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궁궐_종묘

[덕수궁] 함녕전과 덕홍전, 고종이 마지막으로 거처하던 곳

younghwan 2012. 5. 3. 00:36
반응형

 함녕전과 덕홍전은 고종황제가 마지막으로 거처하고 사용하던 건물이다. 그중 함녕전은 궁궐 전각 중에서는 국왕의 침전으로 사용했던 건물로 경복궁이 왕비의 영역인 내전을 별도로 두고 있는데 비해서 왕비의 침실을 같이 두고 있어 내전을 겸하고 있던 건물이다. 이는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궁궐로 정해진 후 증축하는 과정에서 지어졌는데 당시는 중전인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로 내전이 급하게 필요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신에 덕홍전 오른쪽편에 명성황후의 빈전인 '경호전'이 있었으며, 그 자리에 고종이 손님을 접견하기 위한 건물로 덕홍전을 지었다.

 덕홍전은 궁궐건물 중 제일 마지막인 1911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며, 고종이 손님을 접견하기 위한 공간으로 지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덕홍전은 국왕 침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은 긴급한 상황을 대비하여 영국과 러시아대사관을 비롯하여 외국대사관들이 밀집한 이곳 덕수궁에 머무르기를 선호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이 곳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고 한다. 덕홍전과 함녕전은 전체적으로 고풍스런 멋은  덜한편이고 현대적인 한옥 건물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다.


덕수궁 중화전이 정전으로서 공식적인 행사를 치루는 장소라고 하면 동쪽편에 위치한 함녕전과 덕홍전은 국왕의 침전과 왕비의 내전을 겸하고 있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건물 앞에 있던 행각들은 최근 복원작업을 거쳐서 옛 모습을 찾고 있다.


덕수궁에서 국왕의 침전으로 지어진 함녕전. 앞면9칸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3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이 건물로 고종이 마지막으로 거처한 건물로 왕비의 처소인 내전과 국왕의 침전을 겸하고 있다. 이는 이 건물을 지었을 당시 중전인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중전이 없었기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청마루로 이루어진 함녕전 가운데 3칸. 실제 국왕의 생활공간이었던 곳으로 정전과는 달리 웅장하거나 장식을 통해 화려하게 꾸며 놓지는 않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단청. 공포는 익공계열로 간략하게 꾸며 놓고 있다.


함녕전 대청마루 내부.


대청마루 천정의 장식. 함녕전은 전기가 도입된 20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로 이전 궁궐전곽과는 달리 전등을 달아 놓고 있다.


함녕전 추녀마루의 잡상들


뒷편에서 본 함녕전, 대청마루는 앞.뒤로 개방되어 있으며, 함녕전 뒷편으로는 상궁.나인들이 머물던 공간인 행각들과 마당이 있다. 왕비의 침실로 보이는 동쪽편 온돌방 뒷편으로는 작은 누마루를 두고 있으며, 대청마루 뒷편과 누마루에서 상궁.나인들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함녕전 동쪾편 온돌방과 행각은 복도마루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 궁궐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함녕전 뒷쪽편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 건물들. 주로 국왕와 왕비를 보좌하는 상궁.나인들과 국왕을 경호하던 내시 등이 머물렀던 공간으로 크고 작은 방들과, 부엌, 창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함녕전 앞 쪽의 행각, 함녕전 정면 출입문 양쪾으로는 방을 두지 않고, 공간을 비워두고 있는 회랑의 형식을 하고 있다.


함녕전 출입문


2008년 여름 함녕전과 덕홍전 앞 마당. 지금과는 달리 행각들이 없었다. 행각들은 이때 복원공사를 진행중이었으며, 현재는 복원이 완성된 상태이다.


2012년 봄 행각이 복원된 함녕전과 덕홍전 앞 마당


2008년 여름 덕수궁 함녕전


2012년 봄 덕수궁 함녕전

 함녕전은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고종이 승하한 건물이기도 하다. 정면 9칸, 측면 4칸인데 서쪽 뒤편에 4칸이 더 붙어 'ㄱ'자형으로 되었다. 월대처럼 구성한 높은 계단이 독특하다.내부는 큰 마루를 사이에 두고 동쪽 방을 고종황제의 침실로 꾸미고, 서쪽 방을 황후의 침실로 꾸몄다. 그 둘레의 공간은 왕의 신변 보호 및 의식주를 담당했던 상궁들의 거처로 사용하였다. <출처:문화재청>


함녕전 서쪽편에는 고종이 손님을 접견하던 공간으로 사용한 편전 성격을 갖고 있는 덕홍전이 있다. 이 건물은 명성황후 빈전이 있던 자리에 1911년에 다시 지은 건물로 조선이 지은 마지막 궁궐건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덕홍전은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생활공간인 함녕전과는 달리 공식적인 행사를 위한 궁궐건물로서의 웅장함을 갖추고 있다.


덕홍전 현판과 단청. 공포는 새모양을 하고 있는 익공계 형태이다.


덕홍전 내부은 검은색 타일이 깔여 있으며, 칸막이가 없는 하나의 공간으로  이곳에서 손님을 맞았다기보다는 정전인 중화전 처럼 이곳 앉아 마당의 손님을 접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덕홍전 내부 천정. 함녕전과 마찬가지로 상들리제처럼 생긴 전등이 달려 있다.


덕홍전 앞 행각. 출입문과 양쪽에 회랑형식의 행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각을 복원하기 전까지는 이곳에 건물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원래 궁궐 건물로 있었던 건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행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옛 건물은 철거하고 남아 있지 않다.


2008년 여름, 행각을 복원할 당시에는 덕홍전과 중화전사이에는 큰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2008년 여름 덕홍전


2012년 봄 덕홍전


중화전 월대에서 내려다 본 국왕의 침전인 덕홍전, 덕홍전과 중화전 사이에 있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덕홍전은 고종황제가 내외빈객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원래 명성황후의 빈전인 "경효전"이 있던 자리에 1911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덕수궁 안에서 가장 나중에 지은 건물이다. 기둥머리에 새날개 모양의 익공을 2개 설치한 이익공의 간략한 구조이다. 현재는 건물 내부를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복원하여 당시의 궁중 생활상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