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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태안 목애당, 옛 태안군 관아 동헌

younghwan 2013. 3. 2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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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해안 끝자락 태안반도에 위치한 태안군은 조선시대 태안군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서산과 접한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서해 먼바다와 직접 맞닫아 있고, 남쪽으로는 천수만, 북쪽으로는 가로림만이 있다. 태안은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갯벌은 적은 편이며 모래사장과 송림이 발달되어 있어 크고 작은 포구와 해수욕장들이 있다. 삼국시대 태안은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는 중요한 창구였으며, 불교를 비롯한 중국문물이 전래되는 중요한 접점으로 태안마애석불, 서산마애석불, 보원사절터 등에서 당시 교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태안이라는 지명은 고려 충렬왕때부터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태안군이 설치되었다. 태안은 관할지역이 넓지 않기때문에 태안군수는 지방관의 역할보다는 조선시대 세금을 운송하던 연안항로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중국과 항로가 연결되는 곳이었기때문에 군사조직인 방어사가 군수를 겸임하였던것으로 보인다. 

 태안군은 일제강점기에 서산군과 합병되어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1989년에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었기때문에 옛 태안군 관아가 있었던 곳에는 태안군청이 아닌 태안읍사무소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 태안읍사무소 부근에는 당시 관아였음을 보여주는 동헌건물인 목애당.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인 경이정, 교육기관인 태안향교와 옛 객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태안초등학교가 있다. 태안군수가 근무하던 동헌건물인 목애당은 읍사무소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오래된 것은 아니고 19세말 동학혁명으로 불타버린 것을 1900년대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읍사무소를 비롯하여 각종 관청건물로 사용되면서 많이 변형되었던 것을 최근에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태안군 동헌 전경

태안동헌 목애당, 충남 태안군 태안읍 남문리
목애당은 조선시대 태안현의 동헌으로 사용된 건물이며, 조선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지도서' 태안군 공해조에 보면 객사 안에 정청.동헌.서허.청망.중대청.하마대 등이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목애당 외에 근민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내삼문과 경이정, 이들 중간에 있는 부속건물 등 4동만이 남아 있다. 목애당 건물은 오랫동안 태안군청의 민원실로 사용되면서 뒤편으로 건물을 달아내었고, 내부도 많이 변경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다. <출처:태안군청>


태안군 동헌건물이었던 목애당. 앞면 6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가운데 2칸은 고을수령이 재판 등의 업무를 수행하던 대청마루가, 양쪽에 집무실로 사용된 온돌방이 3칸, 1칸씩 있다.


목애당 현판. 원래 동헌건물에는 단청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조선의 사회체제가 서구식으로 바뀌던 구한말에 복원하면서 단청을 칠한 것으로 보인다.(?)


고을 수령이 의자에 앉아 재판 또는 민원인을 접견하는 공간인 대청마루.


대청마루 천정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정을 하고 있다.


대청마루 오른편 1칸에는 대청마루와 작은 온돌방이 있다. 손님을 접견하는 방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집무실로 사용되던 왼쪽 3칸 온돌방


뒷쪽에서 본 목애당


태안군 관아 동헌 건물인 목애당


목애당 뒷편에는 읍사무소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석조건물이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동헌 출입문.


동헌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


태안군 동헌 출입문과 주변에 남아 있는 고목들


태안군 옛 관아가 있던 곳에는 지금 태안읍사무소가 있다. 뒷편으로는 태안마애석불이 있는 태안군의 진산인 백화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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