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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태안 안흥성, 태안반도 남쪽끝 중국 사신이 오가던 안흥항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축성

younghwan 2013. 4. 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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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흥성은 태안반도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흥항 뒷산에 쌓은 조선시대 석성이다. 안흥항은 충남 서해안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로 바깥쪽에 신지도라는 섬이 있어 먼바다의 파도를 막아주고 갯벌이나 해안사구가 없어 배가 정박하기 좋은 천혜의 항구이다. 안흥항은 한반도 서남해안을 따라 발달한 한.중.일 연안항로를 따라서 선박이 오가던 고대국가 이래로 중요한 항구였으며, 특히 만주지역 해안이 고구려를 비롯하여 북방세력에 장악되어 선박의 통행에 어려움을 겪던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할 때 산동반도나 그 이남 지역과 직접 연결되던 항구로 백제가 중국 문물을 받아들어던 창구역할을 했던 항구이다. 또한 조선초기 몽골이나 청나라의 압박을 받던 시절 명나라 사신들이 오가던 항구였다. 또한 고려~조선시대 연안 항로를 이용하여 세금으로 걷어들인 곡식을 운반하던 배들이 오가던 중요한 항구로 조선시대 이곳에는 수군첨절제사가 배치되었다.

 안흥성은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후기 효종대에 경기도 선비인 김석견의 건의를 받아들여 요새로서 구축한 산성이다. 안흥성은 석축을 쌓아 만든 산성으로 성의 둘레은 약 1.5km이고, 출입문에 해당하는 서쪽 성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경사가 있는 산성으로서의 천혜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성내부에는 약 20여호 가구가 살고 있으며, 성을 보수하고 지키는데 지원할 승병들이 머물렀던 태국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두고 있는데 그 중 안흥항과 가까우면서도 경사가 심하지 않은 서문의 주출입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흥성은 태안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으로 신의도라는 섬이 먼바다의 큰 파도를 막아주고 있어 항구로서 천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태안지역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의 어항으로 자리잡고 있다.

태안 안흥성,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1655년(효종6)에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1,714m이다. 본래는 안흥진성이었으나, 후에 안흥성이라 통칭되었고 수군첨절제사가 배치되어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였다. 성벽의 돌에는 성의 축조를 담당한 고을의 석공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인근의 19개 군민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대시설로는 4개의 성문이 있다. 둥문은 수성루, 서문은 수홍루, 남문은 복파루, 북문은 감성루라고 하였다. 이 성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때에 성안의 건물 일부가 불에 탔다. 현재 성안에는 20여 호의 민가와 태국사 등이 있다. <출처:태안군청>


태안 안흥성 서문이 수홍루. 안흥성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 방향으로 뚫려 있어 서문을 주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흥성에서 육지로 연결되는 길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한 승병들이 거처하던 사찰인 태국사로 연결되는 성벽


남쪽으로는 안흥항 뒷동산으로 성벽이 연결되고 있다.


안흥성 서문 주변 성벽


성안에서 본 안흥성 서문 수홍루


수홍루 앞쪽으로는 서해바다와 바로 연결된다. 지금은 안흥항과 신진도로 들어가는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안흥성 서북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태국사


태국사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안흥앞 바다와 신진도. 안흥항과 신진도 사이에는 배가 지나가는 수로를 형성하고 있으며, 신진도가 먼바다 파도를 막아주고 있어 항구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태국사,
백제 무왕34년 국태보안의 원으로 태국사가 창건된 이래 조선조 세종대왕의 특명으로 중창되어 중국 사신들의 무사항해를 빌었고, 국란시 승병을 관할하던 호국불교의 요지가 되어 역사적 유래가 깊은 사찰이다. 그 후 동학란시 소멸되어 명맥만 유지하여 오다, 1982년에 중창하였고, 전통사찰 제47호로 등록되어 있다. <출처:태안군청>


안흥성 내에 있는 태국사는 건물들이 대부분 최근에 중창되어 시골에 있는 작은 암자처럼 보이지만, 안흥항이 중국과의 교류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수군첨절제사가 주둔했던 조선시대 안흥성의 성격으로 볼 때 유서깊은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흥성 주요 관아와 함께 동학농민전쟁 때 불타버린것으로 보인다.


태국사 주변 성벽. 서해바다와 안흥성과 연결되는 육로를 감시하기 좋은 곳에 사찰이 위치하고 있다.


태국사에 내려다 보이는 안흥항에서 태안읍으로 연결되는 육로


태국사에서 동쪽 언덕으로 연결되는 성벽. 중간에 북문에 해당하는 복파루가 있다.


북문은 서문과 달리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루가 지금은 복원되어 있지 않다.


안흥성 내부에는 20여호의 민가가 들어서 있다. 원래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학농민전쟁 때 피해를 입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멀리 남쪽편 고갯길에 남문이 보인다.


안흥성 바깥쪽에서 본 북문


북문 주변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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