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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214

담양 척서정, 마을입구에 마을 회의를 위해 세워진 정자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정자인 척서정이다. 영천이씨 집성촌인 대치리 마을 입구에 재실로 보이는 건물과 정자나무와 함께 마을 광장 역할을 하는 장소에 세워져 있는 특이한 형태의 정자이다. 정자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사방이 뚫려 있고 넓은 대청마루가 있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인 17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며, 옛 문헌에는 이 마을에 '강호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척서정'이라는 이름은 후대에 바뀐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자내부에 척서정 현판과 시를 적은 액자가 여러개 걸려 있다. 보통 정자는 경치좋은 강변이나 전망이 좋은 언덕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이 정자는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마도 집성촌이었던 이 마을에서 마..

고택_정원 2013.03.07

장성 이진환 가옥과 백계리마을

장성군 장성읍 백계리에 남아 있는 전통주택인 이진환 가옥 사랑채이다. 이 가옥은 초가지붕을 얹은 주택으로 19세기 말부터 이집에서 사랑채로 사용해 왔던 건물이다. 원래 사당에 딸린 재실용 강당 건물으로 사용하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앞면 5칸의 꽤 큰 규모의 건물로 '-'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오른쪽편에 안채였던 것으로 보이는 주택이 있는데, 현대식 기와를 얹기는 했지만 원래의 안채의 모습과 구조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 가옥이 소재한 장성 백계리 마을은 내장산과 입암산에서 발원하여 장선군을 지나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황룡강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장성댐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 이 가옥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고택이 ..

고택_정원 2013.03.03

서울 인사동길, 대표적인 서울의 전통문화 거리

서울 인사동길은 종로 탑골공원에서 시작하여 북촌입구에 해당하는 안국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로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이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개천을 따라서 있었던 길이라고 하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골동품 상가가 형성되면서 한국적인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거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상업지구인 육의전이 있던 종로 북쪽편과 창덕궁 남쪽에 형성되어 있던 관아 서쪽편에 인접하고 있는 주택가 였던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청계천 남쪽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반면에, 인사동 일대는 조선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핵심 주거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골통품 상가는 6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다가 70년대 이후에는 골통품 상가들은 ..

고택_정원 2013.02.28

장성 요월정 원림, 황룡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정자와 배롱나무 숲

장성군 황룡면 황룡리에 위치한 요월정는 이 지역에 위치한 많은 정자들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세워졌으며 유서 깊은 곳이다. 장성군 북쪽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인 황룡강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동산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정자는 조선중기 명종대 공조좌랑을 역임한 김경우가 세운 정자로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인 김인후, 기대승 등과 함께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유서깊은 장소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통적인 정자의 형태를 하고 있다. 2개의 방과 마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곳에서 묵으면서 학문을 논하거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요즘의 별장과 같은 기능을 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장성군은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인 필암서원이 위치하고..

고택_정원 2013.02.26

서울 경운동 민병옥 가옥과 민영휘 일가 저택이 있었던 경인미술관

서울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 앞에는 '민가다헌'이라고 적힌 한옥이 남아 있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경운동 민병옥 가옥'이란 이름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30년대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H형 평면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한 건물로 안방을 비롯한 주요한 방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채광과 전망을 좋게하였다. 전통한옥과는 달리 대청마루는 작게 하고, 별도의 방에 응접실을 설치한 개량한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방들 앞 툇마루에는 유리창을 설치하여 보온과 채광을 고려하였으며, 현관과 출입문을 뒷편에 배치해 놓고 있다. 이 가옥을 설계한 박길용은 일제강점기에 화신백화점 등 많은 건축물들을 설계했던 건축가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개량한옥으로서 의미를 ..

고택_정원 2013.02.20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부용대 기슭에 자리잡은 정자

하회마을 서쪽편 낙동강의 빼어난 12절경 중 하나인 부용대 아래에는 서애 류성룡이 서당으로 지은 옥연정사와 겸암 류운룡을 모신 화천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화천서원은 정조대에 지은 서원으로 원래 이곳은 옥연정사가 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옥연정사는 류성룡이 35세 때 마을에 작은 정자인 원지정사를 지은 이후에 그곳이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편안하게 독서를 하면서 즐길 여유를 찾지 못하여 마을 건너편 부용대 아래 외진 곳에 터를 마련하여 짓기 시작한 곳이다. 당시는 류성룡의 경제력이 부족하여 쉽지 짓지 못하다가 승려 탄흥의 도움을 받아서 10여년에 걸쳐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후 큰 홍수로 하회마을이 수해를 입어 이 곳에 기거하면서 임진왜란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징비록을 완성한..

고택_정원 2012.11.16

안동 하회마을, 빈연정사와 낙동강변 소나무숲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고 동쪽으로는 산줄기가 낙동강과 만나는 화산이, 서쪽편으로는 낙동강의 절경인 부용대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봉화 닭실마을, 안동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이 마을은 풍산류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고위관리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여 마을에는 종택인 양진당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양반가옥들이 남아 있다. 하회마을에는 조선시대 부유한 양반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오래된 고택과 함께 선비들의 삶을 보여주는 서원과 정자 등이 여럿 남아 있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

고택_정원 2012.11.13

안동 하회마을, 작천고택과 주변 한옥들

하회마을 서쪽끝 낙동강 물길이 서쪽으로 흐르다 굽이쳐 다시 동쪽으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마을 종갓집인 양진당과 충효당을 지나서 골목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보이는 집이 작천고택이다. '-'자형 안채와 초가로 지은 작은 별채로 구성된 작천고택은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종갓집과 가까운 것으로 볼 때 마을에서도 권위가 있었던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천고택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서 걸으면, 하회마을에서 최근 유명인사로 잘 알려진 연예인 류시원이 살았던 고택인 담연재가 있다. 아직 일반인에 개방되지 않았지만 이 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여왕도 들렀던 집으로 꽤 유명세가 있는 저택이다. 담연재 주변으로도 여러채의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있는데,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안동지역의 전통한옥 형태인 'ㅁ'자형 주택구조에서..

고택_정원 2012.11.12

서울 성북동 성밖마을과 성북동길 걷기

서울 성북동은 조선시대 창덕궁을 중심으로 한 동궐영역 뒷편 한양도성 성밖에 형성된 마을로 북한산 자락과 북악산, 한양도성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대표적인 성밖마을로 조선시대에는 도성 수비를 담당했던 여영청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지금도 서울을 지키는 군인들이 북악산자락에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소속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고양군 성북리로 되었다가 다시 성북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마을이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의 성북동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이 확장되고, 서울 성곽이 허물어지면서 성벽 너머에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북동은 서울 도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지은 도시형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또한 당시로서는 외곽지역에 ..

고택_정원 2012.11.11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보물414호), 마을을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종택

안동 하회 충효당은 마을 종택인 양진당(보물 306호)과 함께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으로 보물 414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집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함께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서애 류성룡이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지었던 집터에 후손들이 세운 작은 종택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작은 초가집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손자인 류원지가 사랑채와 안채를 짓고, 증손자인 류의하가 17세기에 크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효당은 전체적으로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안채는 북쪽에, 사랑채는 남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12칸의 긴 행랑채를 두고 있고, 사랑채 뒷쪽에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서애 류성룡의 유품을 전시하는 최근에 지은 영모각이..

고택_정원 2012.11.11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보물306호), 마을 대종택으로 겸암 류운룡이 살던 집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의 대종택인 양진당이다. 이 집은 풍산에 살던 류종혜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류성룡의 형으로 대학자였던 겸암 류운룡이 살던 집이다. 조선중기 안동 지역 양반가옥을 대표하는 집으로 보물 30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양진당 사랑채에는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입암(立巖)은 류운룡과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이며, 양진당은 류운룡의 6대손인 류영의 어릴적 이름이라고 한다. 양진당은 대표적인 권문세가였던 풍산류씨 집성촌 하회마을에서도 종갓집에 해당하는 집으로 그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안채와 별채형식으로 본채 오른편에 사랑채가 붙어 있는 구조이다. 별채의 ..

고택_정원 2012.11.09

서울 혜화동 장면가옥,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1930년대 개량한옥인 제2공화국 장면 총리의 사저

젊음의 거리 대학로와 성균관이 있는 명륜동 주택가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개량 한옥인 장면가옥이다. 이 가옥은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 내각 수장인 국무총리를 역임한 장면선생이 살았던 가옥으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지은 주택으로 기존 한옥건물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욕실과 화장실을 실내에 배치하고 전통한옥의 대청마루가 거실 형태로 바뀌는 등 양옥의 형식이 반영된 1930년대 개량한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가옥이다. 가옥은 살림집이라 할 수 있는 안채와 양옥으로 지어진 손님을 맞는 공간인 사랑채, 수행원과 경호원이 머무는 2동의 작은 부속채로 이루어졌다. 대문입구에 골목에서 안채를 볼 수 없도록 담장을 설치하고, 별도의 출입문으로 사랑채를 출입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점에서 양옥이지만 기존 한옥의 기능적 특징..

고택_정원 2012.11.08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화경당)과 주변 한옥,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저택

하회마을 북촌댁은 양진당이나 충효당처럼 마을에서 종갓집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저택으로 원래 이름은 화경당이나 마을 북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가장 큰 규모라서 북촌댁이라 부른다. 대지 1,700여평에 72칸에 이르는 대저택인 북촌댁은 정조대인 1797년에 류사춘이 사랑채,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 철종대에 증손이 류도성이 안채, 큰 사랑채,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마을 중심에 있는 삼신당 느티나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 하회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부용대가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마을에서 북쪽택부터 안쪽 충효당까지는 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이 분가한 충효당을 비롯하여 하회마을에서 큰 벼슬을 하..

고택_정원 2012.11.06

순천 낙안읍성, 동문 주변의 민가들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 소재지에 쌓은 읍성으로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전국의 여러 읍성들 중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교통과 행정 중심지였던 낙안군이 일제강점기 경전선 철도개설로 철도역이 개설된 벌교읍으로 그 기능이 급격하게 이전됨으로서 원래 있었던 읍성마을 근대화 과정에 소외되어 옛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읍성내에는 약 90여호의 가옥에 실제 주민들이 옛 초가집들을 보존하면서 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낙안읍성 주변 도로가 동문 주변으로 개설되어 지금은 읍성의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 주변은 낙안읍성을 찾는 사람들이 처음 보게 되는 시골마을의 모습일 것이다. 읍성 동문 앞에 서면 오른쪽으로 식당 등으로..

고택_정원 2012.11.05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주일재)과 가온당,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양반 가옥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낙동강이 'S'자형으로 굽이쳐 흐르는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류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마을로 후대에 고관을 많이 배출하여 경제적으로 부를 많이 축적한 양반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의 형으로 대학자였던 류운룡의 종택이자 종가집인 양진당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크고 작은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대체로 후대로 가면서 분가한 저택일수록 양진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외마을 종가집인 양진당에서 분가한 대표적인 저택인 서애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 뒷편으로는 그의 증손인 류인하가 분가한 집인 양오당이 있다. 주일재라고도 불리는 이 가옥은 후대에 분..

고택_정원 2012.11.05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 일제강점기 도시한옥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살던 집

서울 성북동 선잠단 맞은편 주택가에 남아 있는 최순우 옛집은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가 살던 집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서울에서 크게 유행한 도시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 집으로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사랑방이 앞면 4칸의 본채와 대청마루와 방이 있는 3칸짜리 날개채로 되어 있고, 바깥채는 대문과 문간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집은 2002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성금으로 매입하여 운영관리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로 일제강점기 한옥을 대표하는 의미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혜곡 최순우(1916~1984)는 개성시립박물관에 입사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하는 등 평생을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

고택_정원 2012.11.02

안동 하회마을, 하동고택과 염행당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조선초기 풍산류씨가 정착한 이후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문신들과 학자들을 배출한 전통있는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 4대길지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하회마을은 옛모습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이지만 실제로는 일반 농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정부 고위관료들을 많이 배출하고 많은 농지와 노비를 소유했던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계층을 대표하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충효당과 양진당을 비롯하여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북촌댁 등 풍산류씨 일가에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여 지은 크고 작은 기와집들이 많이 남아 있고, 초가집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상당부분은 규모가 크고..

고택_정원 2012.11.02

서울 성북동 이태준가옥과 이종석 별장,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별장형식 한옥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밖에 있는 마을로 북향을 하고 있는 성밖마을과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북악산자락 아래 남향을 하고 있는 주택가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이 크지 않고 도성수비를 하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기도 했다. 성북동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성 바깥쪽 언덕에 서민 주택들이 들어섰던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서는 별장 형식의 한옥들도 있다. 지금도 성북동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한옥들이 몇채 남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심우장, 작가 이태준이 살았던 가옥, 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순우 옛집, 일제강점기 부호였던 이종석 별장 등이 있다. 성북동 골짝기에서 중간쯤에 위치한 상허 이태준 가옥은 지금은 복개해서 보이지 않지만, 성북동 개울이 내..

고택_정원 2012.11.01

서울 성북동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성밖마을 소박한 한옥

시인 김광섭의 시 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서울 성북동 서울성곽 바깥 북향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심우장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자 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에 살았던 집이다. 말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마련해준 조그마한 거처로 서민들이 거주하던 성북동 성밖마을 언덕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저택이다. 총독부를 등지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 북향집으로 앞면 5칸짜리 소박한 한옥이다. 원래 선방을 지으려고 마련해 두었던 땅에 지은 집으로 마당은 넓은 편이며, 마당에서 성북동 골짜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광섭의 시 에 등장하는 채석장이 있는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풍경이다. 심우장은 불교에서 소를 찾는 동자가 산속에 헤메는 모습에서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비유..

고택_정원 2012.10.31

순천 낙안읍성, 남문 주변 민가들

낙안읍성은 낙안군 관아가 소재하고 있던 읍성으로 유일하게 읍성내 거주하던 주민들이 살던 민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낙안읍성을 직사각형 형태로 성벽을 쌓고 동문에서 서문 사이의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관아건무들이 들어서 있고, 남쪽으로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현재 읍성내 남아 있는 90여호의 가옥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옥들은 대부분 남문 주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읍성 서쪽편 동산에서 성벽을 따라서 걸어내려오다 보면 골목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민가들이 마당이나 가옥형태를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이런 가옥들은 성벽 바깥쪽에도 여러 동 남아 있다. 남문을 들어서면 성문 주위를 비롯하여 관아까지 연결된 길에는 점포나 주막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가옥들을 볼 수 있고, 대로에서 안쪽으로..

고택_정원 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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