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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129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 오면서 쉬었던 전주 오목대(梧木臺)와 이목대(梨木臺)

전주 한옥마을 길을 따라서 동쪽편으로 계속가면 조그만 동산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곳이 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유적지인 오목대(梧木臺)와 이목대(梨木臺)입니다.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머물면서 조선 건국의 의지를 드러낸 곳이고, 이목대는 태조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작은 동산인 이 곳을 오르면 서쪽편으로 전주 한옥마을의 정겨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전주 구도심 전체가 눈 앞에 펼쳐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주 한옥마을 동쪽편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오목대와 이목대입니다. 오목대와 이목대가 있는 언덕에 올라서면 전주 한옥마을을 포함하여 전주 구도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국악을 배우는 학생들의 낭랑한 창(唱)소리를..

영조가 당쟁을 없애려 세운 성균관 탕평비

성균관 대학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영조가 세운 탕평비가 있다. 아마 당시 당쟁의 중심이 성균관 이었던 모양이었는지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웠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말을 잘안들어서인지 영조시대에도 탕평책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당쟁이 해소되지는 못한것 같고, 결국 그것이 조선을 멸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영조가 세운 탕평비입니다. 《예기》 가운데 한 구절인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가 적혀 있습니다. 성균관 대학 입구에 있는 성균관 탕평비 뒷면에 적힌 글씨입니다. 성균관 탕평비 기단과 지붕입니다. 성균관 탕평비가 있는 누각은 성균관 대학 입구에 있습니다. 역사는 참 가까..

행주산성 정상 행주대첩비, 덕양정, 충의정, 기념탑.

한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는 행주산성은 건너편의 개화산과 더불어 평지에 솟아 있어 멀리서도 쉽게 보이는 유적지입니다. 행주산성 정상에는 이정표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기념탑과 조선시대에 세운 대리석으로 만든 대첩비가 있고, 특별한 유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첩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70년대 성역화 사업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것들입니다. 행주산성 정상에 오르는 길이 끝나는 부분입니다. 발 아래로 한강이 흐르고 정상부에 위치한 기념탑과 대첩비각이 보입니다. 행주산성 정상부로 오르는 길입니다. 성역화 사업으로 조성된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늑한 분위기를 주고 있는 길입니다. 행주산성 정상으로 오르는 길 옆으로 있는 숲속길입니다. 이 숲속길로도 정상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행주산성에서 가장 좋은 경치를 감상할 ..

행주산성 입구의 권율장군 동상과 대첩문, 오르는 길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중에 있었던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현장으로 우리에게 아주 가까히 있는 유적지입니다. 산성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남한산성처럼 돌로 쌓은 성곽은 볼 수 없지만, 북쪽편에는 토성의 흔적이 일부나마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서울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행주산성은 일산으로 가는 자유로변에 자리잡고 있는 유적지로 눈에 보이는 때는 많지만 잘 들어가지는 않게 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경치도 좋고 임진왜란 당시를 한번 되새겨보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행주산성의 이름을 널리 알린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장군의 동상이 산성입구에 우뚝 서 있습니다. 70년대 유적지 성역화 사업에 따라 조성된 전형적인 모습..

영덕 영해면 괴시마을, 목은 이색 선생 유적지/생가터

영덕 북쪽인 영해면 소재지에서 대진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고색창연한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전통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괴시마을의 형세로 보아서는 이 곳이 이 지역에 중심적인 부호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똑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괴시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곳이 목은 이색선생의 생가터이자 유적이고, 지금은 영덕군에서 그 유적지를 잘 조성해 놓고 있다. 영덕 괴시마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목은 이색선생 유적지 지금 재현해 놓은 목은 이색 선생 생가의 모습. 옛날 사람들의 살던 한옥들은 예상외로 규모가 크지 않다. 목은 이색 선생 생가터임을 표시..

고려시대 대몽항전의 중심이었던 강화 고려궁지(江華高麗宮址)

강화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굴이 있던 장소입니다. 몽골의 침략시 무신정권은 강화로 수도를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였습니다. 몽고와의 항쟁기간인 39년 동안 이 곳을 궁궐로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는 국왕의 행궁이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행궁을 짓지 못하고 단지 강화유수부 동헌과 부속 건물만이 이 곳에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방 민족과의 항쟁에서 강화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방상의 요지였기 때문에 중국의 북방 민족이 세운 정권인 원나라와 청나라는 한반도 침략 이후 강화도의 군사/행정 시설들을 모두 파괴하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도 말만 지방 관청이지 건물의 규모나 형태로는 서울..

힘이 살아 있는 안중근 의사 글씨,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대표적인 대학박물관이자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관련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동국대박물관에서 8월의 문화재로 선정해서 전시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친필 글씨인 보물 569-2호로 지정된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를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라는 이 말은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많이 들었던 말 일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암살하고 여순감옥에 있는 동안에 여러점의 붓글씨를 남겼는데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라고 하며, 일본인 간수에게 남겨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은 군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군의 표어 중 하나이다. 안중근 의..

합천 해인사 - 팔만대장경, 우리의 기록문화 유산

우리의 위대한 기록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합천해인사입니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게 지어진 건물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팔만대장경'이라고 쓰여진 큼지막한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이 건물안 쪽에 보입니다. 어뜻 보기에도 귀한 곳임을 느끼게 합니다. 관람객들이 팔만대장경을 밖에서 보고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잘 만들어진 건물로 보입니다. ☞ 고려대장경판 고려대장경판은 그 경판의 갯수가 8만1258개나 된답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으로 흔히 불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럼 ‘경’이란 뭘까요? 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적어 놓은 글을 말하며 법문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면 살생하지 말라, 욕심내지 말라 등의 교훈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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