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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충무공께서 앉아 고민하던 한산도 수루(戍樓)와 제승당

younghwan 2010. 9. 2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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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수영이 있던 자리에 제승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제승당은 정유재란으로 한산도 진영이 불타 폐허가 된 것을 1700년대에 통제사인 조경(趙儆)에 의해 유허비가 세워지고 이 옛 터에 제승당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곳 제승당 유적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우리에게 알려진 충무공의 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로 잘 알려진 한산도 수루일 것입니다. 이 곳에서 수루에 올라서면 임진왜란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큰 승리였던 한산대첩의 현장인 통영 앞바다가 멋있게 펼쳐져 있습니다.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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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수루(戍樓)입니다. 원래부터 있던 수루는 아니고 최근에 복원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저절로 이 충무공의 시 '한산섬 달 밝은 밤에.....'가 생각나는 곳입니다.

한산도 수루에 올라서면 보이는 한산도 앞 바다의 모습입니다. 잔잔한 호수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호수같은 바다가 한산대첩의 현장인 통영 앞 바다입니다.

한산도 수루에 걸려 있는 충무공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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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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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제승당은 이순신 장군께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은 진영을 설치하고 막료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던 운주당을 세웠던 장소입니다. 제승당은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불타 폐허가 된 후 1739년에 통제사인 조경(趙儆)에 의해 유허비가 세워지고 이 옛 터에 제승당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건물들은 70년대에 새로이 복원한 건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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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의 맑은 공기와 70년대에 정비된 사적지 답게 깨끗한 마당과 수목들이 눈에 띄는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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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제승당 유적지 내에 자리하고 있는 충무공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忠武祠)입니다. 정면에 충무공의 영정이 한산도 앞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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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제승당 유적지의 입구인 충무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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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제승당 유적지에는 충무공과 관련된 많은 유적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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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도 제승당 유적지 내에 위치한 활터입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진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다. 선조 25년(1592) 이곳에 제승당을 짓고, 26년(1593)부터 30년(1597)까지,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영조 15년(1739)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운주당’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 ‘수루’ 등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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