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불교건축(불전_요사) 184

강화 정수사법당 (보물 161호), 문살을 아름답게 조각해 놓은 불전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마니산 남쪽편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떄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세종 8년에 함허대사가 절이름을 정수사로 바뀌었다. 사찰의 규모가 큰 편은 아니며, 보물 161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삼성각,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동의 작은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는 작은 암자같은 사찰이다. 정수사법당이라는 이름으로 보물 16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언제처음 지은 것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숙종15년(1689)에 수리하면서 적은 기록에 따르면 세종 5년(1423)에 중수한 것이라고 한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이었던 것을 후대에 앞쪽에 1칸정도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는 특이한 건물구조를 하고 있다. 대웅보전 앞쪽 중앙 창호에는 꽃병에 꽃을 꽂은 그..

부산 범어사,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와 범종루

부산 금정산에 위치한 범어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동남해안에 출몰하던 왜(倭)를 물리치고하는 바램으로 세운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던 것을 광해군 이래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중건하기 시작하여 숙종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상단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불전들이, 중단에는 보제루를, 하단에는 일주문 등을 배치하여 전체적을 3단을 이루는 화엄종 사찰 건물 배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범어사는 화엄종의 성격을 갖고 있는 사찰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선종의 성격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수행을 하는 승려들의 공간인 많은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주로 사찰 좌우에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이 곳을 찾는 신도들이나 관람객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범어..

부산 범어사, 미륵전을 비롯한 많은 불전들

부산 금정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는 신라시대에 왜(倭)를 물리치고자 하는 바램으로 세운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찰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대웅전 앞 경내에 자리잡고 있는 삼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재는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이는 범어사가 임진왜란으로 사찰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어서 광해군 이후 크게 중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후기인 숙종때 세워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에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지장전, 팔상전, 나한전이 나란히 있고, 앞쪽 마당에 미륵전과 비로전이 뒷편에 약사전을 두고 있다. 범어사가 비록 화엄십찰 중 하나기는 하지만, 사찰의 규모에 비해서 많은 불전을 두고 있으..

부산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 한 건물에 3개의 불전이 있는 특이한 건축물

의상대사가 전국 각지에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인 범어사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부 해안에서 가장 큰 사찰로 왜(倭)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는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다. 범어사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미륵전, 비로전, 지장전, 관음전 등 많은 불전을 두고 있으며, 그 중 지장전 왼편에 위치한 팔상.독성.나한전은 한 건물에 3개의 불전을 두고 있는 아주 독특한 건물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이다. 18세기초에 처음 세워진 이 건물은 원래 팔상전과 나한전이 독립된 건물이었고 중앙에 출입문이 천태문이 있었다고 한다. 앞면 7칸, 옆면 3칸에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이 나란히 있는 이 건물은 1905년에 중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양쪽의 팔상전과 나한전은 옛 건축물이 그대로 ..

부산 범어사 대웅전(보물 434호)

부산 금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 주불전인 보물 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이다. 조선후기인 1713년(숙종 39)에 세워진 범어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의 삼존을 모시고 있는 불전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이 불전은 규모는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포양식의 공포와 겹처마를 하고 있는 약간 무거워보이는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다. 기둥 위의 장식과 처마의 구조가 섬세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섬세한 문살을 두고 있다. 부산 범어사는 신라 의상대상가 창건했다고 하는 화엄 10찰 중 하나로 남해안 지방을 대표하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범어사의 창건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있는 호국사찰의 성격이 강한 곳..

부산 범어사 조계문(보물 1461호), 네개의 돌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 독특한 모양의 일주문

부산의 명산 금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남해안을 괴롭히던 왜(倭)를 물리치고 했던 소망이 담긴 호국사찰의 성격을 지닌 사찰이다. 현재는 조계종 14교구 본사로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이 사찰은 조선시대까지 왜구를 막는 비보사찰로 중요한 역할이 있었으며,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던 것을 광해군 때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범어사 조계문은 사찰의 첫번째 출입문인 일주문으로는 드물게 보물 (1461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 문은 범어사가 중창되기 시작했을 때인 1614년(광해군 6)에 처음 건립되기는 했지만 여러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781년(정조 5)이라고 한다. 보통 사찰의 일주문은 본..

고성 건봉사 불이문, 들어가는 길

건봉사는 조선시대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신라 법흥왕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실질적으로 고려말엽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개명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건봉사를 원찰로 삼고,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일본이 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의 사리를 돌려 받아서 이 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건봉사는 동해안 지역을 관장하는 큰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전각대부분이 불타버리고 불이문만 남았다고 한다. 건봉사 불이문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사찰 출입문으로 건봉사는 1920년에 건립된 것으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찰의 불이문이나 천왕문과는 달리 산문이 일주문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돌기둥에 사찰을 수호하는 의미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어서 사..

공주 마곡사, 요사채인 심검당과 고방 (템플스테이 하는 곳)

차령산맥 남쪽 태화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마곡사는 640년 자장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졌으며, 실제로 마곡사의 역사는 고려중기 불교 결사운동을 이끌고 오늘날 조계종을 만든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력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마곡사의 성격은 선종계열로 수행을 중시하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승보사찰이라는 순천 송광사와 비슷한 느낌이다. 마곡사는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답게, 주변에 수행을 할 수 있는 많은 부속암자를 두고 있으며, 경내 한쪽편에는 불전으로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을 두고 있다. 또한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다른 사찰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는데, 사찰입구 영산전 주변으로 큰 규모의 요사채 건물인 매화당과 수선사를 두고 있다. 사찰경내에는 ..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801호), 응진전, 조사전

공주 마곡사는 주불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을 앞쪽에 두고 뒤쪽 언덕에는 석가여래불을 모신 대웅보전을 별도로 두고 있는 점이 특이다. 대웅보전은 중앙에 석가여래불을 두고,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 전형적인 사찰의 불전이다. 보통 웬만한 규모의 사찰에는 대웅보전만을 두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수행을 중요시하는 마곡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불전으로 부처의 제자들을 모신 웅진전과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을 두고 있다. 사찰을 찾는 신도들을 중시하는 사찰에서 많이 두고 있는 관음전을 경내에 두고 있지 않다. 조선중기인 효종때 세원진 마곡사 대웅보전은 외관상 2층 건물 형태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은 건물형태로 인근에 있는 부여 무량사 극락전과..

공주 마곡사 주불전인 대광보전 (802호), 조선후기에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

마곡사 경내에는 주불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과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있고, 서쪽편에 웅진전과 조사당을 보조적인 성격의 불전으로 두고 있다. 마곡사는 충남지역 조계종 산하 사찰들을 관장하는 규모가 큰 사찰로 선종 사찰의 성격이 강한 곳이기도 한다. 또한 합천 해인사와 함께 대광보전을 주불전으로 삼고 있는 많지 않은 사찰 중의 하나이다. 마곡사 대광보전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19세기초에 중건한 사찰건물로 보물 802호로 지정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 대광보전은 건축연대가 오래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외관이 장대하면서 화려하여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건물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화려한 외관이 특징인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공주 마곡사] 강당인 흥성루, 요사채인 매화당과 수선사

공주 마곡사 출입문인 해탈문과 천왕문 옆으로는 이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영산전을 중심으로 조용한 분위기의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주불전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는 경내와는 별도로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이 곳에는 건물규모가 상당히 큰 요사채인 매화당과 오래된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선사, 사찰을 찾는 사람이 잠시 앉아서 쉬거나 설법을 듣는 장소인 강당이 자리잡고 있다. 마곡사의 가람배치에서 특이한 점은 주불전이 있는 경내에도 심검당을 비롯하여 여러채의 요사채가 있는데, 사찰 바깥쪽에 별도로 요사채가 있다는 점이다. 사찰연혁등을 찾아 보면 승려들의 수행공간이라는 매화당과 수선사는 지금은 낡아서 상당히 오래된 건물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런 내용들을 참조해서..

공주 마곡사, 영산전(보물 800호)과 명부전

공주 마곡사는 경내 중간에 개천이 흐르고 있는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개천 바깥쪽으로는 영산전을 중심으로 매화당을 비롯한 승려들이 수행하는 장소로 보이는 요사채와 강당이 있고, 대광보전과 대웅전이 있는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설명에 의하면 바깥쪽은 승려들의 수행공간의 성격을 가지며 안쪽은 부처님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마곡사 해탈문 옆쪽 수행공간의 중심이되는 건물로 이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영산전이 있다. 이 불전에는 여래불상과 함께 천개의 작은 불상이 있어서 천불전이라고도 불린다. 17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 5칸의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문살이나 단청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는 않다. 이 영산전은 현판은 조선시대 세조가 이곳을 방문..

[공주 마곡사] 천왕문과 해탈문

차령산맥 남쪽 공주에 위치하고 있는 마곡사는 충남 내류지역을 관장하고 있는 큰 사찰로 수행을 중시했던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사찰체험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이른 시기에 시작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마곡사가 있는 태화산 자락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많은 암자들이 있으며, 마곡사 입구에는 개천으로 분리되어 있는 듯한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수행공간이 별도로 있다. 마곡사는 사찰규모에 걸맞게 출입문으로 해탈문과 천왕문을 두고 있다. 해탈문과 천왕문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양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의 사찰에는 계단을 오르게 되어 있는 반면에 마곡사는 평지를 지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마곡사 해탈문 내부에는 금강역사상과 보현, 문수동자상을 모시고 있는데, 이런 경우 금강문이라고 부..

부여 무량사 요사채와 김시습 초상 (보물 1479호)

부여 무량사는 부여군 서쪽편에 위치한 만수산에 있는 오래된 사찰로서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당대의 천재로 유명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 곳이 홍산현이었기때문에 홍산 무량사로 많이 알려져 있던 곳이다. 무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이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렸다고 하며, 현재의 전각들은 그 이후에 중건된 것들이라고 한다.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이라서 후대의 유생들에 의해서 우대를 받아서 그런지 무량사 중불전인 극락전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많은 사찰들의 전각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그 모습도 삼국시대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는 주불전이 크기는 하지만, 승려들이 수양을 하는 수도 도량으로서의 ..

양양 낙산사 불전과 요사채들

양양 낙산사는 동해안에 작은 산인 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삼국시대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자리에 창건한 크지 않은 사찰이다.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래로 여러 차례의 화재와 전쟁 등으로 오래된 전각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조선 세조때 세운 원통보전 앞 7층석탑만이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최근에도 2005년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불타버리고, 그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낙산사는 관음보살을 모신 사찰로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다른 불전들은 거의 두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승려들이나, 낙산사를 찾은 손님들이 머무는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관동8경 중의 하나이자, 동해안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까닭에 수행 공간의 역할보다는 기도나 명승지를 찾아나선 사람들이 쉬면서 자신을 돌..

부여 무량사 불전들

부여 무량사는 조선초 생육신 중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가 후대 유림들의 숭상을 받아서 그런지 조선후기에 사찰이 크게 융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량사에는 중심불전으로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 있으며, 남아 있는 사찰 중에서는 드물게 통일신라시대 미륵불을 모신 장륙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 주불전인 극락전 외에 동쪽편에는 명부전이 있는데, 19세기에 세워진 이 전각은 명부전 중에서는 역사가 깊은 편에 속한다. 사찰 경내 동쪽편에는 작은 건물이 영산전이 내력이 좀 있으며 보이며, 뒷쪽편에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과 토속신을 모신 삼성각을 두고 있다. 무량사는 주불전인 극락전은 규모가 큰데 비해서 이 사찰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고, 상주하는 스님들 또한 많지 않..

양양 낙산사 홍련암, 동해안 바닷가 작은 암자

양양 낙산사에서 동해안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에 의상대와 함께 자리잡고 작은 암자인 홍련암이다. 홍련암은 바닷가 절벽위에 세워진 작은 암자로 통일신라 고승인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장소에 세워진 암자로 현재의 건물은 1975년에 중건된 것이라 한다. 의상대가 바닷가 절경을 보며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정자라면,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것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암자이다. 동해안 바닷가 절벽위에 세워진 홍련암. 1975년에 중건된 건물로, 바닷가 절벽위에 세워졌지만 아슬하거나 고풍스러운 멋은 보이지 않는다. 의상대와 함께 동해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사색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바닷가 갯바위에 세워진 홍련암 홍련암 현판 추녀마루 단청에 있는 용머리 장식 주련과 문살 벽면에 그려진 ..

[부여 무량사] 천왕문, 일주문, 당간지주

무량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사찰로 옛날에는 이곳이 홍산현 관할 지역이었기때문에 홍산 무량사라고 옛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조선초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부여 무량사는 외산면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5~10분 정도 들어가면 있는데, 산중에 위치한 산사이지만 마을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입구의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마을을 알려주는 산문인 일주문을 나타나고, 일주문을 지나서 개울을 건너면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주는 길이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서 2~3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천왕문이 나타나고 천왕문 옆 숲속에 옛날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당을 걸어놓았던 당간지주가..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물 356호),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

부여 무량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조선초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 선생이 말년에 이 사찰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량사는 부여군에 속해 있는 만수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지만 실제로 부여읍에서는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보령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사찰 불전 중 삼국시대 지어진 황룡사나 미륵사에 있었던 큰 불전인 미륵불을 모신 장륙전과 비슷하게 외부에서는 2층, 내부는 단층으로 이루어진 불전이다. 남아 있는 불전 중 비슷한 형태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을 들 수 있다. 이런 사찰들은 대부분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대형사찰들로 전란과 조선시대 억..

[순천 송광사] 국제선원과 요사채 건물들

순천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행도량이다. 고려말 무신집권기에 일어난 불교개혁운동을 이끈 보조국사가 정혜결사를 하면서 선종과 교종을 통합한 조계종이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불교를 이끌고 있으며, 그 중심이 이 곳 송광사이다. 송광사의 이런 특징때문에 사찰에는 부처님을 모신 불전보다는 스님들이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인 승방과 요사채 건물들이 유달리 많이 있으며, 지금도 다른 사찰에 비해서 건물이 많아 보이지만 옛날에는 현재보다 훨씬 많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송광사 삼청교를 지나면 양쪽으로 강당과 요사채 건물들이 있는데, 이 곳은 아마도 절을 찾은 손님들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승방들은 주불전인 대웅전 뒷편에 있는 국사전을 중심으로 많은 하사당,상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