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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129

한국민속촌, 방앗간과 곡식을 찧는 각종 방아

용인 한국민속촌에서는 산업화 이전의 시기에 사용되었던 여러 생활모습과 도구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민속촌에 복원한 각종 민가와 함께 있는 각종 방아들이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기 이전에 농업이 전체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시골에서 방앗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토호계층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계층부터 어느정도 규모의 농사를 지었던 중농계층까지는 자체적으로 다양한 방아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농민들은 마을 공동소유나 부유한 이웃의 방아를 이용해서 곡식을 찧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곡식을 찧는 도구들이 있었으며, 그 중 한국민속촌에서 많이 사용하였던 다양한 형태의 방아들을 ..

한국민속촌, 대장간과 농기구

용인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전통사회의 모습 중 중요한 부분인 농업에 필요한 연장들을 만들던 대장간이다. 야장이라고 불리던 대장간은 도시나 장터 골목에 자리잡고 각종 생업도구를 만들었는데 기본적으로 철을 불에 달구어 두들겨서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으로 김홍도의 풍속화에 옛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옛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처에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전통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민속촌에 복원된 대장간의 모습은 시골 대장간인 것으로 보이며, 그 규모도 아주 단촐하고 원래의 모습이 제대로 복원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장간 대장간은 생철을 불에 달구어 모로에 대고 두들겨 각종 연장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대장간..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1336호), 홍예가 아름다운 돌다리

고성 건봉사는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시대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조선 세조가 직접 방문하여 원찰로 지정한 사찰로 왕실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금강산 유람길에 있었던 명소이자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한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던 건봉사 전각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리고 지금은 옛 사찰의 흔적으로 불이문과 능파교만이 남아 있다. 보물 1336호로 지정된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불이문 옆 능파교신창기비에 적혀 있는 기록에 의하면 숙종 30년인 1707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산중 계곡을 건너기 위해 설치된 다..

고성 육송정 홍교(보물 1337호), 대표적인 조선시대 아치형 돌다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에 위치한 보물 1337호로 지정된 육송정 홍교는 아치형으로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돌다리이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 경계에 위치한 다리는 조선시대 강릉 이북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던 간성군 관아에서 조선시대 4대 사찰이었던 금강산 건봉사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립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슷한 형태의 다리인 건봉사와 홍파교와 비슷한 시기인 조선 숙종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다리는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을 건너는 다리로 길이 12.3m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석축을 쌓아 만든 홍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로의 폭은 약 2m 정로로 우마차 1대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이다. 육송정 홍교가 있는 ..

포천 청성사와 채산사, 최치원과 최익현을 모신 사당

구한말 유학자로 일제에 항거하다 대마도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출신지역이 포천인 관계로 포천시 신북면에는 그를 기리는 사당인 채산사가 마을 뒷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구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인 이항로의 제자로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부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의 사당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7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며, 일제강점기 이후에 사당이 세워진 많지 않은 인물 중 한사람이다. 그의 사당 뒷편으로는 경주최씨의 시조라 일컫어도 무방한 통일신라시대 유학자인 최치원 선생을 모신 사당이 청성사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이 지역에 경주최씨 집안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채산사 사당 출입문이 삼문. 오래된 사당으로 보이지만 일제강점기가 끝나 1947년..

포천 인평대군 묘 및 신도비, 치제문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에 위치하고 있는 인조의 셋째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의 묘이다. 인평대군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갔다고 돌아왔으며, 효종때에는 4차에 걸쳐서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병자호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헌신을 한 인물이다. 왕자의 신분이지만 묘역은 규모있게 잘 정비되어 있고, 지금까지도 묘역에 재실과 관리인이 남아 있다. 서예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학문도 깊었다. 묘역 앞쪽에는 거북이수에 몸돌을 올려놓은 잘 만들어진 신도비가 있고, 옆쪽 비각에는 효종,숙종,영조,정조.순조의 글씨가 새겨진 치제문비가 있다. 그 중 비각안에 있는 치제문비는 2기가 있는데 1기는 효종의 지은 제문과 그 후에 숙종이 직접 짓고 쓴 제문이 새겨져 있다. 또한 다른 한쪽은 정조때 영..

예산 가야산 남연군묘,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는 명당 (?)

충남의 대표적인 평야지대인 내포평야가 있는 예산지역 서쪽편에는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과 그 북쪽으로 보원사와 가야사라는 큰 절이 있었던 가야산이 있다. 그 중 가야산은 내포평야 중심이 위치한 산으로 북쪽으로는 보원사지, 서산마애석불이 있고, 서쪽으로는 해미읍성과 개심사가 자립 잡고 있는 지역의 명산이다. 이 가야산 동쪽편 기슭인 덕산지역에는 구한말 풍운아인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을 이장할 명당자리를 찾다가, 이 곳 가야사 자리가 '2대에 걸쳐서 왕이 나올 자리'라고 하여 절을 불을 질러 없애버리고 그 부친의 묘소를 이장했다고 하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가야산 동쪽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뒤편과 좌.우에는 산능선이 있고 앞쪽인 동쪽 방향으로는 틔어져 있는 전형적인 명당자리하고 한다. 실제로 그 자리에 올라서서..

홍성 성삼문선생 유허, 선생이 태어난 외가 마을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마을에 위치한 성삼문선생 유허이다. 이 마을은 선생의 외가가 있었던 곳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아이를 낳았느냐"고 하늘에서 세번 물었다는 성삼문선생 출생의 고사가 담긴 장소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다가 처형된 까닭에 선생이 태어난 집은 아직까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 집터는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 곳에서는 조선후기 숙종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노은서원이 있었다고 하며, 우암 송시열 선생이 비문을 지은 휴허비와 노은서원에 모셨던 위패를 묻은 노은단이 유적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노은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대신 위패를 묻은 노은단과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사당인 '숭문사'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부근에는 성삼문선생의 외손..

[서울 고궁박물관] 자격루를 복원한 물시계

고궁박물관에는 몇년전에 뉴스에 크게 등장했던 조선시대 물시계인 자격루를 복원한 물시계가 전시되어 있다. 조선 세종때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는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로 국가의 표준시로 운영되었던 것이다. 워낙 기계장치가 복잡하고 정밀해서인지 오래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전해오는 국보 229호로 지정된 덕수궁에 전시된 보루각 자격루는 그 후 중종때 만들어 진 것이라고한다. 중국 북경에서 표준시를 정하기 위한 물시계는 자금성 북쪽편 고루에서 볼 수 있는데,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웅장함에는 자격루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덕수궁에 전시된 자격루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던 기계장치들은 남아 있지 않고, 기계장치에 물을 공급해 주던 물통만이 남아 있는데, 이를 근거로 해서 2..

남원 광한루원 뒷편 춘향 사당과 고을 수령 공덕비

남원 광한루원 뒷편에는 남원부사를 거쳐간 많은 고을 수령들의 공덕비가 있고 그 옆에 대나무로 둘러싸인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의 영정이 있는 춘향사당이 있다. 남원도호부는 종3품의 부사가 다스리던 상당히 규모가 큰 고을로 많은 고위 인사들이 이 곳 남원부사를 거쳐갔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공덕비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 중 광해군때 부사를 지낸 성안의 선정비는 앞쪽에 별도로 있는데 아마도 정유재란때 완전 소실된 남원을 복구하는데 상당히 애를 많이 썼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춘향사당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남원 유지들이 기금을 모아서 건립한 사당으로 당시에 전국에 있는 기생들이 사당건립 모금에 참여했다고 한다. 정문에는 '단심'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사당 정면에는 김태석이라는 사람이 쓴 '열녀 춘향..

만인의총 (사적272호),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일만 남원군민이 묻힌곳

남원 만인의총은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다 죽은 일만 남원군민과 군인들을 합장한 무덤으로 그 역사적 중요성때문에 사적으로 지적된 곳이다. 남원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전주를 통해서 서울로 연결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 막마지 무렵에 왜군의 총공세가 영남의 진주성에서 큰 싸움이 있었고, 전략적 요지인 남원성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 그 싸움에서 남원성은 완전히 불타버리고, 남원군민, 군인 등 일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사했다. 이때 남원의 큰 사찰인 만복사와 선원사 또한 불타버리고 없어졌다. 만인의총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죽은이들을 한곳에 묻고 그들을 추모하는 사당을 지은데서 유래한다. 광해군이 충렬사라는 사당이름을 지었고, 현재 위치에 있는 만인의총은 원래는 남원역 앞에 있..

[서울 고려대박물관] 혼천시계 (국보230호)와 조선시대 천문도

고려대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인 국보 230호로 지정된 혼천시계이다. 어떤 연유로 이 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의 천문학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조선시대에는 혼천의라고 불리는 천체 위치측정기로 일월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했는데 문헌상 세종조에 만들어진 것이 처음이다. 그 이후로 물레바퀴를 동령하으로 하는 시계와 연결하여 혼천시계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그 모습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려대 소장 혼천시계는 17세기에 천문학자였던 송이영이 만든 천문시계로 서양의 톱니바퀴 시계와 조선의 혼천시계를 결합하여 만든 독창적인 시계로 학자들에게 천문학 교육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현재 만원권 지폐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높고,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고려대 박물관] 조선시대 지도, 대동여지전도.수선전도(보물853호).동국여도 등

고려대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조선시대 과학.기술 관련 유물이 생각보다 많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보로 지정된 혼천시계를 비롯하여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 서울의 지도를 목판본을 만든 수선전도, 궁궐을 묘사한 동궐도를 비롯하여 각종 해시계와 천문도, 지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한양의 지도로 19세기초에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 목판 (보물853호)은 당시 서울의 모습을 아주 정확히 묘사하고 있으며, 서울을 찾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 지도를 많이 이용했었다고 하며, 그런 종류의 필사본이 연세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반도를 묘사한 유명한 그림인 근역강산맹호기상도, 한반도 전체를 그린 대동여지전도와 아국지도를 비롯하여 각종 지리지 관련 유물들이 체계있..

[고려대학교 박물관] 조선시대 해시계와 지남철

고려대 박물관은 대학박물관 중에서는 국보급 문화재를 비롯하여 상당수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수준 높은 박물관이다. 특히, 국보로 지정된 혼천시계와 동궐도를 비롯하여 조선시계에 민간에서 사용했던 각종 해시계와 지도, 천문도 등은 고궁박물관을 제외하고는 다른 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유물들이다. 조선시대 천문학은 주로 국가기관인 관상감에서 관여했던 학문으로 그 유물들은 주로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외에 민간에서 사용했던 과학기술 유물들은 이 박물관이 많이 소장하고 있는 편이다. 그 중 해시계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관청에서 사용했던 대중적인 시계인 앙부일구와 지평일구, 민간에서 사용되었던 일영시계를 전시하고 있으며, 원래는 과학기구이지만 집터나 무덤자리를 잡을때 풍수쟁이라고도 불리었던 지관..

[고궁박물관] 조선의 도량형 제도와 의료기관

도량형는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 되는 제도로 시간을 통일하는 천문학과 함께 실제 생활을 통제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고대 이래로 음악과 함께 유교의 정치이념에서 예악으로 중시된 것이다. 서구에서 전국시대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던 여러 도량형을 하나로 통일한 것을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태종대에서부터 세종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많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시간의 기준이 되는 천문학, 물시계, 역법을 정비하였으며, 음률의 기준을 제시한 각종 악기의 제작과 국민생활에 밀접한 도량형을 제도화하였고, 그 내용들이 법전인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세종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계속 사용하다고 숙종에서 영.정조 시기에 기존의..

[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천문학, 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국보228호)

동아시아에서 천문학은 국왕의 권위와 대외관계에 관련된 정치와 외교에서 아주 중요한 학문이었다. 그래서 서양의 천문학에 비해서도 상당히 발달되었던 학문의 한 분야였다. 천문학은 해와 달의 움직임, 계절의 변화에 따른 별자리의 이동을 기본적으로 하고, 천문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였던 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 하늘의 뜻을 살피는 중요한 행사였던 일식과 월식의 예측 등의 천문학 연구가 국가 통치에서 국왕과 나라의 권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는 한나라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위상을 강화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특히, 조선전기 세종때에는 조선을 건국한지 얼마되지 않았기때문 국가의 위상을 정립하고, 국왕의 권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천문학 연구가 활발히 일어..

[고궁박물관] 조선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 간평일구와 혼개일구, 신법지평일구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으로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그 중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는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세종때 만들어진 정밀한 시간측정 도구인 물시계는 그 원형이 남아 있지 않고, 그 일부인 자격루가 덕수궁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왕권의 상징으로 시간의 동기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시계는 시간의 근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반해 해시계는 태양의 그림자를 가지고 시간과 절기를 측정할 수 있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시계이다. 고궁박물관에는 세종때 만들어진 오목해시계인 앙부일구(보물845호)를 비롯하여,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간평해시계와 혼개해시계 (간평일구와 혼개일구, 보물 841호), 평면해시계(신법지평일구, 보물 840호)를 비롯하..

서울 태릉,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능

서울 동북쪽에 위치한 태릉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촌과 육군사관학교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역대 조선 왕과 비의 능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으로 근처에는 동구릉과 강릉이 있다. 이 지역에 많은 능이 있는 관계로 넓은 능역이 일제강점기까지 남아 있었고, 그런 이유로 해서 근처에는 육군사관학교, 태릉사격장, 태릉선수촌, 군부대 등 많은 공공시설이 소재하고 있다. 태릉의 주인인 문정왕후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걸 중 한명으로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이다. TV가 도입된 이래 가장 많은 사극의 주인공 중 한명인 문정왕후는 중종이 계비임에도 고양 서삼릉에 있었던 중종의 능을 서울 강남의 정릉으로 옮기고 자기도 그 곳에서 묻힐 작정으로 원찰인 봉은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

서울 석관동 의릉, 조선 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왕릉

서울 석관동에 위치한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능이다. 왕릉으로서는 한양도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의릉은 장희빈의 아들로서 숙종 다음 왕인 경종의 능으로 선의왕후의 능과 앞.뒤로 나란히 있는 특히한 구조인 상하이릉봉이다. 이는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의령의 능역이 되는 천장산은 남쪽편이 옛 홍릉지역과 함께 서울 동북지역에서 가장 넗은 녹지를 제공하고 있는 곳으로 주변에 많은 국책연구소와 대학들이 자리잡고 있다. 의릉이 있는 곳을 사용한 정부기관은 옛 중앙정보부로 의릉영역내에 있는 중앙정보부 강당은 70년대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지금은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이 내곡동 헌인릉 부근으로 이전함에 따라서 옛건물들과 부지를 문..

세종대왕 옛 영릉 석물과 신도비

영릉은 세종대왕의 능으로 원래는 서울 내곡동 태종의 능인 헌릉 서쪽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재의 위치인 여주로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주로 이장하면서 기존의 석물들은 무거워서 옮기기 힘들다고 하여 땅속에 묻었다고 하는데, 70년대에 그 석물과 옛 영릉 석실들이 발굴되어 현재는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옛 영릉은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능으로 현재의 영릉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 마당에 전시된 석물들은 영릉에 있었던 모든 석물들이 발굴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남아 있다고 한다. 발굴된 석물은 무인석 2기, 문인석2기, 석양.석마 2기씩, 장명등, 망주석, 혼유석, 고석과 신도비가 있다. 청량리 옛 홍릉 능역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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