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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China)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

younghwan 2014. 3. 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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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전(大成殿, Dachen palace)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전각으로 공묘(孔廟) 정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중앙에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를 좌.우에 같이 모신다고 한다. 공묘는 문묘(文廟)라고도 중국,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각국에 많이 세워졌다. 공자묘가 있는 노나라 수도였던 취푸(曲阜) 공묘 대성전이 가장 규모가 크고, 북경 국자감 공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균관 문묘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있는 향교에 대성전을 두고 공자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취푸 공묘 정전(正殿)에 해당하는 대성전은 공자 사후 노나라 애공이 공자의 집에 사당을 세운 이래로 오늘날 까지 이어져 왔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공묘에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이래로 역대황제들이 공묘를 방문하거나 대리인을 파견하는 등 후원을 받아왔다. 원래의 공자 사당은 수나라때 재건하면서 철거되었으며, 중국 역대 왕조 중 유학이 가장 번성했던 송나라때 궁궐과 비슷한 규모로 크게 증축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의 대성전은 명나라 홍치12년(1499)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크게 증축하면서 자금성 정전과 비슷한 형태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은 동서 48.7m, 남북 24.89m, 높이 24,8m 규모를 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9칸에 유리기와를 얹은 2층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28개의 돌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다. 앞면 10개의 기둥에는 용이 기둥을 휘감고 있는 형상을 조각해 놓고 있는데, 황제가 공묘를 행차할 때는 기둥을 천으로 가려두었다고 한다. 자금성의 영향을 받아 건물은 대리석 난간과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누조 등으로 장식한 2층 월대 위에 세워져 있다. 월대에는 제향을 올릴 수 있도록 향로가 놓여져 있으며, 지금도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공묘에 절을 올리고 있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있는 공묘(孔廟) 제향공간에 들어서면 공자가 후학을 가르쳤다는 행단을 볼 수 있다. 행단은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곳으로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은행나무를 심어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행단은 송나때 처음 세워졌으며 행단건물은 금나라때 처음 세운것을 명나라때 중건한 것이라 한다.

대성전(大成殿, Dachen palace)
Da cheng palace is the major construction of the temple. It is the principal palace for offering sacrifices to Confucius. It measures 48.78 meters in east-west direction and 24.89 meters in south-north direction, it stands 24.8 meters tall. <출처:취푸 공묘>


대성전은 공묘(孔廟)의 핵심이 되는 공간으로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건물은 동서 48.78m, 남북 24.89m로 24.8m높이의 유리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을 2층으로 올린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명나라 홍치12년(1499)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한 것으로 자금성 정전인 태화전의 영향을 받은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9칸으로 용이 휘감고 있는 장식을 한 10개의 기둥이 지붕들 받치고 있다.
 


대성전 북경 자금성 정전인 태화전의 영향을 받은 건물로 대리석으로 장식한 2층 월대 위에 건물이 세워져 있다. 황제를 상징하는 자금성 태화전은 3층 월대를, 조선의 경복궁 근정전은 2층 월대를 사용하고 있다.


월대를 장식하고 있는 용머리(이무기?) 모양의 누조와 난간


대성전 1층 월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대성전 계단과 답도


대성전 현판


대성전은 28개의 돌기둥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앞면 10개이 돌기둥에는 용이 휘감고 있는 형상을 새겨 놓고 있다. 이런 기둥은 자금성에서도 볼 수 없는 것으로 황제가 취푸 공묘를 방문했을 때 질투심이 생기지 않도록 천으로 가렸다고 한다.


대성전 입구에 걸려 있는 생민미유(生民未有: 백성이 생긴 이래 공자와 같은 사람은 없다) 적힌 현판.


대성전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


대성전 내부에 모셔진 공자의 위패. 닫집 안에는 공자상도 모셔져 있다. 대성전 내부에는 종묘제례 등에 사용한 전통 악기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대성전 천정 아래 걸려 있는 현판.


대성전 천정


대성전 추녀마루 잡상


대성전 앞 월대. 월대 아래 행단 건물이 보인다.


대성전 앞 월대에는 향을 올릴 수 있는 중국 전통 제기 모양을 하고 있는 향로가 놓여 있다.


대성전 앞 절을 올리는 장소


월대 한쪽편에는 소망을 적어서 걸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동무(东庑), 서무(西庑), 침전(寝殿)

 대성전 앞 제향공간 영역에는 선현들과 이름난 유학자들이 위패를 모신 공간으로 동무(东庑), 서무(西庑)과 세워져 있다. 마당 중앙에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살무나에서 유래한 행단(杏壇)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강학공간이 분리된 우리나라 성균관 문묘, 북경 국자감과 다른 구조라 할 수 있다. 또한 대성전 뒷편에는 공자 부인인 기관(亓官)씨를 위해 세워진 침전이 있다.


월대에서 내려다 본 행단

동무(东庑, The east wing rooms)
The wing room were originally built in the Northen Song Dynasty, and were rebuilt again repectively after they were burned down by fire caused by lightening strikes in Ming and Qing Dynasty. In these are enshrined ancient sages and Confucius thinkers. <출처: 취푸 공묘>


동무(东庑, The east wing rooms). 취푸 공묘 또한 성균관이나 향교와 마찬가지로 이름난 공자의 제자들과 이름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신 동무와 서무를 두고 있다. 동무는 북송대에 처음 세워졌으며 명,청대에 번개로 소실되었던 것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동무(东庑) 출입문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동무 내부.


동무에 모셔진 위패


동무 기둥과 복도는 대성전 영역내부에서 회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서무(西庑)


대성전 뒷편 침전으로 가는 길

침전(寝殿, The living palace)
First built in the second year under the reign of Tianxi of the Song Dynasty(1018), it was rebuilt in the eighth year under the reign of Yongzheng of the Qing Dynasty(1730), where Qiguan, the wife of confucius was worshipped. Tabernacles and memorial tablets are set on here. <출처:취푸 공묘>


침전(寝殿, The living palace)은 송나라 천희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청나라 옹정8년에 중건되었다. 공자 부인인 기관(亓官)씨를 위해 세워진 전각이다. 대성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앞면 7칸에 유리기와를 얹은 2층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은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돌기둥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으며, 기둥에 조각을 새겨놓지는 않고 있다.


침전 내부에 모셔진 위패


침전 처마 아래 단청 장식


취푸 공묘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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