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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구례 화엄사 각황전 (국보),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목조건축물

younghwan 2010. 8. 2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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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화엄사의 건물들 중에서도 가장 유서 깊고 아름다운 건물이 화엄사 각황전이다. 사찰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중심불전인 대웅전과는 별도로 화엄사에는 각황전이 좌측에 자리잡고 있다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 형태를 자세히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통으로 되어 있는 건물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금당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화엄사는 부석사, 해인사와 더불어 화엄십찰의 하나로 원래는 금산사 미륵전처럼 3층 건물의 장륙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조선 숙종때 재건된 것이라 한다. 그 유명한 황룡사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아마도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인 장륙전이 임진왜란때 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으로나마 복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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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바라 본 화엄사 각황전. 전통적인 가람배치에 있었어 금당은 2개의 탑이 있는 사찰 중앙에 있어야 하지만 각황전은 사찰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금당자리에 대웅전이 먼저 지어졌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서쪽편에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화엄사에서 장류전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기때문에 복원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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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와 비슷한 1탑1가람의 사찰가람 배치를 보여주는 2개의 탑이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하고 있다. 각황전(장륙전)을 기준으로 봤을때는 맞지 않는 가람배치이지만 위치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산중 사찰이지만 전통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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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각황전의 모습. 국보인 각황전 앞 석등과 쌍사자석탑이 그 앞에 있다. 중심불전인 대웅전 앞에 있어야 할 것들이 각황전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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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은 앞면 7칸으로 사찰 건축물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가 아닐까 생각된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도 앞면 5칸이지만 이 거물은 7칸이나 된다. 건물규모가 큰데 비해서 단청이나 문살들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 않으며, 대형 건물의 경우는 맞배지붕이나, 우진각 지붕을 하지 않고 팔각지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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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과 뒤쪽의 지리산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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