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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대구 달성 (사적 62호), 원삼국시대 대구지역 토착세력이 쌓은 토축성

younghwan 2013. 4. 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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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 중심부에 위치한 달성공원은 작은 동물원이 있고, 조선시대 경상감영 출입문이었던 관풍루가 있는 대구의 오래된 도심공원이다. 달성공원은 원래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읍성 바깥쪽에 있던 오래된 토성으로 조선초기에는 달성내에 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곳엔 고려시대에는 달성서씨가 살던 사유지였으나 전국적으로 국방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읍성을 쌓던 세종대에 국가소유로 바뀌어 읍성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도시에 공원이 처음 세워지기 시작했던 1905년에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67년에 오늘과 같은 모습의 현대식 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구 달성은 대구시민이 많이 찾는 유서깊은 도심공원이지만,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는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은 원삼국시대 대구지역 지방세력이 성장하여 고대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쌓은 토성으로 그 축성방법이나 위치 등이 신라의 궁성이었던 경주월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성은 평지의 낮은 구릉에 토축을 쌓아서 읍성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의 높이는 약 4m정도이고, 전체 둘레는 1.3 km이다. 이곳에서는 원삼국시대 조개더미와 각종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성벽이 보강되면서 읍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원래 토축성으로 쌓은 것을 고려말.조선초에 일부 성벽에 석축을 쌓아 그 흔적이 지금도 여러곳에 남아 있다. 경주 월성, 서울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성곽 중 하나이다.

대구 달성, 사적 62호, 대구시 중구 달성동
대구는 신라때 달구화현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 경덕왕(742~765, 재위) 때에 이르러 비로소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의 이름은 이 달구화 또는 달불성에서 유래된 것이다. 달성은 경주의 월성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달성은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그들의 생활 근거지에 쌓은 성곽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의 아래층 위에는 조개무지 유적이 있고, 목책의 흔적도 있다. 따라서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점애왕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극종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병합된 뒤에는 군사요지로 중시되었으며, 그후 고려 공양왕 2년(1390) 토성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조 선조 29년(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이곳에 둔 일이 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되었고 , 주위길이는 약 1,300, 높이 4m 안팎이다. 성벽 상층부에는 큰 돌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 후대에 토성위에 석축을 가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대구달성>


대구 달성은 원삼국시대 대구지방 토착세력이 고대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쌓은 토축성으로 평탄한 지역의 낮은 구릉에 토축을 쌓아서 만든 성곽으로 그 형태가 경주 궁성이었던 월성과 비슷하다. 둘레 약 1.4 km 정도로 성곽내부에는 관아가 들어설 수 있는 소규모 읍성 정도의 규모이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05년에 근대식 공원이 달성공원이 성곽 안에 조성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달성서씨가 살았던 사유지였으나 전국적으로 읍성을 쌓기 시작했던 조선초 세종대에 국유화되어 석축을 쌓는 등 일부 성벽을 보강하여 읍성으로 활용하였다.


성벽은 평지에 있는 자연구릉에 토축을 쌓아서 만들고 있으며, 외부에서 약 4m 정도 높이의 성벽이다.


달성 성벽 위로 옮겨진 옛 경상감영 출입문 문루였던 관풍루


흙으로 쌓은 토축성인 달성 성벽은 자연스럽게 산책하기 좋은 길로 바뀌었다. 한반도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원삼국시대에 쌓은 토축성으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성벽위에 세워진 관풍루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달성 내부


성벽 곳곳에 벤치를 조성하여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도심공원으로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달성 북쪽편 성벽길


성문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곳


달성에서도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변을 감시하기 위한 장대가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서북쪽 모서리에 위치한 성벽으로 오르는 길


달성 서쪽 방향이 한눈에 들어는 장대 역할을 했던 곳.


달성 서쪽편 성벽. 달성은 토축성으로 출입문이 대구도심과 하천이 있는 동쪽편에 출입문이 있고, 동쪽편은 비교적 성벽을 높게 쌓고 있다. 달성에서 방어가 취약하고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방향이 서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달성 서쪽편 도심.
 

성벽 안쪽으로는 높지가 않지만 바깥쪽으로는 꽤 높은 성벽이다. 성벽 아래에는 조선시대에 쌓았던 석축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돌들이 보인다.


달성 서쪽편 성벽길


흙으로 쌓은 토축성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흙을 다져서 쌓은 백제의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과는 경주 월성처럼 내부에 돌과 흙을 섞어서 쌓는 것으로 보인다.


대구 달성 서쪽편 성벽길


달성 남쪽과 서쪽을 감시할 수 있는 장대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서남쪽 모서리 지점


달성 남쪽편 성벽길


성벽이 꽤 높고 인공적으로 토축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성 출입문이 동쪽으로 내려오는 성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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