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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144

달성 현풍현 사직단, 사직에 제사를 올리던 공간

사직단은 사직에 제사를 드리는 공간으로 사단과 직단의 두단이 있는데, 토지의 신을 모시는 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을 모시는 직단은 서쪽에 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으며, 신라 선덕왕 4년(783)에 사직단을 세웠고, 조선시대에는 태조 4년(1395)에 사직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한양의 사직단은 경복궁 서쪽편에 세워졌으며, 북경에는 자금성 서쪽편 지금의 중산공원에 세워져 있다. 사직단은 전국의 주.부.군.현에 설치되었는데, 도심에 자리하고 있었고 왕조가 멸망해서 그런지 일제강점기에 전국에 있는 사직단은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남원과 산청 단성의 사직단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풍 사직단은 1450년에 현풍 현감이 고을 백성들과 함께 토신과 곡신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만든 제..

궁궐_종묘 2011.08.1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궁궐 출입문인 북문 신무문, 서문 영추문, 동문 건춘문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출입하는 문으로는 정문격인 남쪽 광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북쪽에는 신무문이 있다. 현재는 광화문과 신무문을 통해서 경복궁을 출입할 수 있고, 동.서쪽의 건춘문과 영추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 중 신무문은 청와대 정문과 연결되는 문으로 최근에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경복궁 전체를 한번 둘러보고 건청궁과 집옥재, 향원정 일대에서는 최근에 개방된 신무문을 통해서 잠깐 바깥으로 나가서 청와대 정문과 신무문 바깥 모습을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 출입문 중 정문인 광화문은 삼문의 형식에 2층 문루를 올려 놓고 있으며, 나머지 동.서.북쪽 출입문은 단문의 형식에 1층 문루를 올려놓고 있는 구조이다. 북경 자금성과 비교해보면 자금성 정문은 5개의 출입문이..

궁궐_종묘 2010.11.01

[경복궁, 조선의 법궁] 공목재, 영사재 등 태원전 부속 전각들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건물이지만, 원래 목적은 조선 왕실에서 발생하는 국상을 위해서 세워졌다고 봐도 무방한 건물이다. 조선시대 국장이라는 것이 대상은 왕과 왕비라서 많지 않은 것 같지만, 국장 기관이 3년상에 이르기때문에 기존 궁궐전각을 이용할 경우 번거로운 점이 많고 국장기간동안 운영되는 관청들이 있었기때문에 많은 업무공간이 필요해서 경복궁 중건시에는 이 곳에 태원전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로 해서 조선시대에는 경복궁과는 별도로 창덕궁을 두고 있었으며, 경복궁이 불타버린 조선후기에는 창덕궁 옆에 있던 창경궁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승하한 경우 국장의 사유가 발생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국장을 준비하는 임시관청인 도감을 설치하는 것이다...

궁궐_종묘 2010.10.31

[경복궁, 조선의 법궁] 태원전,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션던 건물

경복궁 제일 뒷편으로 걸어들어가면 새로이 단장한 일군의 건물군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던 태원전이다. 구한말 경복궁을 중건할 때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태원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 곳 태원전은 평상시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국장이 있을때 빈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보통 국왕이 승하했을때 시신을 모신 관은 빈전에 안치하면서 국장절차가 시작되며 왕릉을 조성하고 발인할 때까지는 5개월이 소요된다. 그 이후에는 신주를 삼년상 기간동안에 혼전에서 모시는데, 그 장소가 경복궁에선는 태안전이 그 역할을 한다. 실제로 고종이 이 태안전을 세운 이후에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한 기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고, 일제강점기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건물인 관..

궁궐_종묘 2010.10.30

[경복궁, 조선의 법궁] 함화당과 집경당, 후궁들이 거처하던 영역

경복궁 교태전과 향원정 사이에는 후궁들이 거처하던 영역으로 홍복전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최근에 복원한 함화당과 집경당 만이 남아 있다. 함하당과 집경당은 같은 울타리안에 붙어 있는 건물로 후궁 영역에 있지만 그 용도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건물을 만들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동궐 창경궁에 많은 전각들이 있어서 이 곳으로 굳이 옮길 필요도 없었기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함화당과 집경당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누마루와 침전, 그리고 여러 행랑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후궁 중 지위가 높은 사람이 거처할 용도로 만든 것으로 보이며, 중궁전인 교태전과는 독립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몇년전에 경복궁을 찾았을 ..

궁궐_종묘 2010.09.12

[경복궁, 조선의 법궁] 후원 연못 향원지와 향원정 (2010년 여름)

경복궁 후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옛 경복궁의 배치나 법도에 따라서 지은 것은 아니고 순전히 고종의 취향에 따라서 건청궁, 집옥재 같은 궁궐 건물을 짓고, 연못인 향원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엄숙하고 위압적인 면이 보이는 경복궁의 답답함과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을 벗어나고 하는 고종의 바램이 보이는 듯한 공간이다. 옛 경복궁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공식적인 연회공간인 경회루가 있는 연지와는 별도로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향원지는 경복궁 후원에 조성한 인공 연못으로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거기에 육각형의 정자인 향원정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 곳 향원정을 조성한 것은 정조가 부용지에 부용정과 서재격인 주합루를 조성한 예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향원정 뒷편에는 고종 개인의 서재인 협길당과..

궁궐_종묘 2010.09.11

[경복궁, 조선의 법궁] 건청궁 곤녕합과 옥호루,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

경복궁 건청궁은 고종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경복궁 후원에 지은 사대부 저택 형태로 지어진 궁궐이다. 경복궁 후원에 지어진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연못인 향원지와 함께 건청궁은 번잡한 경복궁을 떠나서 고종이 경복궁 시절에 주로 머물기를 좋았했던 장소이다. 건청궁의 사대부 저택처럼 만들어진 건물로 궁궐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상을 두지 않고 있으며, 건물 규모도 그렇게 크게 만들지는 않았다. 고종이 어린시절을 민간에서 보내다 궁궐로 들어오게 되어서 그런지 궁궐생활에 꽤나 답답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건청궁에서의 고종의 생활 또한 그렇게 편안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이 곳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을 겪게 된 장소이기도 하다. 건청궁 내전은 일반 민간 저택의 안..

궁궐_종묘 2010.09.11

[경복궁, 조선의 법궁] 건청궁 장안당, 고종이 머물던 공간

경복궁 북쪽편 향원정이 있는 곳에 위치한 건청궁은 경복궁 중건 후 새로 지어진 궁궐 건물이다. 국왕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일반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건물로 국왕이 머무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서재인 관문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곤녕궁 앞에는 연못인 향원지를 파고 서쪽편에는 서재인 협길당을 지어서 하나의 별궁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다. 건청궁은 이런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구한말 정치적 혼란기의 중심이 되는 장소였고, 이 곳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된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다. 건청궁이라는 이름은 북경 자금성에 있는 황제의 처소인 건청궁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이며, 당시 고종의 생각에는 중국은 상당히 발전된 나라라고 생각했던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고종..

궁궐_종묘 2010.09.10

[경복궁, 조선의 법궁]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경복궁 후원격인 향원정 연못 북쪽편에는 중국풍의 건물은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들은 전통적인 궁궐 건물 배치에 따라서 지은 건물은 아니고, 고종이 경복궁 중건한지 20여년이 지난 1888년에 지은 건물이다. 전통적인 조선의 궁궐건물 양식은 아니고, 구한말에 중국풍으로 개조된 창덕궁의 국왕 침전인 희정당같은 건물처럼 창덕궁에 있었던 건물이라고 하며, 1891년에 경복궁 후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 용도로 지은 벽돌건물로 가장 중국풍에 가까운 건물로 넓은 마루가 있는 건물로 외국사신을 접대하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팔우정은 팔각형 지붕을 가진 정자로 전통적인 한국의 정자는 창호를 두지 않으며, 정자 마루에 앉아서 바깥 경치를 감상하면서 연회를 하는 것이 보통이..

궁궐_종묘 2010.09.09

서울 창덕궁 후원, 비원(秘苑)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세에 맞게 지어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한때는 '비원(秘苑)'이라고 불리웠던 창덕궁 후원은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조경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창덕궁과 후원 타 궁궐과는 달리 출입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창경궁 후원처럼 느껴지는 춘당지와 식물원 부근이 합쳐져서 하나의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후원의 가장 안쪽 옥류천 부근은 성균관 대학과 담을 경계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균관과 국왕 사이를 가깝게 할려는 건물들의 배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후원에서 남쪽편을 보면 종묘가 있고, 동쪽편에는 대비가 거쳐하던 창경궁, 그리고 그..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후원이 아름다운 유네스코문화유산

창덕궁은 경복궁과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궁궐로서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동안 국왕이 머물렀던 궁궐이다. 경복궁은 동양의 궁궐 예제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지어진 반면, 창덕궁은 자연 지세에 맞게 지어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궁궐입니다. 또한 창덕궁을 빛나게 하는 것은 '비원'이라고 불리는 창덕궁 후원이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조경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창덕궁과 후원 타 궁궐과는 달리 출입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 창덕궁 탐방 1. 돈화문, 가장오래된 궁궐 정문 2. 금천교, 가장 오래된 돌다리 3. 인정문, 숙장문, 진선문, 행랑 4. 인정전 앞 마당, 품계석 5. 인정전, 창덕궁의 중심 6. 선정전, 국왕이 집무를..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희정당, 국왕의 침전

희정당은 원래는 국왕의 침전이었던 장소였으나, 구한말 이후 일제 시대에 서양식으로 개조되 조선의 궁궐이 주는 본래의 멋은 없으졌으나 구한말 이후 서양식으로 궁궐이 개조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라서 건축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구한말에 개조해서 그런지 중국 북경 건물의 양식을 많이 차용한 듯 하다. 희정당 입구입. 구한말의 서양식 건축양식이 추가되어 약간은 중국식 건물과 비슷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정당 본래의 건물. 보통 조선의 궁궐 건축물에는 이런 형태로 폐쇄된 마당은 거의 없고 서양식으로 개조하면서 이런 형태의 건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희정당의 측면과 뒷편에서 본 외관. 희정전 내부 응접실에는 서양식 가구가 놓여져 있다. 내부의 양쪽 벽에는 해강 김규진이 그린 , 가 걸려 ..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대조전, 왕비의 침전

대조전은 창덕궁 내전의 으뜸 전각으로 왕비의 침전으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지었다고 한다. 내부는 일부 서양식으로 꾸며졌고 건물 전체적으로 구한말 이후의 생활상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창덕궁에서 국왕 들이 많이 거쳐 했기 때문에 구한말 이후 많은 개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조전 출입문 안쪽으로 보이는 대조전 대조전 편액 왕비의 침실인 대조전입니다. 대부분 왕비가 거처하는 장소는 국왕이 거처하는 장소의 뒷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복궁 건물을 뜯어다가 일제시대에 새로 만든 건물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왕비가 거처했던 건물인데, TV사극에 나오는 궁궐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대조전 내부는 거실처럼 꾸며져 있으며 바닥에는 쪽널마루를 깔았으며 중국풍의 의자가 놓여 ..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경훈각, 대조전 뒷편 후원

경훈각은 대조전 뒷편에 있는 대조전의 부속건물 처럼 보이는 건물로 경훈각에서는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있으며 굴뚝은 건물과 조금 떨어져서 구성된 화계에 배치하였다. 굴뚝은 벽돌로 쌓아 지붕을 열리고 굴뚝 각 면에는 학, 사슴, 불가사리, 봉황 등을 부조한 단아한 방형 전이 끼워져 있다. 경훈각 뒷편으로는 아담하게 정원을 꾸며 놓고 있다. 선정전 뒷편 후원 마당. 가을이라 꽃들이 시들어 있습니다만 운치있는 정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덕궁 전각 중 제일 뒷편에 있는 경훈각 뒷마당. 좁은 공간이지만 계단식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놓고 있다. 경훈각 뒷편 굴뚝. 사슴과 백로가 노는 모습의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창덕궁에는 곳곳에 수석을 수집해서 장식해 놓고 있다. 창덕궁 대조전 뒷편에 위치한 경훈각. 또다른 부..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후원] 부용지 주변 영화당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부용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영화당은 부용지 주변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건물이다. 건물은 동쪽편 창경궁을 향하고 있으며 뒷편으로 부용지를 감상할 수 있으며 국왕의 연회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부용지 부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건물인 영화당. 영조대왕이 썼다는 영화당 편액 영화당 건물의 복도 마루 영화당 앞에 위치한 해시계 후원을 들어오는 길에서 본 영화당 측면 부용정에서 바라본 영화당 주합루 앞에서 바라본 영화당 영화당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 건물은 숙종 2년(1692)에 재건한 것이다. 왕족의 휴식공간이자 이 건물의 앞마당인 춘당대에서는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였다.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영화당은 서쪽에..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후원 - 부용지 주변 주합루, 어수문

부용지 북쪽편 언덕에는 정조대왕이 자신 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사색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층 누각에서는 문신들과 대화를 하거나 저술을 하고 일층에는 규장각이라 하여 서고로 사용햇다 한다. 주합루에서 내려다본 부용지의 풍경이 뛰어나고 하나 지금은 출입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부용지 입구에서 바라본 어수문과 주합루 영화당에서 바라본 어수문, 주합루 주합루 정면에 있는 부영정에서 바라본 모습 입구인 어수문에서 올려다 본 주합루 주합루의 입구인 어수문 주합루의 울타리인 취병 정조가 즉위하던 해에 주합루가 완성됐다. 실학의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에 정조는 등극하여 유능한 문신들과 더불어 문치에 노력한다. 임금 자신이 박식하여 많은 저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서책들을 많이 출판하였다. 주합..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후원] 애련지 주변, 의두합

애련지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건물은 의두합이다. 이 건물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사색을 하며 책을 즐겨 읽었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일반 민간 한옥에 비해서 아주 작고 서민들이 사는 초가 주택과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외부 장식이 거의 없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의두합은 궁궐내에 있는 건물로는 아주 작고 아담한 건물입니다. 북쪽에 있는 애련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서쪽편에 나란히 서 있는 작은 건물 의두합은 단촐하게 작은 건물 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두합의 출입문인 금마문 애련지 옆의 돌로 된 문은 불로문(不老門)이다. '불로'란 늙지 않는다는 뜻으로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두합의 출입문인 금마문 맞은 편에는 창경궁과 연결된 영춘문이 있다. 창경궁 후원의 아름다운 길. 부용..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후원] 연경당 안채

연경당 안채는 사랑채와 담으로 분리되어 있고 많은 행랑들이 주위에 있으며, 일반 집들과는 달리 안채내에 부엌이 없고 별도의 부엌 기능을 하는 건물이 뒷편에 있다. 일반 사대부 집처럼 꾸며졌으며 건물 규모는 크지 않아 보이나 전체적으로 은근히 화려하게 꾸며졌다. 연경당 안채건. 건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은근히 화려한 사대부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안채를 출입하는 정문. 주위의 많은 방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안채의 서쪽편에 늘어선 행랑들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해 주는 문 사랑채 본 건물과 안채 본 건물 사이를 연결해 주는 작은 쪽문 안채 뒷편에 있는 작은 건물로 안채에 없는 부엌으로 생각된다. 안채 너머로 보이는 사랑채 안채에서 내려다 본 마당과 출입문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후원] 연경당 사랑채, 선향재

연경당은 창덕궁 안에 지은 유일한 민가형식의 건물로, 사랑채의 당호가 연경당이다. 사랑채엔 안채가 이어져 있고 사방에 행각들이 연결되어 있다. 규모는 궁궐 전각으로서는 크지는 않지만 사대부집으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 연경당의 본채인 사랑채. 이 사랑채의 당호가 연경당으로 일반 사대부 집의 형태를 빌어서 만들었다. 가까이서 본 사랑채 사랑채 동쪽에는 서재로 쓰인 선향재. 중국풍의 벽돌 건물로 서향을 하고 있는데, 특히 정면에 덧단 차양과 측면의 벽체가 눈길을 끈다. 사랑채 입구인 솟을 대문 주위에 있는 행랑채. 행랑채 내부, 조그마한 방. 사랑채 입구인 솟을 대문. 사랑채 입구의 솟을 대문 높이가 안채에서 들어오는 솟을대문이 보다고 높다는 것은 남성우위의 관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사랑채 마당에서 ..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후원] 연경당 입구, 행랑채

연경당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의 덕을 칭송하기 위한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 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당시의 건물이 아니고 고종때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한다. 이 집은 대궐에 있으면서도 단청이 되어 있지 않고, 사랑채와 안채로 남녀의 공간이 구분되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집을 연상시킨다. 그렇더라도 입구에는 실개천이 있고 다리를 건너서 들어갈 수 있는 정식 궁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낙선재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연경당으로 장락문 앞에는 실개울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는데 영제교, 금천교, 옥천교에 못지 않은 개념을 지니고 있다. 연경당의 정문인 장락문 연경당 행랑채에서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 연경당은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어 있고 별도의 출입문을 통..

궁궐_종묘 20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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