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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4

남원 용담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

남원 용담사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이다. 큰 바위에 부처의 형상을 부조로 새겨놓은 높이 6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얼굴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힘차고 박력있는 표정을 느낄 수 있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비롯하여 고려 초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불상 중 하나이다. 조각으로 표현된 부분이 마모되어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고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도 양호한 편이다. 남원 용담사는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출토된 유물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남원 용담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 얼굴 형체는 알아볼 수..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보물 294호)

경남 함양군 승안사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 등의 모습을,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은 통일신라말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머리장식으로 받침과 복발, 연꽃모양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과 탑신의 비례에서 보이는 조형미가 비해 떨어지는 편이며, 고려전기 특색을 보여주는 장식들이 여러곳 있다. 승안사(昇安寺)는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북쪽에 승안산 기슭에 있던 사찰로 조선초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이 없다. 조선중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기단과 탑신 1층 몸돌에 부조를 새겨 놓은 통일신라 말 삼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부에는 부처, 보살, 비천..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 구한말에 지어진 고택

경남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이다. 인근 개평마을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정여창의 후손이 분가하여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아주 오래된 고택은 아니고 구한말에 지어졌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으로 안채와 사랑채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유교적인 질서가 해체되는 구한말에 지어져서 집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대저택에서 사용하는 솟을대문을 사용하고 있다. 함양 우명리 정씨고가. 조선중기 문신 정여창의 후손들이 분가해서 세거지를 이루고 있는 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이다. 정여창을 모신 남계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유교적인 질서가 무너진 구한말에 지어진 고택으로 문간채는 솟을대문을 사용하고 있다. 안쪽에서 본 문간채. 한쪽편에는 문간방이..

고택_정원 2016.10.24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

경남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로 풍천노씨 입향조인 조선초 문신 노숙동이 처가인 이 마을에서 처음 자리잡은 곳이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일렬로 배치되어 개방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의 구조나 형태 등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마을의 대종가이지만 저택의 규모나 형태가 소박하면서도 검소해 보인다.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했던 지리산 솔송주가 있다. 개평(介坪)이란 말은 두개의 하천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 조선중기 풍..

고택_정원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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