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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 건원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왕릉

younghwan 2012. 12. 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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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408년에 승하하자 조성한 왕릉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왕후의 능 9기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동구릉에는 한 분만 모신 단릉, 두분을 모신 쌍릉, 한곳에 산줄기를 달리해서 모신 동원이강릉, 두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이 있어 다양한 모습의 왕릉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한 왕으로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비, 14대 선조와 왕비, 16대 인조의 계비 장령왕후, 18대 현종과 왕비, 21대 영조와 왕비, 추존왕인 문조와 왕비, 24대 헌종과 왕비이다. 조선시대에는 왕릉의 조성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터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구릉에 왕릉이 조성된 왕은 대체로 능역 조성과정에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태조의 능이 있는 이곳에 왕릉을 조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조의 능인 원릉의 경우는 영조 본인에 의사에 반하여 정조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위도가 반영되어 이곳 동구릉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은 고려 왕릉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조선왕릉 조영제도 특유의 형태도 반영되어 있으며, 후대 왕릉의 표준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건원릉은 태종이 풍수지리설을 받아들여 조성한 동구릉은 뒷편 검암산을 주산으로 하고 좌우 지형이 청룡과 백호의 산세를 하고 있으며 남쪽의 안산을 바라보도록 능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에는 잔디가 아닌 억새풀로 덮여 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함흥에서 흙을 가져와 봉분을 조성하고 억새로 덮었다고 한다. 왕릉 앞 제사를 모시는 보물 1741호로 지정된 정자각은 이곳에 왕릉을 조성할 떄 처음 세워진 것으로 조선왕릉 조영제도의 표준이 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태조 건원릉
조선 제1대 왕인 태조(1335~1408)는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났고, 1392년에 조선을 창건한 후 1408년에 돌아가셔서 이곳에 안장되었다. 태조 건원릉은 조선을 창업한 군주의 무덤답게 동구릉 중에서 유일하게 이수와 귀부를 갖춘 대형 비석 2기가 세워져 있다. 본래 태조는 먼저 돌아가신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을 도성 안에 조성하면서 자신이 묻힐 터로 삼았으나, 태조의 아들인 태종이 이 지역에 건원릉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건원릉을 관리하기 위하여 재궁으로 개경사를 세워 태조의 명복을 빌었다. 태조는 돌아가실 때 자신의 무덤에 고향에서 나는 억새를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건원릉에만 봉분에 억새가 심어져 있다.
<출처:문화재청>


조선을 건국한 이후 처음으로 조성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은 풍수지리설을 반영하여 조성한 단릉으로 봉분, 정자각, 신도비 등으로 구성된 조성왕릉의 표준이 되었던 왕릉이라 할 수 있다.


왕릉 입구의 홍살문


홍살문 앞으로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금천교라는 돌다리가 놓여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왕릉인 건원릉


홍살문을 지나면 박석을 깔아 놓은 참도가 놓여 있다. 참도는 신(혼령)이 지나가는 신도와 국왕이 지나가는 어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자각으로 연결된다.


참도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 월대로 연결되며 정자각 오른편에 2개의 돌계단과 연결된다.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 보물 1741호,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은 태종 8년(1408)에 건원릉과 함께 건립되었다. 그 후 여러차례 수리를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건원릉 정자각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제향을 모시는 상싱성도 있지만, <국조오례의> 중 길례의 단묘도설과 비교할 때 건립 당시의 기본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왕릉 조영제도에 있어서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크다. <출처: 문화재청>


왕릉에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정자각이다. 건원릉 정자각은 보물 174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처음으로 세워진 정자각 건물로서의 가치도 있지만, 조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국조오례의>에 정의된 정자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원릉 정자각


정자각 월대에서 본 정자각 내부. 정자각은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건물로 앞쪽에 월대가 있어, '丁'자처럼 생겼다고 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단청과 공포, 문살


정자각 추녀마루 잡상


정자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참도와 홍살문


정자각 앞쪽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수복방과 수라간 건물이 있다. 동구릉에는 재실을 두어 다른 왕릉에는 건물터만 남아 있는데, 건원릉은 상징적인 의미로 두건물을 복원해 놓고 있다.


정자각 뒷편에는 신도비와 왕릉 비석이 있는 비각이 있다. 조선전기에는 국왕의 신도비를 세웠으나, 후대에는 왕릉을 간소화하기 위해 신도비는 세우지 않고 비석만 있다. 건원릉은 조선이 처음 세운 왕릉으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건원릉 신도비와 비석


건원릉 봉문에는 다른 왕릉과는 달리 억새가 심어져 있으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태조 이성계를 위해 함흥에서 흙을 가져와 봉분을 조성하고 억새를 심었다고 한다.


뒷편에서 본 정자각


동구릉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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