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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죽림재,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마을 문중에서 세운 마을 글방

younghwan 2013. 3. 1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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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광주댐 아래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 마을 언덕에 위치한 죽림재는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서원과 비슷한 성격을 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중기 문신인 조수문(1426~)이 후학 양성을 위해 작은 정자인 죽림재를 세운 이후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서원과 비슷한 규모로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마을 건너편에 조선중기 이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양자징 주돌 창평지역 25개 성씨가 후학을 양성하기 건립한 수남학구당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죽림재가 있는 분향리 마을은 담양 일대에서 경치가 좋아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양반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이 들어서 있는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이 골짜기를 빠져 나와서 들판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죽림재 부근은 공립교유기관인 창평향교와 사설교육기관인 수남학구당이 있어 창평현 일대의 교육기관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증암천 상류의 크고 작은 정자들을 찾는 지역 유력인사들이 지나가면서 잠깐 들릴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학문적 교류가 용이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서당 건물로 사용되었던 작은 정자인 죽림재를 중심으로 조수문 등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인 죽림사, 많은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는 강학공간인 취사당,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머물수 있는 숙소 건물과 또 다른 사당 건물인 세일재, 장서를 보관하던 장서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입구에는 연못을 조성해 놓고 있다. 건물들의 규모는 웬만한 고을의 향교나 서원보다 큰 규모로 창녕조씨 집안에서 이곳을 서원으로 승격시킬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죽림재의 건물배치는 특이하게 나즈막한 언덕에 있는 사찰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최근에 중건된 것인데, 문중 재실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담양 죽림재, 전남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이 죽림재는 창녕조씨 문중의 글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수련장으로 죽림 조수문이 창건했다고 한다. 초창 건물은 임진왜란 때 귀중한 책들과 함께 불에 타 버렸고 인조 원년(1623)에 6대손인 삼청당 조부에 의해서 다시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48년에 중수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죽림사는 죽림 선생과 그 아들인 운곡 조호, 삼청당 조부와 소은 정민하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1708년에 문인과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철폐되었다가 2002년 복원되었다. <출처:담양군청>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마을 뒷편에 위치한 죽림재. 창녕조씨 집성촌인 마을에서 운영하는 글방으로 지어진 건물로 서원으로 승격할 의도를 가지고 건물들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죽림재는 특이하게 일반적인 서원과는 약간 다르게 사찰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죽림재 입구에 조성해 놓은 연못


죽림재는 실제로 앞면 2칸 짜리 온돌방이 있는 작은 서당 건물로 조선중기 문신인 조수문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 건물로 지은 것이라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48년에 중수하였다.


죽림재 현판


사당 출입문


죽림재 사당인 죽림사. 죽림사는 죽림 조수문과 그의 아들인 조호를 추모하기 위해 1708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사당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죽림재와 죽림사


죽림재 아래에 있는 장서각


강당 건물인 취사당. 앞면5칸 건물로 경사진 지형에 지어 문을 열고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누각처럼 지었다.사찰 강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강당은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이고 양쪽에 온돌방을 1칸씩 두고 있다.


사당 건물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세일재. 사당과는 달리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내부에 영모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세일재 내부. 영모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강당 오른편에 있는 숙소 건물.


마당 양쪽에 3칸씩 동.서재 형태로 기숙사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기숙하는 곳으로 실제로는 마을과 가까워 이 마을을 찾는 손님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증암천 상류지역은 가사문학의 산실로 경치가 빼어나 예로부터 이곳을 유람하기 위해 찾는 손님이 많아 숙소건물을 많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국의 경치좋은 곳이나 여행객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 위치한 고택이나 서원,향교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죽림재 입구에 세워진 비석들


죽림재에서 내려다 본 마을 풍경. 주변에 넓은 농토가 있어 꽤 경제력이 있었던 집안임을 알 수 있다.


큰길에서 보이는 죽림재와 분향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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