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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대롱불기 유리(Free-blown glass)

younghwan 2013. 2. 1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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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가공기술은 기원전 15세기경에 유리로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코어 성형기법이 개발된 이래로 거푸집을 이용한 금속가공기술을 적용한 주조기법, 다양하고 화려한 색감이 뛰어난 모자이크기법 등이 개발되었다. 인류가 유리를 사용한 이래로 다양한 가공기술이 개발되고 유리의 용도 또한 처음에는 보석이나 귀금속처럼 장식을 위한 장신구 역할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점차 다양한 형태의 유리 그릇이 만들어지면서 실생활에 사용되는 생활용품으로 그 기능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유리의 생산기술 또한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했고 생산량에 한계가 있었다고 여전히 일반인들은 사용하거나 가질 수 없는 고급스러운 물품에 속했다.

 유리 가공 기술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시리아에서 속이 빈 금속관을 이용하여 유리를 불어서 정교하게 유리 용기를 만드는 대롱불기(유리불기) 기법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기법은 1000도 이상의 액체 상태 유리를 속이 빈 금속관 끝에 묻혀서 입으로 공기를 불어 병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기술은 오늘날까기도 유리가공 기술의 기본이 되는 기법으로 이전의 기법에 비해서 엄청난 생산성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리의 속성이 액체상태에서 급속히 굳지 않고 서서히 굳는 점을 이용한 것이며, 공기를 불어서 유리막을 형성하여 다양한 형태로 가공함으로 장인이 취양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법의 유리가공기술은 유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하였으며, 당시 로마제국의 번영과 함께 당시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물품이 될 수 있었다.

대롱불기 기법의 발명
기원전 1세기 무렵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의 장인들은 속이 빈 대롱 끝에 녹인 유리를 바르고 숨을 불어넣어 용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유리 제작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이었다. 불과 몇 분 만에 그릇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 기법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에 걸맞는 새로운 형태의 유리 용기가 인기를 얻으며 기존의 기술을 대체해 갔다. 대롱불기 기법의 발명으로 용기 크기의 제한이 사라졌고, 제작 과정이 단순화.가속화되면서 대량 생산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유리 용기는 이제 상류층이 사용하는 고급품에 한정되지 않고 서민들의 식기나 저장용기로 상용화되기 시작하여, 기원후 1세기 무렵에는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이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동부 연안에서 시작된 유리 제작은 이 같은 새로운 경향에 힘입어 이탈리아 반도의 해안 도시 등 로마 제국 영내로까지 널리 확산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대롱불기 유리(Free-blown glass)
틀을 쓰지 않고 대롱으로 유리를 불어 만드는 방식은 틀을 쓸 때보다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휠씬 다양한 기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시기에 많이 만들어진 목이 길고 날씬한 병은 향유를 담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흙이나 금속으로 만든 기존의 그릇과 달리 내용물이 비치는 유리 용기는 높은 이윤을 남기는 로마제국의 하이테크 상품으로 세계 각지로 유통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병, 동지중해 연안, 2세기


긴목병(동지중해 연안, 1~2세기),
 

긴목병(동지중해 연안, 1~2세기), 넓은 입 병(동지중해, 1~2세기),


끝이 뾰족한 가는 병(동지중해 연안, 1~2세기)

대롱불기 기법이 발명되자 곧 장인들은 불기 과정 중에 약간의 조작을 통해 놀라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마노를 닮은 줄무늬도 그 중 하나였다. 살짝 불어 놓은 유리의 표면에 흰색 유리실을 감은 뒤 더 불어주면 유리실이 확장되고 왜곡되면서 굽이치는 듯한 줄무늬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인도에서 구해 와야 했던 귀한 마노에 대한 수요를 바탕으로 이 같은 그릇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출처:중앙박물관>


줄무늬병, 시리아, 기원전후

앞의 그룹보다 땅딸한 비례의 병이다 이러한 병의 바닥에는 대게 펀티(punty) 자국이 있다. 펀티는 이탈리아어로 다리를 의미하는데, 대롱불기 기법으로 형태를 만들 때 대롱에서 유리를 뗴어내 구연부를 빚거나 손잡이를 달 때 바닥에 붙이는 막대를 말한다. 이러한 기술도 대롱불기 기법의 발달과 함께 생긴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병(이란, 1~3세기), 병(동지중해 연안, 1~4세기)


스키포스(흑해연안~시리아, 1세기), 냄비모양 넓은 입 병(동지중해 연안, 2~3세기), 대롱불기로 형태로 만든 손잡이를 따로 붙인 것이다.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잔인스키포스는 주둥이 부분을 접었으며, 하단을 죄어 굽을 만들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선각장식 잔(동지중해, 3~4세기), 선각 장식 잔(동지중해 연안, 2~3세기), 유리잔을 갈이판에 놓고 그라인더나 뾰족한 기구를 이용하여 표면에 선을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을 자유롭게 조정하여 패턴을 만드는데, 선각은 장식의 기능 외에 잔을 쥐었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대접(동지중해 연안, 4~5세기), 잔(동지중해 연안, 4~5세기), 대롱으로 부풀인 유리가 식기 전에 기벽을 접는 장식 방법도 있었다. 여기서의 잔은 구연부를 접은 것이고, 대접은 일단 형태를 만든 뒤에 위아래로 힘을 가하여 힘을 받은 기벽이 살짝 접히면서 마치 선을 두른 듯한 효과가 나도록 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굽다리잔(동지중해 연안, 3~4세기)

대롱끝에 묻힌 유리를 풀어 가면서 재빠르게 쪽집게로 표면을 집어주면 이와 같은 돌기를 만들 수 있다. 열이 식기 전에 한 번에 모든 공정을 마쳐야 한다. 돌기 장식은 시리아, 레바논 등 동지중해 연안의 공방에서 제작되었다. 진기한 것에 대한 흥미가 점점 높아지는 양상을 보여주는 예다. <출처:중앙박물관>


돌기장식 굽다리 잔(동지중해 연안, 1~3세기), 돌기 장식 대접 (이란, 1~3세기),


돌기 장식 단지(동지중해 연안, 3~5세기), 돌기장식 대접 (이란, 1~3세기)


뚜껑달린 원통형 병, 동지중해 연안, 기원전 1~2세기


틀에 대고 유리를 부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쉽고 기술적으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고대 유리 제작에 가장 오래 쓰인 기법은 공중을 향해 부는 대롱불기였다. 용기의 형태와 장식을 얻기 위해, 장인은 유리가 살짝 부푼 상태의 대롱을 회전시키고, 평평한 면에 굴리거나 도구를 사용해 형태를 잡았다. 이 과정이 끝나면 다시 한 번 대롱을 불어 용기를 제 크기로 팽창시켰다. 대롱불기로 제작된 유리 용기는 기벽이 얇고 투명도가 높다. 당시 사람들은 점점 유리라는 소재의 독특한 속성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서, 무색 유리에 조각을 넣거나 유색의 유리 끈을 둘러 장식한 용기도 제작하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병, 동지중해 연안, 3세기.


물병은 전 세계적으로 용도가 비슷하지만, 세부 장식에 있어서는 지역적 특색을 보인다. 동지중해 연안에서는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인 오니노코에가 많이 제작되었다. 주둥이를 나팔꽃처럼 접어 액체를 따르기 좋도록 한 예도 있는데, 이것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수병이라고 불렸다. 손잡이 상부에 달린 돌기는 금속제 물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손잡이 달린 물병(동지중해 연안, 4세기), 손잡이달린 물병(동지중해 연안, 3~5세기), 손잡이 달린 물병(동지중해 연안, 3~4세기), 손잡이 달린 물병(동지중해 연안, 4세기),

용기의 몸체가 완성되면, 용기와 같은 색 혹은 강한 대비를 이루는 색 유리를 끈처럼 길게 뽑아 손잡이나 끈을 매달 수 있는 고리의 형태로 만든다. 이따금 장인들은 사용의 편리와 무관하게 유리 끈 자체를 장식화 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유리 끈은 금세 식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끈의 형태를 유지하기 못하기 때문에 끈 장식은 숙련도를 요하는 작업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꼬임무늬 물병(동지중해 연안, 1~3세기), 끈 장식 병(동지중해 연안, 1~2세기), 두개의 손잡이가 달린 병(1~2세기), 끈 장식 항아리(동지중해 연안, 4세기),


끈 장식 병(동지중해 연안, 4~5세기), 끈 장식 병(동지중해 연안, 1~2세기), 끈 장식 항아리(동지중해 연안, 4세기), 두개의 귀가 달린 병(동지중해 연안, 1~2세기)

유리병, 국보 193호, 경주 황남대총에 출토된 문화재이다. 지중해 연안인 로마로부터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수입된 제품으로 설명이 되어 있지만,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졌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유리병은 손잡이에 금실을 감아 수리한 흔적으로 보아 매우 귀한 물품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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