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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장성 고산서원, 구한말 성리학자 기정진을 모신 서원

younghwan 2013. 3. 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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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선군 진원면 면소재 가까운곳에 위치한 고산서원 구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기정진을 모신 서원이다. 기정진은 순창출신으로 구한말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로 서경덕.이황.이이를 계승한 정통 성리학의 대가로 일컬어진다. 구한말 세도정치체제에서 잠깐 벼슬에 나간적이 있으나 일생의 대부분을 호남지방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는데 보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 송나라와 조선의 정통 유학을 연구했으며 '납량사의', '정자설', '이통설'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장성 고산서원은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서원으로 모셔진 인물 또한 기정진과 그의 제자들이다. 서원의 건립은 조선후기 영.정조대에 들어서면서 서원의 무분별하게 설립되면서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서 사회문제가 되었기때문에 그 이후 서원의 설립이 주춤하게 되었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대부분이 서원이 없어졌다. 그런 까닭에 전국적으로 많은 유학자들이나 고관을 지낸 인물들은 고향에 서원과 비슷한 규모의 서당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면서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했다. 고산서원이 전국의 많은 서당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이 멸망한 일제강점기에 기정진의 제자들이 서당을 임의로 서원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보인다. 고산서원은 그 규모가 비교적 큰 편으로 강당, 사당, 동.서재, 장서각 등 7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판경각에는 노사문집 목판을 비롯하여 많은 전적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장성 고산서원,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 옛 성현을 제사하고 제자를 교육하던 사설기관이다. 고산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 6대가의 한 사람인 조선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 노사 기정진(1708~1879)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한 곳으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문인, 후학들이 1924년에 건립한 것이다. 서원 경내의 면적은 2,284평으로 여기에는 7동의 건물이 있다. 특히 14평의 장서각에는 노사문집 목판 980매와 노사진 22책(1첩)을 비롯하여 많은 전적과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그의 문인인 조성가.이최선.김록휴.조의곤.정재규.기우만.김석구.정의림이 배향되어 있다. <출처: 장성군청>


장성 고산서원은 구한말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노사 기정진을 모신 서원이다. 원래 기정진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던 전형적인 서당을 일제강점기에 서원으로 바뀐 곳이다.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서원 출입문.


서원 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인 강당. 앞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뒷편에서 본 강당


강당 왼쪽편에 유생들이 기숙사인 서재와 소장 전적들을 보관하는 장서각이 있다.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 서원이 기능이 없어진 일제강점기에 세워졌지만 앞면 5칸 규모로 다른 서원에 비해서 큰 편이다.


강당 뒷편에 위치한 사당. 기정진과 그의 제자들을 모시고 있다.


서원 출입문 앞쪽에 있는 서원관리인들이 머무는 살림집


서원 담장과 작은 출입문


서원 입구에 세워진 비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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