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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China)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공자 일가를 모신 숭성사와 계성왕전, 가묘

younghwan 2014. 3. 1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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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푸(曲阜) 공묘는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수도에 있는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공자가 죽은후 노나라 애공이 공자가 살던 집에 사당을 세운 이래 역대 황제의 후원을 받아 오늘날과 같은 규모가 되었다. 원래 공자 사당이 있었던 공자가 살던 집은 수나라때 철거되는 등 여러차례 중건을 거듭하다가, 유학이 정치이념으로 크게 번성했던 송나라때 오늘날처럼 궁궐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취푸 공묘는 중국,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구에 남아 있는 수 많은 공묘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으며, 그 규모 또한 가장 크다. 취푸 공묘가 다른 모든 공묘의 모범이 되었지만, 다른 공묘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도 가지고 있다. 공묘는 공자가 살던 집에 세운 사당으로 공자를 모신 대성전 뒷편에 공자 부인을 모신 침전을 두고 있으며, 동쪽에는 공자 5대조를 모신 숭성사, 공자의 아들 공리 부부, 손자인 공급 부부, 그리고 43대 직계 후손으로 중흥조로 불리우는 공인옥 부부를 모신 가묘가 있고 서쪽에는 공자의 아버지로 청나라 옹정제에 의해 계성왕으로 봉호가 올려진 계성공을 모신 사당이 있다.그리고 후원격인 대성전 뒷편에는 토지신을 모신 후토사, 제사를 준비하던 신포(神庖), 공자의 행적을 돌에 새긴 "성적지도"를 보관하는 성적전이 있다.

 공자사당은 원래는 지성묘라 불렀다. 공자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자들을 모시는 사당이다. 공자는 중국 고대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이다. 공자가 창시한 유가학설은 봉선사회 유산이다. 그리고 조선,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공자의 칭송과 유학을 추앙하기 위하여 역사상 12명의 황제가 곡부에 직접 와서 제사지냈다. 공자의 제자와 역대 유학지들을 공자 사당에 배향하였다. 곡부 공자사당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당이다. 기원전 478년 공자가 전에 살았던 집을 사당으로 만들었다. 면적은 약 14만평방미터이다. 남북길이는 약 1300m정도이다. 남북으로 계속 들어가는 정원이 이어지고 금나라, 원나라, 명라때 지은 건물이 100여개, 청대에 지은 건물이 460개이다. 중국에서도 유명한 궁전식 건축군으로 세계에 있는 수많은 공자사당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출처: 취푸 공묘>


취푸(曲阜) 공묘 정전인 대성전 동쪽 공자의 5대조를 모시는 사당인 숭성사(崇圣祠, The Memorial Temple for worshipping the Sage)이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단층건물로 1층 월대 위에 건물이 세워졌다. 대성전에 비해서 건물 규모는 작지만, 공자의 조상을 모신 사당답게 용이 휘감고 있는 형상을 기둥에 조각해 놓고 있다. 명나라 홍치 7년(1504)에 건립된 것으로 청나라 옹정제 원년(1723)에 중건되었다.


숭성사 내부. 전통복장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가묘(家庙, The family temple)
Confucius privately worship their ancestors, the couple of Confucius, the couple of Kongli, the couple of Kongji and the "Resurgence Ancestor", the Duke of Wenxuan, Kong Renyu who was the forty-third descendant of Confucius and his wife..


숭성사 뒷편에는 공자 후손을 모신 사당이 가묘(家庙, The family temple)가 있다. 가묘에는 공자의 아들인 공리(孔鲤), 손자인 자사(子思) 공급(孔伋)과 송나라대 중흥조인 공자의 43대 후손 공인옥(孔仁玉) 부부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7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1층 월대 위에 건물을 세워놓고 있다. 다른 사당 건물에 비해 장식적인 면을 배제하여 단정한 느낌을 준다.


가묘 앞 정원에 있는 불을 밝히는 정료대로 보이는 석물


가묘와 공자 후손들이 살았던 저택인 공부(孔府)와 연결되는 출입문. 삼문 형식을 하고 있으며, 삼도가 설치되어 있다.


대성전이 있는 정전 영역에서 후원으로 연결되는 출입문. 후원에는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인 후토사(后土祠),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과 비슷한 신포(神庖), 비석등을 보관하는 성적전(圣迹殿)이 들어서 있다.

후토사(后土祠, The Temple of the Local God of the land)
It was first built in the Jin Dynasty, where people enshrine and worship the local god of the land of the Confucian Temple. It was rebuilt after an fire in the year under the reign of Hongzhi of the Ming Dynasty. The present building was rebuilt in 1988


후토사(后土祠, The Temple of the Local God of the land)는 공묘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원대에 처음 세워졌다가 명나라 홍치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라 한다.


담장안에 마련된 후투사 사당 건물은 앞면 3칸의 벽돌로 지은 건물이다.


토지신을 모신 후토사 내부


후토사 현판

신포(神庖, The holy Cookroom)
The place where people prepare the oblations, such as pigs, cattle, sheep and others for the worship. The present Holy Cookroom was built in early Qing Dynasty and was taken as the Exhibition of the Stone Portraits of Han Dynasty of Qufu in 1999, for reserving the curving stones of Han Dynasty excavated in Qufu and neighbouring areas. <출처: 취푸 공묘>


공묘에서 제일 뒷쪽에 위치한 신포(神庖, The holy Cookroom). 제사때 제물로 바쳐질 돼지, 소, 양 등을 준비하던 장소로 우리나라 사당의 전사청과 비슷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청나라 초기에 세워졌으며 1999년 이후 산동지방에서 발굴된 공자의 모습이 새겨진 돌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사청과 마찬가지로 일반 살림집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성적전(圣迹殿, The palace of Sage's Trace)
It was built for reserving the carved stones work "Map of Sage' Trace" of Confuciusin the twentieth year under the reign of Wanli of Ming Dynasty(1592), which thus gained the name. There are historical relies such as the one hundred and twenty carved stones inscribing the main deeds through the whole life of Confucius and portrait carved stones for Confucius drawn by Gu Kaizhi, Wo Daozi, etc, the famous painters in the Tang Dynasty. <출처: 취푸 공묘>


공묘 정전 영역 뒷편 후원에  위치한 성적전(圣迹殿).


이곳은 "성적지도(圣迹之图)"라는 공자의 행적을 돌에 새긴 그림들을 보관하기 위해 명나라 만력20년(1592년)에 세운 건물이다. 120개의 돌에는 공자의 전생에 걸친 행적과 당대 유명화가들이 그린 공자 초상화를 새겼다.


성적전 내부. 중앙에 '만세사표(萬世師表)'라 적힌 현판이 있고, 내부에는 공자의 행적 등을 새긴 돌들이 보관되어 있다.


성적전


대성전 서쪽편에는 공자의 아버지인 계성공을 모신 전각인 계성왕전(启圣王殿), 계성왕은 청나라 옹정제때 공자 5대조에 봉호(封號)를 올릴때 공자의 아버지에게 올려진 봉호이다. 건물은 숭성전과 마찬가지로 앞면 5칸의 건물로 앞면에 돌기둥이 지붕을 바치고 있다.


공자의 5대조를 모시는 사당인 숭성사와 마찬가지로  가운데 돌기둥에는 용이 휘감고 있는 형상을 조각해 놓고 있다.


계성왕전 내부. 닫집 안에 계성왕의 인물상이 모셔져 있다.


계성왕전 앞 정원. 마당에 삼도가 깔려 있으며, 대성전과는 달리 답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황제가 이곳을 방문하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성왕전(启圣王殿) 중앙에 신도가 있고 양쪽에 2개의 길이 있다.


계성왕전 삼문


계성왕전 앞쪽에 있는 건물.


계성왕전(启圣王殿) 제일 앞쪽 대성문과 나란히 있는 삼문인 계성문(启圣门)


공묘 서쪽으로 드나드는 출입문이다. 안쪽에 당괴(唐傀, Chinese scholartree of Tang Dynasty)라는 오래된 고목이 남아 있다.


대성전 동쪽편 숭성사(崇圣祠) 앞쪽에 있는 숭성문(崇圣门)

공묘 동쪽 공부(孔府)로 나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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