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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박물관] 두암 김용두 기증 문화재

younghwan 2013. 8. 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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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진주박물관에도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기증유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경남 사천출신 재일동포 사업가 김용두가 기증한 유물을 별도의 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은 주로 일본에서 수집한 골동품으로 백자를 비롯한 도자기류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림 또한 많은 편이다. 고고학자가 발굴과정에서 수집한 경우 삼국시대 이전 유물이 많은데 반해, 이 전시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거래가 많은 골동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의미를 갖는 고문서나 부장 유물에 비해서 역사성은 많지 않으나 고미술품으로서 의미를 갖는 유물들이라 할 수 있다.

두암 김용두 기증 문화재
두암 김용두 선생은 경남 사천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자수성가하였다. 선생은 사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일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수집한 문화재를 사천자콜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공개하였으며, 소장품 중 179점을 선생의 고향과 인접한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이 기증한 문화재는 토기, 도자기, 서화, 금속품, 목공품 등 종류도 매우 다양하며, 그 중 소상팔경도는 우리나라 회화사에 있어서 주목받는 명품이다. 두암 선생의 기증문화재는 역사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한 개인의 노력으로 고국으로 되돌아와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출처:진주박물관>



금은입사 향완, 13세기, 사찰에서 사용하는 불기 가운데 특히 입 부분에 납작한 전이 달려 있고 나팔형의 다리가 붙어 있는 향로를 향완이라 한다.


강천모설(해질녘 내리는 눈), 평사낙안(모래펄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 동정추월(동정호에 비친 가을 달), 소성아우(한 밤중 소수와 상강에 내리는 비), 소상팔경도, 필자미상 16세기, 중국 호남성 동정호 아래 소수와 상강이 합쳐지는 곳은 천하절경으로 문인들에 의해 일찍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를 다룬 서화가 있었음이 문헌으로 확인된다. 8폭의 그림들은 두 폭씩 대칭을 이루는 구도로 각기 좌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각 화면에는 계절의 변화등을 농담의 대조와 용묵법에 의해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진주박물관>


연못속의 물오리 한쌍, 연못에 무리를 이룬 새들, 필자미상 17세기, 오리.제비 등의 새무리가 한여름의 연꽃과 풀들이 싱그러운 연못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새무리가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뭇 크며 오른쪽 화면이 조금 잘려서 구성상 다소 심심하게도 느껴지지만 구도나 필치에서 그린이의 기상이 잘 드러난다. <출처:진주박물관>


버드나무 아래 백로, 17세기, 물가 주변의 버드나무 아래 백로를 크게 나타낸 이 그림은 이징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그는 산수, 인물, 영보 등 다방면에 두루 뛰어났다. 바위 처리와 분방한 필선으로 그린 버드나무와 물가 주변의 식물들로 보아 조선중기 17세기의 그림으로 여겨진다. 새와 산짐승이 노니는 가을풍경, 김득신의 작품은 주로 풍속화와 신선도 등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그림은 새와 동물은 작게 등장하고 오히려 풍경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어, 김득신 산수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그림 상단 여백에 그 당시 문장과 글씨에서 일가를 이룬 이재학의 찬문이 있다. <출처:진주박물관>


풀.벌레.새.짐승.물고기.게.산수를 그린 그림첩, 오세창의 '근역서화집'에는 김익주를 16세기말에 태어난 화가로 기록하고 있다. 이 화첩은 매상숙조에 있는 묵서에 의해 1850년 작임이 확인된다. <출처:진주박물관>


업경대, 19세기, 업경은 불교에서 죽은 사람의 업을 보여준다는 거울이다. 이 업경대는 사찰의 법당을 꾸미는 장엄장식도 겸하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연꽃을 싣고 항해하고 있는 형태이다. 맨 위에는 동자와 누워 있는 소를 그린 둥근면이 있어 업경을 상징한다.


외다리 소반, 19세기, 한개의 기둥으로 반을 받치고 있어 일주반, 단각반 또는 외다리 소반이라고도 부른다. 대부분 간단한 주안상이나 한 그릇의 물, 약, 과일 등을 받치는데 사용한다. 꽃과 나비무늬 소반, 19세기. 소반은 좌식 생활에 맞추어 발달한 식탁이면서, 음식을 그릇에 담아 나르는 쟁반의 기능을 겸한 생활도구이다. 대부분 1인 1반용으로 한 집안에 적게는 4~7개, 많으면 수십 개를 갖고 있었다. 이 소반은 질 좋은 조개로 꽃과 나비를 가득히 시문한 것으로 보아 지체가 높았던 집안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진주박물관>


주칠빗접, 19세기, 전체를 붉은 칠을 한 이 경대는 위층에 좌경(거울)을 두었고 아래층에는 여닫이문을 둔 작은 장을 두었다. 그 내부에는 3층의 서랍을 두었는데 화장용 소도구를 넣던 곳이다. 거북껍질무늬 좌경, 18~19세기, 좌경은 화장도구를 담아두고 화장할 때 사용하는 규방가구의 하나로 경대라고도 한다. 일반적인 형태는 하단에 여닫이문이 있고 문을 열면 서랍이 있으며 뒤에는 거울이 있어 뚜껑을 열러 젖혀 비스듬히 세워 사용한다. 전면 전체에 육각형의 귀갑문을 자개로 가득 장식하여 화사하기 그지없다. <출처:진주박물관>


나전함, 18~19세기, 함이란 의류, 패물 등을 넣어두는 상자를 말한다. 조선시대의 함이나 궤류는 보석함을 비롯하여 실함, 바느질함, 혼함, 문서함, 관복함 등 다양하다. 이 함은 양 사방으로 대나무, 매화, 새, 문자 등을 나전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이층 농, 장생무늬 이층 농, 19세기. 나전 장생무늬 이층농의 윗부분이다. 상단의 천판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壽수'자를 중심으로 복숭아, 그름, 학 등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대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사슴, 용, 호랑이를 비롯한 각종 화조문을 가득 메우는 등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자연과 동식물에 비유하여 상징적으로 장식하고 있다.


칠보와 글자새김 항아리, 19세기, 입과 목은 비교적 높고 곧게 처리하였으며 바깥면에는 덩굴무늬가 돌려져 있다. 일곱 가지 길상을 상징하는 칠보문 사이 공간에 '壽', '福', '器'라는 글자를 배치하여 다복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칠보무늬 주전자, 19세기, 뚜껑은 중앙에 박과 식물 모양의 꼭지가 달려 있으며, 몸체에는 양면에 칠보문 중 은보분을, 주구의 양쪽에는 박쥐문을, 뒤편에는 초화문을 배치하였다. <출처:진주박물관>


구름과 용무늬 항아리, 18세기 후반, 조선시대 사옹원의 분원이 지금의 경기도 광주군 분원리에 정착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입호이다. 입부분과 굽 주위에 각각 커다란 여의두문대를 두고 그 사이의 넓은 공간에 왼쪽으로 향하는 구름과 용이 날리듯 그려져 있는데 청화의 발색은 비교적 옅으나 농담을 달리하여 표현되어 있다. 꽃과 새무늬 항아리, 18세기 후반, 푸른 빛이 감도는 청화안료로 농담을 조절하여 꽃과 나뭇가지 위에 작은 새들을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입술 부분은 곧게 서 있으며 어깨부위는 당당하게 풍만하며 아래로 내려가면서 좁아지는 형태이다. <출처:진주박물관>


매화와 대나무 무늬 각진병, 모란무늬 합, 풀꽃무늬 대접


파초무늬 필통, 제기, '제주' 글자새김 병


달항아리, 18세기, 소박하지만 푸근한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둥근 항아리를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이 항아리는 두 개의 큰 그릇을 자연스럽게 맞대어 붙여 배 부분의 선이 다채롭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달항아리는 보통 입을 예리하게 처리하는 데 비해 입과 목이 다소 높게 처리되는 등 달항아리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달항아리, 18세기 후반, 소박하지만 푸근한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둥근 항아리를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이 항아리는 두 개의 큰 그릇을 자연스럽게 맞대어 붙여 배 부분의 선이 다채롭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달항아리와 비교해 약간 작은 감이 있다. <출처:진주박물관>


납작병, 17세기, 조선 전기 편병은 분청사기로 많이 만들었으며 백자류는 희소하다. 이 편병처럼 동체가 원반형인 것은 대개 조선 중기 이후의 형식이다. 몸체는 물레로 원형접시 모양을 만들어 서로 접합하였다. 백자병, 16세기, 입부분이 부드럽게 외반된 나팔형이며 외측 선이 목에서부터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배 부분이 풍만하게 둥근 소위 '옥호춘병'이라고 불리는 병이다. <출처:진주박물관>


꽃과 새무늬 각진항아리, 18세기 후반, '동호'는 산화동으로 그림을 그린 후 환원불로 소성하였을 때 붉은 색을 띠는 문양을 말하는데 우리나라는 일찍이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17세기 이후 일부 성행하였다. 이 항아리는 어깨 면에 꽃고 당초문을 그리고 각면에 원을 돌려 그 안에 새를 그려 넣었다. 구름 용무늬 항아리, 17세기, 도자기 문양의 소재로 널리 유행하던 용은 엄격함을 갖춘 것과 반추상화되어 희화적으로 표현된 것이 있다. 이 항아리의 용무늬는 후자의 경우에 속하며 빠른 필치로 표현되어 있지만 추졸하거나 세속적이지 않다. 형태에 있어서도 조선중기 항아리의 특징을 보여주는 넉넉함과 소탈함이 엿보인다. <출처:진주박물관>


대나무무늬 대나무모양병, 17~18세기, 긴 원통형의 병은 조선시대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으나 몸체를 다시 대나무형으로 깎은 것은 희귀한 예이다. 또한 이러한 대나무형태에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대나무 그림이 어깨에 까지 걸쳐 이어져 있어 그 운치를 더한다. 벙무늬 제기, 15세기 후반 ~16세기, 입부분이 사각형에 가까우며 몸체는 반타원형의 다리가 셋달린 제기로 중국 금속제 제기를 본떴다. 표면에는 잡물이 많은 녹갈색 태토를 감추기 위해 백토를 짙게 칠하거나 덤벙 장식을 했다. 이런 독특한 양식의 유물은 한국에서만 볼 수있다. <출처:진주박물관>


 대접, 15~16세기, 옆면이 사선으로 뻗어 삿갓모양에 가까운 대접이다. 입부문과 굽 주변을 제회한 전체에 백토를 바르고 바깥면에는 x자형으로 교차되며 세련된 운필로 당초문을 세곳에 배치하였다. 굴무늬병, 15~16세기, 철화분청사기로 유명한 계룡산일대의 학봉리 가마에서 제작된 철화병과 유사하다. 몸체는 귀얄로 백토를 발랐으나 일부분은 태토가 드러나 있다. 거침없는 필치의 당초문과 더불어 자연스러움이 엿보인다. <출처:진주박물관>


꽃도장무늬 잔과 잔받칩, 인화무늬대접, 잎무늬 장군, 15~16세기, '장군'은 술이나 기름과 같은 액체를 담는 옆으로 긴 형태의 그릇을 말한다. 몸 전체에 분을 바르고 그 위에 검은 안료로 힘있게 세 개의 잎사귀를 그렸는데 그 식물이 x자로 교차되어 있다. 특히 유약이 발려지지 않은 옆면은 대나무 칼로 바닥을 다진 흔적과 모래가 일부 붙어 있어 이 부분을 바닥에 두고 구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진주박물관>


모란무늬 항아리, 15세기, 조화란 귀얄로 백토를 바르고 문양을 새기는 기법을 말한다. 이 항아리의 모란문양이 대담한 생략과 자유분방함이 보이는 필치로 새겨져 있다. 길쭉한 형태의 항아리는 분청사기가 유행하면서 새롭게 등장하여 백자로 이어진다. 연못풍경무늬 납작병, 15~16세기, 풍만한 몸체의 양면을 두들겨 평편하게 만든 편병이다. 전면에는 물고기와 수초를 새겨 연못풍경을 표현하였으며, 옆면에는 꽃을 박지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연꽃덩굴무늬 네귀항아리, 15세기, 태를 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항아리로 어깨의 네곳에 귀가 달려 있다. 몸체에는 만개한 연꽃과 봉오리형 연꽃을 배치하고 주변은 당초문을 상감하였다. <출처:진주박물관>


국화무늬 납작항아리, 13~14세기, 옆면을 두들겨 평편하게 만든 청자항아리로 중아에 능화형 창이 있고, 그 안에 국화문을 도장으로 찍어 상감하였다. 능화형 창 밖은 구름과 학이 흑백상감되어 있는데, 학의 머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어 쇠퇴기의 청자임을 알 수있다. 국화덩굴무늬 주전자, 12세기, 전체적으로 금속기적인 특징이 엿보이는 주전자에 철사안료로 몸체에는 국화문을 그리고, 주변은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출처: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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