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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양평 용문산 용문사

younghwan 2010. 9. 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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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용문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입니다. 은행나무로 인해 유명한 오래된 사찰이지만 실제 규모는 생각보다는 매우 적습니다. 지금은 깊은 산중이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옛날에는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찰은 대웅전, 지장전, 삼성각과 최근에 지은 관음전이 있습니다만 그 건물의 규모나 배치에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일제 시대에 불타버린후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라고 합니다.


※ 용문사 탐방
 1. 용문사 은행나무          2.용문사를 오르는 숲속길            3.용문사 입구

용문사 입구를 지키는 은행나무 옆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나타납니다. 용문사는 유명세에 비해 작은 사찰이라서 사천왕문 같은 별도의 입구가 없습니다.


용문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입니다. 용문사는 불전의 배치 등에 있어서 특별한 특징은 없고 건물 자체도 지은지 오래되지 않은 건물입니다. 일제 시대에 불탔다고 합니다.

용문사에는 대웅전 외에 최근에 지은 듯한 지장전과 관음전이 옆에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지은 건물로 보이는 관음전입니다. 그럼에도 건물의 규모도 매우 작습니다.

용문사의 범종각입니다.

한국의 사찰에서 빠질 수 없는 삼성각입니다. 민간신앙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빠지는 일이 거의 없는 건물입니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탑입니다. 최근에 세운 탑이라 그런지 잘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용문사 대웅전 앞 마당입니다.

용문사 마당에서 바라본 은행나무입니다.

용문사 안내표지판



신라 신덕왕 2년인 913년에 승려 대경(大境)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설에 따르면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행차하여 직접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에 지천(智泉)이 개풍군 경천사에 있던 대장경을 이 곳에 옮겨 봉안했다. 조선 세종 29년인 1447년에 세종의 둘째 왕자인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지었다. 수양대군은 왕이 된 뒤 왕명으로 용문사를 중수하도록 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했으나, 대한제국 순종이 왕위에 오른 1907년에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나면서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워버렸다. 1909년부터 차츰 중건하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현대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권근이 지은 정지국사부도 및 비는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72호인 금동관음보살좌상도 있다.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용문사의 은행나무에는 경순왕의 태자 마의태자가 신라 멸망 후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이야기와 함께 의상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은행나무로 자라났다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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