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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조선 양반사회, 유교 경전과 학습교재

younghwan 2013. 5. 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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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불교가 국가와 사회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고려시대와는 달리 관료.유학자 등 신진사대부세력이 무장세력과 함께 세운 국가이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세력은 전제개혁 등을 통해 권문세족과 불교사원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고, 신흥 사대부 세력이 받아 들인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다. 조선은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로서 유학을 공부하여 과거를 통해 진출한 사대부를 중심으로 관료체제가 정비됨으로써 점차 양반은 계급적 의미를 갖게 된다. 조선초에는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계급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없으나, 점차 과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관료를 역임한 집안의 후손들이 양반으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원래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라는 계급은 법제도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양인은 모두 과거를 통해 관료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경제적 기반이 있는 관료집안이나 지역에서 경제력을 갖춘 고려말 지방사족출신들이 점차로 과거를 통해 중앙으로 진출하여 양반계층을 이루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중앙에서 정치를 주도하고 지역을 이끌어가는 지배세력으로 정치가이자 관료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과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학문적 수양을 필요로 했다.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유교경전을 익히고 심화하여 학자적 소양을 갖추었으며, 중앙에 진출하여 관료를 역임하며 많은 인사들과 교류를 하였다. 유교사회에서 양반들이 살아가는 길을 표현한 말로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몸을 닦고 집안을 안정시킨 후 나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한다.'를 들 수 있다. 대구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유물로는 이 문구를 기준으로  '수신'을 의미하는 양반들이 과거에 진출하기 전 공부해야 했던 '사서삼경'을 비롯한 유교경전, '제가'를 의미하는 집안을 운영하는 기준이 되는 책자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치국'과 '평천하'라고 함은 학문을 세상에서 실현한다는 것을 뜻하며 주로 관직에 진출하여 사회에 봉사함을 의미한다. 조선시대는 유교관료사회로서 경제활동을 포함하여 모든 사회가 관료를 중심으로 움직인 사회였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을 진출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삶의 목표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과거합격증서라 할 수 있는 홍패나 관직임명장 등은 수많은 집안에서 가보로 간직해 왔기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유물 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수신
유학을 공부하여 그 이념과 도덕을 자신을 수양하고 나아가 사회를 교화하는 것을 임무로 여기는 지식인을 선비라 한다. 자기 절제를 통해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고자 한 선비는 선현들의 가르침이 담긴 유교경전을 익히고 이론을 심화하는 한편, 마음 수양에 부단히 힘썼다. 선비라고 해서 학문과 도덕으로 끊임없이 수양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여유로운 눈길과 멋스러운 정서를 시.서.화로 형상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또한, 자신들이 머무는 공간도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가구와 문방제구로 멋스럽게 꾸몄다. 이들 예술작품에는 선비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이상과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출처:대구박물관>

사서삼경
사서삼경은 유교의 기본 경전으로, 사서는 대학.중용.논어.맹자, 삼경은 시경.서경.역경을 일컫는다. 중국 명나라의 영락제에 의해 사서대전이 편찬되었고 이것이 조선에 전래되어 널리 간행,보급되었다. 사서는 모든 사람의 기본 자질을 기르는 정치, 도덕, 사회, 문화의 준칙을 설파한 내용이며, 삼경은 성인의 변하지 않는 가르침으로 모든 진리의 원천이 된다. 삼경에 예기.춘추를 더하여 오경이라 일컫는다. <출처:대구박물관>


시전언해(조선 19세기), 춘추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모아 엮은 책으로 한글로 음과 토를 달고 우리말로 번역을 한 언해본이다. '시경'은 공자가 3,000편을 정리하였다고 하나, 주나라 초부터 춘추 전국시대 까지의 305편만 전한다. 서전언해(조선 1826년), 주희의 제자 채침이 '서경'에 주해를 달아 편찬한 것을 한글로 한자 독음과 구결을 달고 언해하여 간행하였다. 이 책은 1826년에 경상감영에서 간행한 것이다. <출처:대구박물관>


대학장구대전, 조선 1866년, '대학'은 유교의 목적과 정우의 근본을 서술한 경전이다. '장구대전'은 주희가 편찬하고 주를 단 것에 여러 학자들이 소주를 붙인 책이다. <출처:대구박물관>


중용장구대전(조선 19세기), 논어집주대전(조선 19세기), 노언집주대전은 주희가 자신의 학설에 기초하여 이정 및 그 제자들의 학설을 받아들여 '논어'에 해한 장구를 나누어 집주한 책으로 1882년 경상감영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출처:대구박물관>


맹자집주 대전, 조선 19세기, '맹자'는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한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맹자집주대전'은 명의 호광 등이 주희가 '맹자'에 주석을 달아 저술한 '맹자집주'에 대하여 주자학파 제가의 학설을 주석으로 더 보충하여 편찬한 책이다. <출처:대구박물관>


주역전의대전, 조선 19세기, 삼경의 하나인 '주역'을 명 성조의 칙명으로 호광 등 42인의 여러 주석을 모아 펴낸 책이다.


근사록, 조선, 중국 송나라 때 주희와 여조겸이 편찬한 성리학 해설서이다. '근사'는 논어의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힐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仁은 그 가운데 있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소학', '성리대전'과 함께 중시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심경발휘, 조선, 중국 송나라 진덕수가 편찬한 '심경'에 제가의 학설과 붙여 1606년에 정구가 편찬한 책의 복제본이다. <출처:대구박물관>


심경부주, 조선 19세기말 ~20세기초, 중국 송나라 진덕수가 여러 경전에서 심성 수양에 관한 격언을 모아 편찬한 '심경'에 명의 정민정이 주석과 서문을 붙이고 그의 제자 왕조가 발문을 붙여 간행한 책이다. <출처:대구박물관>


이황 글씨, 조선 16세기, 퇴계 이황이 중년시절 쓴 글씨로 추정되는 행서오언시이다. 퇴계는 대철학자이면서 조선시대 서예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고 실천했던 대표적인 서예가로 높이 평가된다. <출처:대구박물관>


조희룡이 그린 묵죽도, 조선 19세기, 조희룡(1797~1859)은 조선후기 화가로, 1813년에 식년시에 급제하여 오위장을 지냈다. 이 그림은 8폭 그림 중 1폭으로, 대가지와 잎만으로 화면을 채운 짜임새 있는 구도에 농묵과 담묵을 조화롭게 섞어 주종에 의한 질서와 깊이감을 잘 표현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사랑방
사랑방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생활공간으로, 학문을 연마하는 서재인 동시에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로써 다양한 사회적 교류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랑방은 주인의 안목과 격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으므로 선비들이 높은 안목과 세련된 취향에 맞춰 간결하고 격조가 있는 것으로 꾸며졌다. <출처:대구박물관>


필통, 서안, 필격


고비(편지꽂이), 등잔걸이,


벼루, 연적

제가
유교에서 가정은 모든 윤리규범의 출발점으로 여겨졌다. 유교 윤리의 핵심가치인 '仁'과 '義'가 각각 어버이와 형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며,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규범도 가족 윤리에서 출발한다. 유교 경전 가운데 '대학'에는 '집안사람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가정의 운영은 국가를 바르게 다스리고 이어나가기 위한 선행 과제로 중요시 되었다. 고려 말에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주자의 '가례'가 전래되어 우리 고유의 풍속과 절충되기 시작하였다. 주자는 종래의 복잡한 가정의례를 관.혼.상.제의 사례로 정리하여 '가례';를 편찬하였는데,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주자의 '가례'를 기준으로 삼아 이를 해설하고 보충하여 사회 전반에 보급, 정착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가례는 사대부 집안은 물론 국가에서도 가장 중요한 생활 준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출처:대구박물관>


도상주해천자문, 1917년,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의 주홍사가 무제의 명으로 편찬한 것으로, 1구 4자의 총 150구, 1000자로 된 고시이다. 이 책은 천자문을 그림으로 그리고 한글과 일본어로 설명을 덧붙였다.


문묘향사록, 조선 18세기, 조선 영조 때 왕명을 받들어 김귀주(1740~1786) 등이 편찬한 문묘향사에 관한 기록이다.


격몽요결, 20세기초, 이이(1536~1584)가 지은 유학 입문서이다.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모시고 남을 대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초등 유학 교재로서 필요한 내용을 두루 담았다. '천자문', '동몽선습'과 함께 조선시대를 통하여 가장 널리 읽힌 초등 교재이다. <출처:대구박물관>


사례고증, 1933년, 조선 후기 유학자 안진석(1644~1725)이 각종 문헌에 나오는 관혼상제를 상세히 고증하여 편찬한 책이다.


상례비요, 1913, 조선 중기 학자 신의경(1557~1648)이 '가례'의 원문을 위주로 하고 고금의 제가예설을 참고하여 만든 상례서이다.


여사서, 1908년, 1738년에 영조의 명으로 이억수(1577~1845)가 언해한 여자들이 수신교화서이다. 여사서는 중국 청나라 왕진승이 여자가 읽을 책이라 하여 주를 단 '여계', '여논어', '인효문황후내훈', '여범첩록'의 네가 책을 말한다. <출처:대구박물관>


문공가례의절, 1625년, 주자가 유가의 예법의장에 관하여 상세히 기술한 '주자가례'에 외절을 모아 주석을 붙인 책이다.


회혼례첩, 조선 18세기, 조선시대 회혼례 장면을 그린 화첩이다. 회혼례는 결혼한지 60년 되는 해에 부부가 다시 혼례를 치르는 행사로,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회갑, 과거에 등재한 지 6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회방과 함께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출처:대구박물관>


나무기러기, 조선후기, 기러기는 질서와 의리를 따르며 제 짝이 죽으면 따라 죽거나 평생을 혼자 사는 새로 여겨져 혼례에 사용하던 주요 품목이었다. 원래는 산 기러기를 썼으나 정자나무 기러기로 대체되었다. <출처:대구박물관>


현풍곽씨 편지, 조선 17세기,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보낸 편지이다. 혼례 준비에 필요한 책을 보내라는 내용으로 보아, 혼례를 치를 때에 혼례의 여러 과정에서 필요한 문건을 만드는 방법이나 절차 등을 적어 놓은 책을 참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대구박물관>

"밤에 어찌 주무셨는고, 기별 몰라하네, 도나루에서 혼인에 쓰는 책을 얻으로 사람이 일부러 와 있으니 책보와 갓보의 두곳에서 찾아, 금동이를 시켜서 보내소. 접책(=설첩책)이 다 구멍을 뚫어 장정한 책이니 대원이 시켜 얻어 보라 하소, 접책이 셋으로 뉴가 남고 큰 책이니 작은 책 둘은 말고 크고 낡은 접책을 보내소. 이전 해 혼인 때 도나루에서 온 접책이니 자세히 찾아서 보내소." <출처:대구박물관>


감실, 조선후기, 사당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는 장으로 신주장이라고도 한다. 조상의 넋을 모시는 곳이므로 생전에 살던 공간과 마찬가지 의미로서 집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출처:대구박물관>


교의, 조선후기, 제례.상례에서 신위를 받을어 모시고자 만든 의자이다.

치국
유교에서는 개인이 도덕적인 삶을 살 때 비로소 사회 혼란이 극복되고 좋은 세상이 된다고 본다. 이러한 도덕성은 일반 백성들보다 직접 다스림을 맡은 군주와 사대부에게 더욱 요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도덕성을 바탕으로 군주로서의 식견과 경험을 키울 수 있는 제도와 분위기가 성리학 이념의 바탕 위에 굳건히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여러 왕들은 이러한 교육의 학습을 바탕으로 관료들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으며, 사회 전반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하였다. 왕과 함께 유교 정치의 중심을 이루는 관료는 유학자로서 몸소 유교의 이념을 구현해 나가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의 다른 한 축인 왕을 성군으로 만들어 왕도정치를 펼치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었다. 유학자는 선비로서 자신의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을 삶의 최고 목표로 삼고,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되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그러한 목표를 이루고자 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오륜행실도, 조선 1797년, 백성 교화차원에서 유교의 기본 윤리 덕목을 보급하기 위하여 1797년에 왕명으로 '삼강행실도'와 함께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 편찬한 책이다. <출처:대구박물관>


흥양삼강록, 1908년, 충.효.열의 삼강을 지킨 사람에게 예조에서 증직, 급복 혹은 상전을 내린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흥양(전남 고흥군)의 삼강록이다. <출처:대구박물관>


주자증손여씨향약, 조선 16세기, 송의 여씨 형제가 지은 '향약'을 주자가 증손하여 주석을 붙인 책이다. 이후 1519년(중종 13)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본문에 치자로 구결을 달고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홍패, 조선 1814년, 1814년(순조14) 3월 16일에 문과 장원으로 합격한 조기영의 홍패이다. 홍패는 문.무과 과거의 마지막 시험인 전시에 급제한 사람이 받는 일종의 합격 증서이다. 붉은색 종이에 급제자의 성적, 등급, 성명 등을 먹으로 썼다. <출처:대구박물관>


상지극상삼십이년 갑오식년사마방목, 조선 1902년, 고종 31년(1894)에 치뤄졌던 갑오년 사마시의 급제자 명단을 재주정리자로 간행한 책이다. 급제자(진사.생원)의 성명.자.생년간지.본관.주소 등을 비롯하여, 부의 관위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마패, 조선 1624년. 1727년, 암행어사를 비롯한 관리들의 지방 출장 때에 역에서 말을 징발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표로, 한쪽 면에는 자호와 연월일을 새기고 다른 한쪽에는 말을 새겼다. <출처:대구박물관>


호패, 조선후기, 조선시대는 인구수를 파악하고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호패법에 따라 16세 이상의 남자들은 누구나 호패를 차고 다녀야 했다. 호패는 신분에 따라 기재 내용과 재질이 달랐는데 생원이나 진사의 경우는 황양목을 재료로 하여 이름, 출생년도, 생원.진사가 된 연도를 기재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안릉신영도, 전 김홍도, 조선 1786년, 1786년에 요산헌의 부친이 황해도 안릉의 신임현감으로 부임하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지방관 부임을 축하하는 거대한 행렬과 관아의 풍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서매수 초상, 조선 1792년, 서매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달성, 자는 덕이, 호는 당헌이다. 조상의 덕으로 참봉의 벼슬을 얻어 1779년(정조3)에 신녕현감을 지냈다. 1787년(정조11)에 늦은 나이로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1807년(순조7)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출처:대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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