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중국(China)

[중국 취푸(曲阜)] 주공단(周公旦)이 건국한 노나라(魯國)의 도읍

younghwan 2014. 9. 11. 15:41
반응형

중국 산동성에 위치하는 취푸(曲阜, Qufu)는 중국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춘추전국시대 이래로 존재해 왔던 유서깊은 도시 중 하나이다. 이 도시는 주나라 무왕이 주왕조를 열었을때 큰 공을 세웠던 무왕의 동생 주공단(周公旦)이 제후로 분봉되었던 노(魯)나라의 도읍이었던 곳이다. 취푸는 춘추전국시대 약870년간 노나라의 수도였으며, 공자가 이곳에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전국시대 이후에도 역대 왕조의 후원을 받아 왔기때문에 춘추전국시대 도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도시는 약12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져 있으며, 성의 서남쪽에는 궁전과 사당 등이 있는 내성(內城), 성의 동쪽은 군영, 성의 북쪽은 공업지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대 중국의 도시건설의 모범이 되는 <周禮>에 따라 <좌단우사(左袒右社)>, <면조후시(面朝後市)> 등의 규범이 잘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 취푸는 인구64만의 도시로 옛 곡부명고성(曲阜明古城, Qufu Minggucheng)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중국 도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노나라 도읍이었을 때 사당과 조정이 있던 읍성의 서남쪽에는 공자를 모신 사당인 공묘(孔廟)와 관청이라 할 수 있는 공부(公府)가 오늘날까지 내성(內城)안에 남아 있으며, 군영이 있었던 서쪽에는 시장과 주민들의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다. 읍성 남문에서 북문까지 연결되는 대로를 지나면 북쪽에 위치한 공자후손들의 무덤으로 인공림이 조성된 공림까지 참배길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에는 전통깊은 도시들이 많지만 중국인과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공자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현재 도시의 형태는 대체로 명.청대에 그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주나라가 건국할 때 처음 세워진 노나라 수도의 모습의 아직까지 잘 남아 있다.


공자 유적이 남아 있는 취푸 여행의 출발지인 취푸동역. 최근에 중국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생긴 역으로 산동성 수도인 제남시에서 약30분 정도 걸린다.


기차역에서 취푸 시내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서 들어갈 수 있는데, 역앞에서 중국공안이 잘 관리하기때문에 택시잡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취푸에는 많은 유적지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 찾는 곳은 공자 관련 유적지로 공자를 모신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 후손들의 저택이자 관청이었던 공부(公府), 공자와 후손들이 묻힌 공림(公林)이 대표적인 곳으로 3곳 모두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대 이래로 취푸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처음 만나게 되는 공묘 앞 성문이다.


성문 앞 광장에는 옛 사람들이 공묘를 참배하기 위해 걸었던 측백나무 가로수길을 볼 수 있다.


약 12km에 이르는  옛 곡부명고성 바깥쪽에 있는 해자를 볼 수 있다.


성문 안쪽 관청들이 들어서 있던 내성(內城) 지역


공묘의 첫번째 불 수 있는 패방인 금성옥진방(金声玉振坊)이다. 금성성옥진방은 명나라 가정17년(1538)에 처음 세워졌다. '金声玉振'은 맹자에 나오는 말로 '재주와 지혜가 충분히 조화를 갖추고 있다'를 의미하는 하는데 특히 공자의 완성된 인격을 가르치는 말이다. 현재의 패방은 청나라 강희제 16년(1677)에 중건된 것이라 한다.


취푸 공묘의 중심 건물인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건물은 동서 48.78m, 남북 24.89m로 24.8m높이의 유리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을 2층으로 올린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명나라 홍치12년(1499)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한 것으로 자금성 정전인 태화전의 영향을 받은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9칸으로 용이 휘감고 있는 장식을 한 10개의 기둥이 지붕들 받치고 있다.


공묘를 나오면 서쪽편에는 공자의 직계 후손인 연성공이 살았던 저택이자 관청건물이 공부(孔府)로 연결된다. 원래는 관청지역이지만 지금은 취푸 관광의 중심지로 크고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시장을 이루고 있다. 골목길 중간에 패방이 세워져 있다.


공묘에서 공부로 연결되는 골목길에 세워진 패방.


공묘에서 공부로 연결되는 골목길에 볼 수 있는 기념품 가게들


취푸에서는 여러 기념품들이 있지만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책(冊)의 어원이 되는 죽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골목길에서는 지금은 닫혀 있지만, 공묘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볼 수 있다.


골목길 끝에는 공부를 출입하는 벽돌로 쌓은 성문을 볼 수 있다.


공부 입구.


공부로 연결되는 골목길. 상가들이 들어서기 전 관청 골목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공부 앞 큰 길. 취푸시를 동서로 관통하는 큰길이다. 멀리 내성 성문이 보인다.


맞배지붕에 삼문을 하고 있는 이 문은 그냥 대문(大門)이라고 한다. 대당(大堂) 출입문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정문 앞 양쪽에는 악귀를 쫓아낸다는 의미로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


공부를 출입하는 작은 쪽문


공부(孔府)의 중심 건물인 대당(大堂)이다. 종손인 연성공이 황제의 칙사를 맞이하고 등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궁궐 정전과 같은 성격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공자 후손의 권위를 보여주는 여러 기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연성공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건물로는 대당, 이당, 삼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일상적인 업무는 이당(二堂)에서, 가족과 관련된 업무는 삼당(三堂)에서 본다고 한다. 대당과 이당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은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는 앞면 5칸의 건물이다. 19세기에 중건된 것으로 금속자재와 유리, 벽돌 등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취푸 읍성내 조정(朝廷)에 해당하는 공부(公府), 사당에 해당하는 공묘(孔廟) 등이 있었던 내성(內城)은 성문만 남아 있다. 노나라 수도였던 시절의 공간배치 형식이 잘 남아 있는 부분이다.


벽돌로 쌓은 성문 위에 목조로 지은 2층문루를 올려 놓고 있다. 궁궐을 상징하는 잡상들이 문루 추녀마루 위에 놓여 있다.


성문에서 공부로 들어가는 길.


관청건물로 들어가는 출입문


곡부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큰 길. 이 길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시장과 민가들이 들어서 있고, 서쪽에는 공묘, 공부를 비롯한 관청들이 자리잡고 있다.


취푸 읍성내 마을과 시장이 들어서 있는 지역


고풍스러운 건물속 자리잡고 있는 아디다스 매장


남북을 관통하는 대로 주변에 크고 작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대로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시장.


취푸 도심을 관광할 수 있는 마차


공부 남쪽편에 들어서 있던 관청건물들은 호텔이나 상가 등으로 바뀌었다.


호텔로 보이는 큰 건물


취푸 읍성 남문에 해상하는 성문. 일반적은 읍성의 성문과는 달리 3개의 성문을 두고 있다. 아마도 황제가 공묘와 공림을 방문했을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남문에서 공자와 후손들의 무덤이 있는 공림 입구까지는 직선 대로로 연결되어 있다.

성문 바깥쪽에는 현대식 상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북문을 나서면 공자와 후손들이 무덤이 있는 북문까지는 측백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참배길이 이어져 있다.


공자와 후손들의 무덤이 있는 공림 앞 광장


광장 앞 큰 길에 들어서 있는 기념품 가게들


광장 주변에 들어서 있는 가게들


공림(孔林)가 묻혀 있는 무덤인 공자묘이다. 중국, 한국 각지의 공묘(孔廟)에서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공자의 무덤은 그 규모가 크지 않고 검소하면서 소박한 느낌을 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