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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창경궁] 환경전과 경춘전, 국왕과 왕비가 거처했던 내전 건물

younghwan 2012. 9. 1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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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정전인 명전전 뒷편으로는 국왕과 왕비를 비롯하여 왕실에 속해있던 많은 일가들이 머물던 공간이다. 창경궁은 세종대에 상왕인 태종을 위한 공간으로 처음 궁궐건물들이 조성된 이래로 성종대에 대비를 비롯한 왕실가족을 위해 창건한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버린 이후 대부분의 기간동안 국왕이 거처했던 창덕궁은 실제로 정전, 편전, 동궁전을 제외하고는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지 않다. 실제로 대비를 비롯한 왕실 어른들, 많은 후궁들과 그들 소생인 어린 왕자와 공주들, 왕실에 일하던 상궁과 나인 등 왕실에 속한 사람들이 주로 거주했던 장소는 창경궁 일원이었다고 한다. 창경궁에는 이들을 위한 많은 전각들이 있었는데, 일제가 이곳에 동물원을 조성하면서 대부분의 전각들은 허물어지고, 환경전,통명전,경춘전 등 국왕이 거처하던 내전의 중요 건물들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

 창경궁에는 국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건물로는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양화당, 집복헌 등이 남아 있다. 창덕궁의 내전은 국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공간으로 건물의 성격이 명확했는데 반해서 창경궁 내전 건물들은 국왕이나 왕비가 거처할 때도 있고,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할 때도 있고, 왕실의 어른인 대비가 거처할 때는 경우도 있는 등 당시 상황에 맞게 건물들을 적절히 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명전전 바로 뒷편에 위치한 환경은 국왕의 침전으로 세워진 건물로 세자가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환경전 안쪽에 위치한 경춘은 왕비의 침전으로 세워진 건물의 당시 상황에 따라서 세자빈의 침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대비전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춘전과 환경전
경춘전은 대비의 침전이고, 환경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이다. 두 건물 모두 1834년에 다시 세웠고, 원래는 각기 행각을 두른 독립된 영역을 가졌었다. 경춘전은 왕비의 산실청으로도 쓰여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정조는 본인의 탄생을 기념해 내부에 '탄생전'이라고 친히 쓴 현판을 걸었다. 경춘전 현판은 수조 임금의 솜씨이다. 환경전은 중종과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곳이며, 건물 뒤편 북쪽은 여러 대비들의 침전이 밀집해 있었으나 지금은 빈터로 남았다. <출처:문화재청>


환경전은 창경궁에서 국왕이 거처하던 침전으로 세워진 건물로 창경궁을 창건할 때 처음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대에 중건했고, 순조대에 화재로 소실한 것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환경전은 국왕을 위한 공간으로 국왕이나 세자가 주로 이용하였다고한다.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하였고,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승하했을 때 빈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이익공 공포를 하고, 국왕의 처소답게 추녀마루에 잡상을 세워놓고 있다.


건물내부에는 온돌은 없고 전부 우물마루로 깔았다고 하는데,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국왕이 외부인사를 접견하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양쪽에 서재나 침실 등으로 꾸몄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대청과 방을 구분하던 칸막이 벽이나 문 등이 남아 있지 않아 옛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고 한다.


환경전 문살. 장식성이 배제된 단조로운 정자창살이나 띠창살을 하고 있다.


환경전 현판


치붕을 받치는 공포는 단조로운 이익공 공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궁궐 건물로 겹처마에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을 하고 있다.


환경전은 국왕의 침전으로 궁궐건물의 권위를 보여주는 추녀마루 잡상이 있다.


경복궁 환경전. 원래는 환경전 주변은 행각으로 둘러져 있어서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환경전만이 남아 있다.


2008년 환경전


뒷편에서 본 환경전. 뒷편에 작은 툇마루를 두고 있다.


뒷편에서 본 환경전


경춘전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창경궁이 창건되었던 성종대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에, 순조대에 화재로 불탄 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하였다. 경춘전은 대비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세자빈의 침전으로 사용하는 등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사용한 건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양쪽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고 한다.


경춘전 현판. 현재의 건물을 중건한 순조가 쓴 글씨라고 한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환경전과 마찬가지로 이익공 공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겹처마에 단청을 입혀 놓고 있다.


가운데 3칸은 왕비의 집무 공간 성격을 갖는 넓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으며, 앞쪽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경춘전 문상. 4면에 문을 달아 놓고 있으며, 장식성이 강조되지 않는 띠창살을 하고 있다.


경춘전 뒷편


경춘전 뒷편으로는 다른 궁궐의 내전과 마찬가지로 계단식 정원을 조성해 놓고 있으며, 온돌방과 연결된 굴뚝이 있다.


경춘전 뒷편 마당의 작은 우물


2008년 경춘전


환경전 마당에 세워진 오층석탑. 일제가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창경궁 내전 뒷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환경전과 경춘전. 각 건물들은 행각으로 둘러져 있었으며, 주위에는 후궁들의 거처를 비롯하여 많은 건물들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후기 동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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