용했던 관아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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