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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259

[서산 개심사(開心寺)] 범종각과 범종, 연못

개심사 일주문에서 숲속길을 걸어 언덕에 오르면 첫번째로 보이는 개심사의 모습은 연못과 범종각이다. 범종각은 건물이 크지는 않지만, 축대위에 뛰어 나온 듯한 건물 배치로 인해 아래에서 보면 상당히 크고, 웅장해 보인다.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범종각이 중앙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강당으로 쓰이는 누각이 정면을 차지하는 것이 보통인데 비해서 개심사는 법고와 목어는 뒷쪽편 강당에 있고 범종각이 사찰 정면의 가장 웅장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서산 개심사 경내에 들어서면 보이는 광경인 범종각. 곧지 않고 약간 비뚤한 나무기둥을 사용해서 그런지 정겨운 느낌을 주고 있다. 서산 개심사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 중간에 나무다리를 놓아 연못을 지나서 몸을 깨끗히 하고 경내로 들어갈 것을 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

오랫만에 시간이 나서 오래전부터 한번 가 보고자 마음을 먹고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보기 위해 서산을 방문했다. 햇볕이 좋은 한적한 가을날에 이 곳을 방문하니 가야산 계곡의 아름다운 단풍이 우리를 맏아 주었다. 예전에 이 곳을 왔다가 사람이 많고 주차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 포기했던 기억이 있던 곳이다. 전 문화재청장 유흥준 선생이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극찬을 했던 장소인 이 곳은 한적할 때 찾아가니 그 극찬이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장소이다. 책에서는 마애석불이 비각안에 있어 이 곳을 관리하던 아저씨가 조명을 비춰주면서 설명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보호각이 제거하고니 석굴암 보호각을 봤을 때의 실망감은 전혀 없었고 자연스러운 햇빛에 노출되어서 다양한 모습 마애석불을 모습을..

[서산 보원사지] 석조(石槽), 보원사 규모를 짐작케 하는 통일신라시대 유물

서산 보원마을 보원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절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석조유물이다. 약 4톤을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보원사의 규모를 짐작케 해 준다. 화강암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형태로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사용했던 일반적인 석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원사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식수를 저장하기 위한 용기인 석조(石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다양한 방향에서 본 석조 석조 내부. 물을 빼는 작은 배수구가 있다. 보원사 금당터와 오층석탑이 있는 곳들 들어가기전 냇가에 위치하고 있는 석조 승서산 보원사터에 위치한 석조이다.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이 발견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던 곳이..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석불이 있는 골짜기에 자리잡은 보원마을에 위치한 절터인 보원사지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웅장한 멋을 지니고 있다. 장식은 거의 없으며 기둥의 윗부분을 둥글게 깍아놓아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한때 1,000명 이상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보원사지. 그 입구에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보원사지 당간지주. 뒷쪽으로 보원사지 5층석탑과 절터 발굴현장이 보인다. 측면에서 본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원사지 절터 발굴현장에서 바라본 당간지주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

영주 부석사 - 자연미가 뛰어난 아름다운 석축

부석사는 한국 전통 건축 특성이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으며, 태백산 자락 중턱에 석축을 쌓아서 조성한 사찰로서 독특한 공간구조를 만들고 있다. 부석사는 넓지는 않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찰에 들어서면 좁다는 느낌을 전혀 없고 석축으로 조성된 공간 앞으로는 막힘이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부석사는 석축은 천왕문을 지나서 시작해서 9단(혹은 10단)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며, 사찰 가람배치에 있어서 불교의 사상을 구현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현재 삼층석탑과 종무소가 있는 공간을 오르는 3단계 석축이 있고, 범종루을 오르는 3단계 석축, 안양루를 오르는 3단계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부석사 석축은 가랭이 공법을 이용하여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난 불국사 ..

영주 부석사 -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비로자나불상)

부석사 조사당을 지나서 숲속길을 조금더 걸어가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2두개의 불전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동쪽편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웅진전이 있고, 서쪽편에는 원래는 스님들의 선방이었으나 지금은 석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자인당이 있다. 자인당 내부에는 원래 부석사 인근 절터에 있었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비로자나불 석상 2구와 석불좌상 1구가 자리잡고 있다. 원래 같이 있던 불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3구의 불상을 한데 모아서 삼존불상으로 모시고 있다. 삼존불 중 동쪽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상. 서쪽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상 삼존불상 중 가운데 모셔진 석조불상. 비로자나불상에 비해서 후대에 만들어졌으나, 석가모니를 상징해서 그런지 가운데 모셔져 있다. 삼존불상이 모셔진 부석사 자..

영주 부석사 -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대표적 통일신라 석등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은 국보로 지정된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하지만 부석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량수전을 열심히 살펴보고, 뒷편의 부석을 보거난 안양루에서 본 경치에 취해서 이 석등을 놓치기 쉽다. 이 석등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많은 석등 중에서도 아름다움으로 손꼽히는 석등이다. 부석사 석등과 배례석. 안양문을 들어서면 무량수전 앞 경내에 있다. 부석사 물량수전 앞 석등의 화사석. 석등 화사석에 새겨진 보살상 석등 간주석. 아주 날렵해 보인다. 석등 간주석을 받치고 있는 하대석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에는 배례석이 석등과 함께 있어 완전한 석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수전 앞에서 내려다 본 석등과 안양루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

영주 부석사 - 범종루, 부석사의 중심을 잡아 주는 누각

영주 부석사에는 뛰어난 목조 건축물이 많은데, 그중 하나인 범종루이다. 범종루는 3번째 축대을 오르는 출입문 역할을 하기도 하며, 다른 건물과는 달리 특이하게 측면을 향하게 지어 놓고 있어서 부석사 건물 배치에 있어 중심을 잡아주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름은 범종루이지만 범종은 서쪽편 범종각에 별도로 보관되어 있고, 지금은 법고와 목어만 그 위치에 있다. 부석사 3번째 축대 위 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하는 범종루. 팔작지붕 측면이 남쪽을 향하고 있는 특이한 건물 배치이며, 일반적인 사찰의 범종루나 부석사 경내 다른 건물에 비해서 규모가 크다. 부석사 경내 중앙에 위치하여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건물이다. 부석사 범종루는 축대를 오르는 출입문의 역할을 한다.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라는 현판..

영주 부석사 - 인근 사찰터에서 옮겨온 삼층석탑

부석사 천왕문을 지나서 축대 계단을 걸어서 올라오면, 실제 부석사 전체의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부석사 경내에서 첫번째로 볼 수 있는 문화재로 부석사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보통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 마당에 위치하여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상징물인데 이 곳 부석사 삼층석탑은 종무원 건물과 같은 레벨의 공간인 범종각 아래 공간에 위치해서 의아해 했는데, 근처 다른 사찰터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크리나 모양, 석탑을 만든 조각 기술 등을 고려해 볼때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석사 삼층석탑은 조각이 섬세한 편은 아니나, 기단과 탑신의 비례가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에 속하며, 동.서 2개의 탑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부석사 삼층석탑의 2층 기단부. 부..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륭탑 사자석등 (보물)

충주에서 남한강 하류쪽으로 내려가다가 원주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청룡사지 보국국사정혜원융탑 사자석등입니다. 보각국사 사리탑의 불을 밝혀주는 석등으로 그 자체의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석등, 사리탑, 탑비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어 사리탑으로서 완성도가 높아 보입니다. 충주 청룡사지에 남아있는 유물인 국보로 지정된 보각국사정혜원륭탑 앞에 있는 석등입니다. 이 석등 자체만으로도 문화재로의 가치가 높아서 보물로 지정된 유물입니다. 사자석등의 불을 밝혀주는 화사석 아래로 3단의 받침돌이 있는데 제일 아래에 있는 사자조각상에서 이름을 따서 사자석등이라 불립니다. 비슷한 모양의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없은 것 같아..

국립 경주박물관 - 마당에 전시된 석재 유물들 (석탑 기단/탑신석/지붕종, 주춧돌, 불상대좌, 수조 등)

경주 박물관 뒷마당에는 국보인 고선사지 삼층석탑 주변으로 경주 지역에서 발굴된 많은 석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개별로는 완성된 문화재가 되지 못하는 석재 문화재의 부분들로서 석탑의 기단석, 탑신석, 지붕돌과 석등, 불상대좌, 건물의 주춧돌, 우물 윗돌, 수조 등 다양한 석재들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정리되어 있어 우리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들입니다. 석탑의 기단석, 탑신석, 지붕돌입니다. 그 크기로 보아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부속 자재로 보입니다. 완전한 석탑이 남아 있으면 국보급, 또는 보물급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불상을 올려 놓는 불상대좌입니다. 석등을 구성하는 지붕돌, 몸돌, 기단석입니다. 탑비를 구성하는 동물모양의 기단석입니다. 석등 기단석 같은 석재 유물입니다. 분황사지 ..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함께 초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입니다. 몸통은 원래 있던 자연암석을 이용했고 머리만 만들어 올린 것 같습니다. 토속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예술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은 부족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많지 않은 유물 중의 하나로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관 장군 묘역에서 국도를 타고 서울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인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입니다. 몸통은 원래 있던 자연암석을 이용했고 머리만 만들어 올린 것 같습니다. 토속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불상으로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입니다.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국도..

강화도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석불 - 강화 하점면 석조여래입상(江華河岾面石造如來立像)

강화도 하점면 강화지석묘 서쪽편 야산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8m의 마애불입니다. 부근에 있는 오층석탑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고려시대 사찰인 봉은사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화강암에 새긴 석불로 장식이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내에 소재하는 문화재 중에 보물로 지정된 격이 높은 문화재이지만 워낙 홀로 떨어져 있는 문화재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은 아닙니다. 강화도에서 가장 유명한 강화지석묘와는 약 1 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강화지석묘 서쪽편 야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마애석불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이렇게 전각을 만들어서 그 안쪽에..

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

정림사지 본당 자리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입니다. 투박한 형태의 불상 모습이 관촉사 은진미륵 등 고려시대 석조불상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림사라는 절의 이름도 고려시대 절의 이름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

보은 속리산 법주사 - 범종각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옆에 자리잡고 있는 범종입니다. 법주사 범종은 조선 순조 4년(1804) 7월에 대시주 1명과 15명의 일반시주자의 시주를 받아 4천근의 동으로 제작된 청동종이다. 종신(鐘身) 하단에는 “가경구년갑자칠월일대법주사대종중사천근(嘉慶九年甲子七月日大法住寺大鐘重四千斤)” 이라는 명문(銘文)이 음각되어 있고, 시주자와 당시의 주지(住持), 만든이 등이 새겨져 있어 제작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종이다. 크기는 높이 212.5cm, 종신부 상단 지름 82cm, 종신부 하단 지름 140cm인데, 종신의 전체 선은 둔중한 편으로 양각의 횡선이 3줄 둘러져 종신을 크게 구획하고 있고 용뉴(龍뉴)가 쌍룡으로 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범종으로 종신의 문양이 약하게 표현되는 등 주조기법이 뛰어난..

익산 미륵사지 - 당간지주(보물)

익산의 미륵사를 지켜왔던 당간 지주입니다. 넓은 절터에 이 당간지주와 석탑만이 오랜 세월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백제시대의 영화로운 절이었던 미륵사의 흔적입니다. ☞ 익산 미륵사지 -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미륵사터의 남쪽에는 2기의 지주가 약 90여 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데, 크기와 양식, 조성수법이 같아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지주를 받치는 기단부(基壇部)는 완전히 파괴되어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는 상태이며, 약간만이 드러나서 그 원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지주는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익산 미륵사지 석탑 - 복원 현장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형식을 갖춘 독특한 형태의 석탑이다. 백제의 석탑기술을 볼 수 있는 석탑으로 지금은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가면 가림막속에 있는 복원 현장을 볼 수 있다. 석탑으로 쌓았으나 그 규모는 매우 크고 웅장하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현장 - 가림막의 크기가 지금도 6층 이상의 규모입니다. 내부에 들어가면 살짝 부분들만 볼 수 있습니다.석탑의 돌들을 모두 해체하여 하나씩 조립하고 있습니다. 외부에 있는 복제 미륵사지 석탑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백제 최대의 절이었던 익산 미륵사터에 있는 탑으로,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아쉽게도 반쪽탑의 형태만 남아 있다.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정확한 층수는 알 수 없다. 기단(基壇)은 목탑과 같이 낮은 1..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불상 -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으로 알려진 투박한 모습의 전형적인 고려시대 불상입니다. 이 커다란 불상이 논산평야를 굽이보고 있습니다. 별로 높지 않은 산에 있지만 워낙 평야지대라 사방이 시원하게 뚫려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으로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며 높이가 18m에 이르는데, 당시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높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이중의 네모난 갓 모양으로 보개(寶蓋)가 표현되었는데, 모서리에 청동으로 만든 풍경이 달려 있다. 체구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이며, 옆으로 긴 눈, 넓은 코, 꽉 다문 입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옷주름선이 간략화되어 단조롭다. 불상의 몸이 거대한..

평창 오대산 상원사 - 동종 (가장 오래된 종)

오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상원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을 보관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수없이 외웠던 이 동종은 깊은 산중에서 천년이상의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상원사 동종입니다. 상원사 동종을 지키고 있는 전각입니다. 동종을 지켜온 상원사 전경입니다. 현존(現存)하는 한국종(韓國鍾)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이 종은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24년(725)에 조성(造成)되어 조선(朝鮮) 예종(睿宗) 원년(元年)(1469)에 상원사(上院寺)에 옮겨진 것으로, 한국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범종(梵鍾)이다. 음통(音筒)이 있는 종뉴(鍾뉴) 아래에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鍾身)이 연결된 형태인데,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 있는 구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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