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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 조선시대 선비가문 고문서와 유물들, 기증 유물(2)

younghwan 2013. 8. 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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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박물관 기증유물관에는 조선후기 관리를 반곡 이덕성(1655~1704)의 후손들이 기증한 보물 1501호 <이덕성 초상과 관련자료 일괄>을 비롯하여 5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한 영양천씨 석대동파 고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반곡이덕성은 조선후기 숙종대의 문신으로 동래부사를 역임하면서 동래남문비를 중창한 인연으로 후손들이 부산박물관에 관련 유물들을 전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과거합격증인 홍패와 백패도 있지만, 그가 생전에 했던 중요한 행적 등을 보여주는 <자의대비옥책>, <헌릉신도비명> 등의 초안을 비롯하여 많은 고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양천씨 고문서는 5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작성했던 많은 공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행정절차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김정희 필 법해도화, 19세기, 현수명 기증


김홍도 필 산수인물도, 18세기, 현수명 기증


독례집요, 1906년, 독례집요는 1906년 사성제 윤우학이 3년 전 어머니 상을 계기로 기존 예학서(상례비요, 사례편람, 사례중해 등)에서 번거럽지 않고 너무 간략하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간략하고 요긴한 것만을 모으고 자신의 글을 덧붙여 편집한 책으로 오책구편으로 되어 있다. 구성은 인용 인용 서목과 인용 학자들의 설 순이다. 책판은 총201장, 5책 9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학십도병풍, 19세기, 윤흥주.윤흥범 기증, 19세기. 이황이 성학의 개요를 그림으로 설명한 것


논매매명문, 수표, 19세기, 윤흥주.윤흥범 기증


중호집, 19세기, 윤흥주.윤흥범 기증


유기, 윤흥주.윤흥범 기증


선비가문의 정신, 반곡공 이덕성 유물
조선후기 선비 반곡공 이덕성의 후손인 이은창.이성주 선생은 2007년 문중에서 성심을 다하여 간직해오던 보물 1501호 <이덕성 초상과 관련 자료 일괄> 132점을 기증하신데 이어, 2008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84호로 지정된 <이덕성 가문 문적>과 <이덕성 가문 전래 전적> 79점을 기증하였다. 이덕성(1655~1704)은 본관이 전주로 호는 반곡이다. 1682년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동래부사.해주목사.황해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동래부사 재임시절인 1688년(숙종14)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동래남문비를 중창한 인물이다. 보물 1501호 <이덕성 초상 및 관련자료 일괄>은 전기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인사.행정에 관한 좋은 연구 자료이다. 또한 <자의대비옥책>, <헌릉신도비명>, <문사발우>, <반곡공수묵> 등 그의 필적도 왕실유물 및 서예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또한 <이덕성 가문 문적>은 모두 17~19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학문과 예술에 뛰어난 육진팔광을 배출한 이덕성가와 관련된 것이다. 고서의 경우 대부분이 유일본인 필사본이라는 점에서 한국 서지학.국문학.고미술사학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고문서의 경우 이덕성의 두 아들 시직공 이진원과 서간공 이준수, 손자 참봉공 이광윤의 것으로, 특히 이진수의 교지 56매가 빠짐없이 다 보전되어 있어 당시 과거제도와 인사행정 뿐만 아니라 한국의 씨족사 및 명문가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처:부산박물관>


자의대비옥책초본, 보물 1501호, 이은창.이성주 기증, 1661년 7월에 현종이 자의대비에게 '공신'의 존호를 올릴 때 만든 옥책이 1687년 9월에 화재로 불탔으므로 그 해 11월에 이를 다시 만들게 되었는데, 이는 글씨를 잘 쓰는 이덕성이 그 옥책의 재차 조성을 위해 옥책문의 내용을 새로 써서 올릴 때 써둔 초본이다.


반곡공수묵, 보물 1501호, 17세기말~18세기, 이은창.이성주 기증, 이덕성이 노년에 아들에게 보낸 서간을 모은 첩


헌릉 신도비명원문, 보물 1501호, 이은창.이성주 기증, 숙종 21년에 조선 태종 원릉에 세운 신도비를 중건할 때 왕명에 따라 이덕성이 쓴 비문 원고이다. 양쪽에 1424년에 변제량이 지은 <헌릉신도비명>이 있고, 다음 1695년의 중건 사실이 있으며, 이어 윤희가 기술한 비음기와 개국공신 명단 및 중건비의 기술자(박대상), 글쓴이(이덕상), 전자(홍수주)가 밝혀 있다. 조선후기 중건비이고 원고에 탈락도 있지만, 왕릉신도비문 원고로서 보기 드문 예이다.


참판공필, 이은창.이성주 기증


백헌명재 필첩, 참봉공집(1805년),  이은창.이성주 기증


대연유고(1805년), 원교집(1805년), 이은창.이성주 기증


이덕성 인장, 조선 17세기 후반, 이은창.이성주 기증


이덕성 홍패와 백패 보물 1501호, 이은창.이성주 기증, 홍패는 1682년 4월 18일 이덕성이 문과에 급제하고 받은 합격증. 대과인 문과의 합격자는 총33인으로 성적순에 따라 갑과 3인, 을과 7인, 병과 23인으로 나누었다. 33인의 합격자 중 이덕성은 11등이었다. 백패는 이덕성이 진사시 합격 후 받은 합격증이다. 이덕성은 1677년 치러진 진사시에서 3등3인으로 합격하였다. 조선시대 과거는 대과와 소과로 나뉘는데 소과에는 생원시와 진사시가 있었다. 생원 진사시는 복시에서 1등 5인, 2등 25인, 3등 70인으로 각 100인을 합격시켰는데 시험결과에 대한 설별이 끝나면 합격자를 성적순으로 써서 국왕에게 올렸다. 이들 합격자 중 이덕성은 33등이었다.


문사발우(보물 1501호, 1682년), 동종계첩, 1679년, 이은창.이성주 기증. 전주이씨 덕천군파 함풍군 후손인 '成'자 항렬과 '眞'자 항렬의 동족들이 1679년(숙종5)에 결성한 동족계의 계첩이다. 내용을 보면 '종회수결서'에서 동종계원 명단을 열기하여계의 결성 구조를 보이고, 이면에는 15개 조항으로 된 규약을 기재하여 계의 재정과 사업을 명시하고 있다.

5대를 대물림한 효행, 영양천씨 석대동파 오대육호 고문서
부산시 해운대구 석대에 사는 영양천씨 석대동파는 천만리(1543~?) 장군의 후예이자, 5대에 걸쳐 6명의 효행자를 배출한 부산에서 이름 높은 효자 집안이다. 가문의 문장인 천장률 선생은 지난 2004년 문중의 합의를 이끌어 내어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던 고문서를 일괄 기증하였다. 이 뒤를 이어 석대가문의 천건우 선생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가문의 고문서를 연이어 기증하였다. 그 중 입향조 찬윤의 교지는 가문의 보물로 여겨졌던 귀중한 자료이다. 고문서에는 1752년 <동면상단풍양서목>을 시작으로 일제시기까지 약 200여년 간에 걸친 것으로, 공문서.민장.호적자료 등 다양한 형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중 5대에 걸쳐 작성된 여러 형식의 효행정려 요청 문서들은 효행포상과 관련되 복잡한 행정절차의 전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것이며, 호구단자, 준호구, 호적표 등의 호적 자료들은 효자집안의 가계와 신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사회.문화사적 기초 자료가 된다. <출처:부산박물관>


동래향교안락서원통문, 1879년, 동래향교와 안락서원에서 효부 김씨의 절행를 정려하기 위한 여론을 모으고자 도내 유생들에게 보낸 통민이다. 통문에는 김득인, 옥종손, 구영취, 김귀생과 동래정씨 등 정려를 받았던 동래지역 효자와 효부가 열거되어 있다. 동래사림정시민등상서, 1897년, 정시민을 비롯한 동래사림 27명이 천공득 집안의 오대효행을 부사에게 보고하고 중앙에 상주하여 포상과 은전을 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문서이다.


석대동거민박세걸등소지, 1760년. 박세걸 등 석대동민 23인이 성태의 지극한 효행과 그의 두 아들 문택과 용택이 호변으로부터 아버지를 구한 효행을 영문에 보고하고 임금께 알려 천성태 부자를 포상토록 부사에게 청원하는 내용이다. 백행지원 일가지비, 1717년,


동면상단풍연약정서목, 1753년, 천장률 기증, 석대리 이임의 문보에 따라 성대의 효행을 보고하고 사유를 첩보하는 문서이다. 동면상단대동중서목, 1753년, 석대리 이임의 보고에 의거 성대의 단지 효행과 시묘 효행에 관한 사유를 첩모하는 문서이다.

 
동래부사서목, 1762년, 효제 인물을 보고하라는 한성부의 관문에 의거 동래부사가 성태의 효행을 연도별로 정리하여 보고한 것이다. 또한 이 문서에는 전전부사가 효행을 권장하는 뜻에서 성태를 충렬사 제임에 발탁한 사실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는 전 도에서 일제히 보고를 기다렸다가 장계하려 한다는 제사를 내렸다.


안락서원의 장의를 천거한 문서, 1880년, 안락서원에서 장의를 선출하기 위해 3인을 동래부사에게 천거한 망기로, 동래부사는 이 중 천만순을 택임하였다. 서원의 재임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삼망을 거쳐 수령이 이 중 한 사람을 택임하는 절차로 이루어졌다.


부산안내리플릿(일제강점기), 우편엽서(일제강점기), 부산시야계(현대), 김영준 기증


일지, 유엔훈장, 화랑무공훈장, 칼, 모자, 이정숙 기증


태극문쿠션커버, Sarah C Greenfield, Eleanor Sidebotham Schilder 기증


타래버선, 빗, 당오전, 흉배,


소아용 집신, 성인용 짚신


사보담 사진, 한국소개영문그림책,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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