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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184

[순천 송광사] 국사전, 하사당이 있는 스님들의 수행공간

승보사찰이라고 불리는 조계산 송광사에는 대웅전과 관음전을 제외하고는 큰 불전이 없는 반면에 수행도량이라는 그 특징에 맞게 여러동의 승방과 요사채 건물들이 있다. 그 중 주불전인 대웅전 뒷편에는 국보로 지정된 국사전을 중심으로 하사당, 상사당, 응진당, 시자실, 설법전 등이 모여있다. 이 공간은 일반인들이 왕래가 사찰 중심과는 담으로 분리되어 있고, 일반인들이 출입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수행을 중시하는 송광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국보로 지정된 국사전은 고려 공민왕때 처음 지은 건물이라하며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수행공간에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까닭에 실제로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하사당은 앞면 3칸 규모의 승방으로 부엌 위에 환기구가 있는..

순천 송광사, 대웅전과 관음전

송광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지만 그 내력은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를 이 곳으로 옮김으로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송광사는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같은 여러차례의 전란과 화재를 입어서 많은 전각들이 소식되거나 파괴되고 다시 중건되는 과정을 거쳤다. 송광사의 주불전은 대웅전으로 현재의 건물 또한 세운지는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원래는 대웅전 옆에 있는 승보전 건물이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세운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상당히 규모가 크고,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한 공포와 문살 등을 자랑하고 있다. 대웅전 뒷편으로는 송광사에는 제일 잘 꾸며진 정원과 함께 있는 관음전이 있다. 관음전 또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그렇..

순천 송광사 법당들 (영산전, 약사전, 승보전, 지장전)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승보사찰이라는 불리는 조계산 송광사에는 의외로 크고 오래된 불전은 없어 보인다. 송광사 경내 중심에는 중심불전으로 대웅보전이 있고, 동쪽편에는 지장전, 약사전, 영산전이 있고, 서쪽편에 관음전이 있다. 물론 뒷쪽 수행공간에는 국사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부처님을 모시는 불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에서 부처님을 모신 불전 중 내력이 오래된 것으로 보물 302호, 303호로 지정된 영산전과 약사전이 있다. 이 불전들은 모두 17세기에 건립된 건물들로 약사전은 앞면 1칸, 영산전은 앞면 3칸의 아주 작은 불전이다. 이 불전들을 보면 송광사는 수행 중심의 사찰로 불전을 크게 하여 신도를 모으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의 수행에 적절한 공간..

순천 송광사, 강당인 사자루와 요사채인 임경당

스님이 보물이라는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는 고려말 보조국사가 선종의 중심으로 잡은 이후 사찰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수행 중심의 사찰답게 가람의 배치에는 특별한 격식을 두고 있지 않아 보인다. 단지, 자연에 순응해서 적절한 땅에 건물을 세우고 불전과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중심불전을 제외하고는 큰 불전을 두고 있지 않는 반면에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는 다수의 건물을 두고 있다. 옛날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요사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전각수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의 가람배치에서 자연 환경에 적절히 순응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강당인 사자루를 들 수 있다. 보통 사찰에서 강당은 대웅전 들어가는 길에 큰 문루 형태로 ..

순천 송광사, 경치가 아름다운 삼청교와 우화각

순천 송광사에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천왕문 앞 개울을 건너기전에 있는 홍예가 설치된 다리인 삼청교와 그 양쪽으로 있는 임경당과 사자루일 것이다. 능허교라고도 불리는 삼청교는 조선시대 돌다리 양식인 홍예를 쌓아서 만든 다리로 그 건축수법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천과 임경당, 사자루와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천교 위에는 지붕을 얹은 건물인 우화각이 있는데, 이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세운 것이라 한다. 송광사는 대지가 넓은 곳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서 통일신라시대 사찰처럼 가람배치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지는 않고, 주어진 환경에 어울릴 수 있도록 여러 전각들을 배..

순천 송광사 조계문, 절로 들어가는 일주문

송광사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첫번째 관문인 조계문이다. 보통 사찰에서는 일주문 또는 산문이라고 부르는 출입문으로 일반적인 사찰은 천왕문에서 좀 떨어진 매표소 부근에 있는데, 송광사 일주문은 사찰 경내 출입문이라 할 수 있는 천왕문을 들어가기 직전에 있다. 지금 있는 송광사 조계문은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꽤 오래된 편에 속한다. 조계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아주 작은 건물 두동이 있는데 척주각과 세월각이라고 부른다. 이 곳은 죽은이의 위패를 사찰에 모실때 그 영혼이 잠시 쉬면서 속세의 때를 씻는 곳이라고 한다. 조계문을 지나서 왼쪽편으로 개천위에 놓인 홍예 다리를 지나면 사찰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천왕문과 사찰 강당인 사자루가 있다. 송광사 첫번째 출입문이 조계문. 다른 사..

서울 봉은사 판전, 추사 김정희 쓴 현판이 남아 있는 불전

서울 봉은사는 성종과 중종의 능인 선정릉과 함께 해온 원찰로서 조선 왕실의 후원을 받아서 조선중기 이후 불교의 중심이 되었던 사찰로 명종때 보우대사가 주지로 있으면서, 승과를 실시하는 등 우리나라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사찰이다. 그래서인지 이 곳 봉은사에는 불교경전을 새겨 놓은 많은 목판을 보유하고 있으며, 봉은사 동쪽편 판전에 그 목판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판전의 현판은 조선후기 명필 추사 김정희가 그가 죽은해에 쓴 글씨라고 한다. 봉은사 김정희서 판전 현판. 글씨에서 명필의 힘이 느껴지는 현판이다. 이것은 추사 김정희가 쓴 봉은사 판전의 현판이다. 이 현판의 글씨는 노숙한 명필의 경지를 잘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낙관부분의 '칠십일과병중작'이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현판의 글씨..

서울 봉원사 북극보전(칠성각), 영산전, 영각

봉은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뒷쪽편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북극보전, 영산전, 영각이 자리하고 있다. 앞쪽에 있는 법왕루, 대웅전, 지장전은 깨끗하고 새로 지은 느낌을 주고 있는 반면에 뒷편에 있는 이 전각들은 건물의 크기도 크지 않을뿐더러, 오래된 느낌에 전통사찰 건물의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는 전각이다. 북극보전은 보통 칠성각이라고 부르는 재물과 인간의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칠성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삼성각, 산신각, 독성각과 함께 우리나라 전통신앙과 결합된 것으로 이 곳 봉은사에는 북극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각은 문정왕후 시절에 봉은사를 지금의 장소로 옮기고, 승과를 실시하는 등 불교 중흥에 큰 기여를 보우대사를 비롯하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의 영정을 모셔둔 전각이다. 봉은사에서 가장 높..

서울 봉은사, 대웅전과 지장전

서울 강남에 있는 선정릉의 원찰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는 봉은사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과 그 옆에 있는 지정전이다. 원래 있던 봉은사 사찰 전각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하며, 현재의 전각들은 대부분의 새로 중건된 것이라고 한다. 봉은사 중심불전인 대웅전은 서울에 소재한 사찰답게 앞면 5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규모가 큰 건물이고, 그 옆에는 전국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지장전이 나란히 있다. 봉은사 대웅전. 앞면 5칸을 하고 있는 큰 전각으로 석축을 쌓는 방법이 궁궐 건축물 석축과 비슷한 형태이다. 궁궐 정전 월대 계단을 모방한 것 같은 대웅전 앞 계단. 답도 장식을 모방해 만든 장식이 계단 가운데 있다. 대웅전 문살. 대웅전 내부에는 불화와 ..

[서울 봉은사] 요사채인 선불당

봉은사 선불당은 대웅전 앞 마당 동쪽편에 위치한 한옥 건물인데, 전통적인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도들이 잠시 머물면서 교법을 닦는 곳이라고 한다. 봉은사는 1939년 화재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들이 그 이후에 세워진 건물로, 형태에 있어서 일제강점기의 한옥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요사채인 심검당이 있었다고 한다. 봉은사 출입문을 지나서 조금 걸어올라오면 정면 강당 오른편에 큰 한옥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봉은사 선방인 선불당이다. 전통적인 한옥건물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서울지역 한옥주택같은 건물이다. 건물규모는 앞면 8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로 지었는데, 전통적인 예법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대웅전 옆으로 스님들의 요사채가 있는데 ..

[서울 봉은사] 진여문, 법왕루, 종루

서울 강남 삼성동 무역센터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봉은사는 조선중기 불교를 중흥시킨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와 관련된 사찰이다. 봉은사 자체로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사찰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이 지역에 성종의 능인 선릉이 들어서면서 원찰의 기능을 했었고, 조선 불교를 중흥시킨 문정왕후 시절에 원래 사찰터에 중종의 능인 정릉이 조성되면서, 보우대사가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봉은사는 남쪽으로는 무역센터와 콘벤션센터 등이 있는 코엑스가 있고, 뒷쪽편으로는 경기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봉은사는 도심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산문인 일주문을 두고 있지 않고, 일반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출입문인 진여문에 목 사천왕상을 두고서 천왕문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진여문을 들어서면 몇기의 부도탑이 있고, 정면에 이..

하동 쌍계사, 대웅전

하동 쌍계사의 본전 건물인 대웅전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리고 조선후기 인조때 벽암선사가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국사 대웅전처럼 전형적인 조선후기 대웅전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쌍계사는 언덕에 자리한 사찰로 입구인 일주문에서부터 대웅전까지 여러개의 계단과 통로를 통해서 들어가며 높은 위치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어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동 쌍계사의 본전인 대웅전입니다. 계속 수리해서 그런지 새건물 같이 깨끗해 보이고 전형적인 조선 후기 대웅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바로 앞에는 넓은 마당이 없고 계단을 내려오면 경내라 할 수 있는 마당이 있고 그 가운데에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대웅전 내부의 모습입니다. 보통 사..

구례 화엄사 각황전 (국보),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목조건축물

지리산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화엄사의 건물들 중에서도 가장 유서 깊고 아름다운 건물이 화엄사 각황전이다. 사찰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중심불전인 대웅전과는 별도로 화엄사에는 각황전이 좌측에 자리잡고 있다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 형태를 자세히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통으로 되어 있는 건물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금당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화엄사는 부석사, 해인사와 더불어 화엄십찰의 하나로 원래는 금산사 미륵전처럼 3층 건물의 장륙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조선 숙종때 재건된 것이라 한다. 그 유명한 황룡사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아마도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인 장륙전이 임진왜란때 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으로나마..

구례 화엄사, 대웅전(보물)

화엄사는 화엄십찰 중의 하나이며,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다. 불교의 주류였던 화엄종 사찰 중에서도 해인사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 사찰 서쪽에 위치한 각황전은 초기 불교의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금당의 모습이 남아 있고, 사찰 경내에는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2개의 탑도 남아 있다. 그 중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사 대웅전으로 각황전보다는 그 규모가 작아 보이며, 경사가 있는 지형에 세운 건물답게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전망이 훌륭하며, 깊은 지리산 자락 아래에서도 앞이 틔여있어 구례의 들판이 보인다. 이 대웅전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이 끝나고 승병들이 임진왜란에서 큰 역할을 한 까닭에 불교가 크게 중흥될 때 세워진 건축물로 원래 화엄사의 가람배치와는 무관한 것..

[운길산 수종사] 차를 마실 수 있는 강당인 삼천헌과 요사채들

운길산 수종사에서 제일 유명한 곳인 강당과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이다. 강당은 삼천헌(三泉軒)은 공짜로 차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인데 차를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곳이라 삼천헌이 자꾸 삼천원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하산길에 삼천헌에 들러 차를 마시는 까닭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실례가 되는 행동이라고 한다. 삼천헌 옆으로는 한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절에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는 대웅전 좌.우로 두 곳이 있으며, 화려하게 만들지는 않고 있으며, 수행한다는 느낌을 주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운길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하산길에 차를 얻어 마시면서 유명해진 이 절의 강당격인 삼천헌. 차를 다 마신 사람들이 툇마루에 걸터 앉아서 휴..

운길산 수종사, 대웅전을 비롯한 불전들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는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암자같은 사찰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수종사는 조선초기에 중창한 사찰로 한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수양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 사찰로 보인다. 이 수종사의 중심불전은 대웅전으로 조선시대 사찰의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대웅전 외에 보조적인 불전으로 웅진전과 약사전을 두고 있으며 운길산 산신을 모신 것으로 보이는 산신각이 있다. 대웅전 왼쪽편 언덕에 위치한 웅진전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수종사가 수행 도량임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운길산 수종사 중심 불전인 대웅보전.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2칸의 평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건물을 세우지 않고 있어 한강의 두물머리가 있는..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들어가는 길

운길산 수종사는 남양주 운길산에 있는 조그만 사찰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터를 잡고 있다. 이 절은 양수리부근 북한강변에서 사찰입구인 일주문 앞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곳으로 산길이라 자동차로 올라가기에는 약간 험한 편으로 많은 사람들은 운길산 등산을 겸해서 큰길에서 사찰 입구까지 걸어서 올라오고 있다. 이 절은 산중에 있는 암자 규모의 사찰로 입구인 일주문에서 사찰 경내까지는 수목이 가득한 숲길이다. 정식 출입문으로 불이문이 있지만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주문에서 사찰까지는 약 10여분을 걸어 올라가는데 그 사이에는 숲이 우거져서 북한강이나, 두물머리의 경치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북한강과 두물머리의 아름다..

[계룡산 갑사] 진해당, 적묵당, 요사채

계룡사 갑사는 민가와 많이 떨어져 있는 계룡산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서 산중 사찰의 특징 중 하나로 많은 사람이 사찰에 묵으면서 수행할 수 있도록 스님들이나 방문객을 위한 요사채 건물들이 불전 건물에 비해 많이 있고, 규모도 크다는 것이다. 우선 경내 대웅전 좌.우로 진해당과 적묵당이 있으며, 진해당 뒷편으로는 크고 작은 요사채가 여러동 있다. 그리고 뒷편에는 수행공간으로 보이는 규모가 제법 큰 대적선원이 자리잡고 있다. 갑사 경내 오른쪽에 위치한 적묵당. 'ㄴ'자형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종무소와 갑사를 방문하는 손님이 묵는 곳으로 보인다. 갑사 경내 왼쪽편에 위치한 진해당. 내부에는 약사불을 모신 불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며, 뒷쪽으로 여러동의 요사채와 팔상전 등이 있다. 최근에 지어진..

계룡사 갑사, 대적전과 삼성각

계룡사 갑사에는 중심불전인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보조 불전의 성격을 갖는 명부전이나, 나한전 등을 두지 않고 있으며, 원래 사찰의 중심불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적전을 두고 있다.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원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이지만 이 곳 갑사의 대적전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화엄십찰의 하나인 관계로 아직도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전을 두고 있지만 후대에 와서 그 의미가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뒷편에는 칠성.산신.독성을 모신 삼성각을 두고 있다. 앞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대적전. 원래 이 곳이 갑사의 중심불전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며, 이 불전 앞에는 갑사부도가 세워져 있다. 비록 비로자나불을..

계룡산 갑사, 주불전인 대웅전

계룡사 갑사는 삼국시대 의상대사가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은 화엄십찰의 하나로 중부지역의 명산이 계룡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갑사가 화엄십찰로 지역을 이끄는 중심 사찰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지역의 경제력이 크지 않아서 그런지 사찰 규모는 명성에 비해서 작은 편이다. 이 사찰의 중심불전은 대웅전으로 원래의 위치는 개울 서쪽편 현재 대적전이 있는 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부지를 좀 더 넓히기 위해서 이 곳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은 임진재란시 승병장으로 참여했던 영규대사가 족적을 많이 남긴 사찰이라서 그런지 정유재란때 사찰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고 그 이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한 것이라고 하며, 그래서 조선후기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계룡산 갑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앞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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