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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구례 화엄사 보제루, 화엄사를 찾는 사람들 쉼터가 되는 강당

younghwan 2009. 7. 2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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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루는 구례 화엄사의 본 절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건물로 목조구조물에 색칠이 되어 있지 않아 고풍스러운 분위기른 느끼게 해주는 건물이다. 앞면 7칸의 규모가 큰 건물이지만 문화재로서의 중요성이 높지는 않은지 강당 내부는 이 곳 화엄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강당에 앉아 경내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람배치에서는 강당은 금당 뒷편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사찰을 찾는 신도들과 승려들을 대상으로 경전을 공부하는 장소로 준비된 곳이지만, 요즈음 강당은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잠시 쉬는 공간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산지사찰의 경우는 누각과 강당을 겸하는 경우가 많으며, 누각이 출입문 역할을 하는 사찰 또한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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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사천왕문을 지나면 우리를 맞이 해주는 누각인 보제루이다. 작은 사찰의 경우는 누각에 범종과 법고를 같이 두면서 강당의 역할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지만 화엄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의 하나로 범종과 북이 보제루 좌우에 범종각과 운조루를 두어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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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보제루는 개방되어 있는 건물이라 많은 사람이 이 곳에서 쉬고 있다. 사찰을 방문하면서 제일 보기 좋은 모습은 경내 중심불전 앞에 석탑이 있고, 그 앞에는 큰 강당누각이 있어 많은 신도나 관람객이 누각 마루에 앉아서 사찰을 둘러 보고 있는 모습이다. 사찰이 살아 있는 느낌을 주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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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보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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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보제루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화엄사는 통일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승려 연기가 처음 지은 절이다. 그 후 신라말 도선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으나,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다. 조선 인조 8년(1630)에 승려 각성이 다시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인 인조 14년(1636)에 대웅전을 비롯한 약간의 건물을 완성하였고, 그 다음해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각성이 다시 지은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화엄사 보제루는 법요식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강당건물이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대웅전 앞 한단 낮은 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전 쪽 창문은 7칸 모두 큰 두짝의 빗살문을 달고 그 반대쪽 5칸은 널판지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칸은 문을 생략하였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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