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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Egypt)

기자의 피리미드를 지키고 있는 대스핑크스 (The Great Sphinx)

younghwan 2009. 2. 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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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 스핑크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아마도 이집트를 다녀갔다는 상징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일반적으로 스핑크스는 카프레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건설 이후 한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고 합니다.자의 대 스핑크스는 석회암 바위산에 조각하여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 고대문명의 상징으로 고대 이래로 인류의 사랑을 받아 왔던 유적입니다.

전형적인 관광 기념 사진에 나오는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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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로 큰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앞 제단과 연결된 길을 지키고 서 있는 스핑크스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카프레왕이 건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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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앞에도 별도의 제단이 있고, 그 앞에는 신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경사로를 통해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앞 제단으로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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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장면이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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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앞에 있는 신전 입구에서 바라본 스핑크스의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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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편에서 본 스핑크스입니다. 뒤에 보이는 피라미드가 고대 불가사의인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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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뒷모습입니다. 울타리로 막혀있지만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제단으로 올라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자에 있는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와 함께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길이 57m, 높이 20m의 이 스핑크스 역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사자의 몸에 인간의 형상을 한 스핑크스는 오랜 풍화작용과 인간의 훼손에 의해 코와 턱 수염이 파괴 되었다. 이 스핑크스는  파라오 카프레를 상징함과 동시에 기자의 왕족묘지 수호자였다. <출처:이지지중해, Travelbookblues>

일반적으로 스핑크스는 카프레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 이후 한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훗날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가 왕자 시절,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래에 파묻힌 스핑크스 옆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스핑크스가 토트모세에게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 주면 너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말했다. 토트모세는 즉시 잠에서 깨어나 모래를 깨끗이 걷어내고 뒷날 왕이 되었다. 사자의 대 스핑크스는 전체 길이 60미터 높이 20미터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 대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처럼 돌을 쌓아 만든 게 아니고 원래 있던 바위산을 통째로 조각한 것이다. 보통 대 스핑크스는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있기 때문에 카프레 왕 때인 기원전 255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우선 카프레 왕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제작법이 다르고 석재의 산지와 공법도 달랐다. 그리고 최근 스핑크스 주위에 있는 벽에서 큰 홈들이 무수히 발견되었다. 지질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홈들은 홍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홍수는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날 때에나 있었다. 하지만 빙하기에 이런 거대한 석상을 세울 만큼의 문명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근거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현재로서는 없다. 지금, 대 스핑크스의 코는 깨져 있다. 대 스핑크스뿐 아니라 이집트 안의 석상은 거의 다 코가 없다. 나폴레옹이 대포를 쏘아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나, 문화재에 심취해 있던 나폴레옹이 그러한 일을 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사실 그것보다 이슬람교의 우상 숭배 금지 때문에 파괴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신빙성 있다. 또한 터키 병사들이 포격 연습을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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