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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유적_고인돌

여주 신접리 고인돌

younghwan 2010. 9. 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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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여행하다보면 몰랐던 사실들을 알 수 있게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고인돌도 그 중 하나인 듯 하다. 여주 신륵사 들어가는 입구 한경변에는 여주 도자기 축제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곳 한편에 조그만 고인돌 유적이 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강화도의 고인돌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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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신접리 고인돌
 고인돌은 동남아시아의 농경민족의 풍습으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지하에 석곽(石槨)을 만들고 그 위에 책상모양이나 바둑판 모양의 돌집을 세운 구조물이다. 한국에서는 벼농사가 제일 쉬운 지역인 영산강유역에 수만개의 고인돌이 있고 점차 주변지역으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 풍습은 벼농사 기술과 함께 북쪽으로 퍼지면서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인 요동반도에서 끝난다. 경기도 지역은 벼농사 기술을 개발한 지역답게 수많은 고인돌이 발견된다. 한강·임진강의 하구인 강화도 부근의 고인돌을 필두로 김포평야, 포천군 일대, 광명지역, 용인지역에 광범위하게 고인돌이 남아 있다. 고인돌은 주검을 매장하는 위치와 받침돌(支石)의 유무에 따라 크게 세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지상에 판돌(板石)로 돌방(石室)을 만들어 주검을 넣고 그 위에 크고 넓은 덮개돌(上石)을 올려 놓은 탁자식(卓子式) 또는 북방식, 땅 밑에 판돌이나 깬돌(割席)로 널을 만들어 주검을 넣은 다음 지상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기반식(基盤式) 또는 남방식, 그리고 기반식과 유사한 형식인데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이다. 신접리 고인돌은 탁자식 또는 북방식에 속하는 고인돌로, 받침돌 중 마구리벽은 없이 좌우의 간벽이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데 우측 간벽은 안쪽으로 쓰러져 있는 상태로 민가의 담장안에 들어가 있다. 이 지석묘에서부터 동남방 약 2km 지점 가정리에 있던 고인돌은 1980년 경지를 정리하면서 회손시켜 없어졌다. <출처:여주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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