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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안산 안산읍성 및 관아 건물터

younghwan 2013. 9. 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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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서해안에 위치한 안산은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장아구현이 설치된 이래 여러차례 그 명칭과 지위가 바뀌었는데 왜구의 침략이 극심했던 고려말 해안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안산군으로 승격된 이래 그 지위가 유지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개편으로 시흥,과천과 함께 시흥군으로 통합되었다가 이지역에 반월공단이 세워지면서 도시화되어 1986년 안산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인구 70만이 넘는 대도시로 인천과 함께 수도권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이다.

 오늘날 안산은 서해안 갯벌을 간척하여 대규모 공단이 들어선 도시로 시화호가 있는 해안 주변에 도심이 형성되어 있지만, 조선시대 안산군 읍치는 도심 동북쪽 군포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수리산 서쪽편 자락에 위치한 수암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은 국도변과 고속도로 부근에 위치한 작은 촌락에서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도로가 수암동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말.조선초 대부도 부근 서해안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역할을 했었다. 옛 안산군 관아가 있었던 안산시 수암동에는 읍치를 형성했던 읍성의 흔적들과 복원된 관아 건물인 객사가 남아 있어 이곳에 옛 안산군의 중심지 임을 말해주고 있다.

안산읍성 및 관아지, 경기도 안산시 수암동
안산읍성은 수암봉의 능선을 이용하여 평지를 감싸도록 쌓은 전형적인 평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772m이고, 주요 방어 지역을 여겨지는 서쪽과 북쪽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이 매우 가파르며, 몇개의 높은 단을 이루고 있다. 평지인 남쪽은 돌을 쌓았는데, 도로로 인해 절단된 곳을 보면 성벽의 바닥부분과 내부에는 부분적으로 석축을 하고 그 안쪽에는 흙을 다져서 성벽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내에는 조선 초기의 무장이었던 김정경(1345~1419)의 거처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민가가 들어서 있으며, 그가 심었다고 전하는 은행나무 세그루가 남아 있다. 관아는 단원구 목내동에 있다가 1441년(세종23) 이전 수암동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다시 1669년(현종10)에 이곳으로 옮겼다. 정문인 평근루와 객사.동헌 등의 행정시설, 옥사와 창고가 있었을 것이나, 모두 파괴되고 곳곳에 흩어진 주춧돌과 기와조각들이 발견된다. 성의 남쪽에는 조선시대의 안산 관아로 사용되다가 일제강점기에 수암면사무소로 이용되던 건물터가 남아 있다. 객사 건물은 2010년에 복원되었다. <출처: 안산시청>


안산시 수암동 수암봉 등산로 입구에 남아 있는 옛 관아터와 안산객사. 안산읍성은 북쪽과 동쪽 능선에 의지하여 둘레 772m의 크지 않은 규모의 읍성이다.


옛 안산읍성 건물터에 복원한 안산객사.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관아 건물로 양쪽 익랑에 온돌방과 대청마루를 두어 이곳을 방문한 관리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이기도 하다. 안산객사는 정조가 사도세자 능을 방문하면서 잠시 머물렀기때문에 안산행궁이라고도 부른다.


객사 앞에 남아 있는 고목인 느티나무가 이곳이 옛 관아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객사 앞 건물터와 관아 출입문이 있었던 자리 부근에는 큰 고목들이 남아 있다.


읍성 뒷편으로는 수리산 봉우리 중 하나인 수암봉이 있다.


읍성내 관아 건물터와 수암동 일대


관아 뒷편으로 읍성 성곽이 둘러져 있는데 성벽 석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북측 성벽으로 가는 길


읍성 북쪽 성벽이 있었던 능선


성벽이 있었던 읍성 북쪽 능선길


북문 주변 성벽


흔적만 남아 있는 북문.


북문 주변 성벽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장대와 관아에 속한 정자인 망해정이 있었던 서쪽 성벽


관아 부근에 있었던 조선초 무장 김정경의 집터


집터 부근에 남아 있는 김정경이 심었다는 수령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안산읍성 배치


읍성 아래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역명칭을 따르고 있는 안산초등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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