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259

장성 진원리 오층석탑, 정형화된 고려시대 오층석탑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탑의 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며 조각수법도 전성기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은 곳으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불교 사원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는 예배물이었지만, 고려시대 이후 불전에 모셔진 불상이 신앙의 대상으로 바뀜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석탑이 형식적인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석탑의 기단부는 2층으로 쌓아야 안정적인 모습을 하는데, 이 석탑은 원래부터 그런지 알 수 없지만 1층으로 쌓고 있으며, 기단부와 몸돌에 안상이나 불상 등을 전혀 새겨 놓지 않고 있다..

홍천 수타사 동종(보물 11-3호),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사인비구가 제작한 동종

조선후기 범종 제작에 뛰어났던 승려 사인 비구가 제작한 8점의 범종 중 하나인 수타사 동종이다. 조선후기인 1670년에 만들어진 이 종은 높이 110cm로 화려한 조각수법과 사실적이 표현이 특징이다. 이 동종은 종을 매다는 종뉴를 따로 만들어 몸체와 붙여서 제작하였다. 신라범종의 외형적.기술적 특징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맨위에는 범어를 새겨서 띠를 만들고 있고, 그 아래는 4구의 보살입상을 새겨 놓고 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에는 화려한 꽃무늬를 장식하고 있으며 맨 아래에는 다양한 문양을 새겨서 띠를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조각상으로 외형을 하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범종으로 최근에 만든 것처럼 보존상태가 완벽하다. 이 동종을 제작한 사인비구는 17~18세기에 활약한 승..

부여 무량사에 모셔진 매월당 김시습 부도

부여 만수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무량사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 중의 한사람이자 당대의 천재로 널리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내고 돌아가신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으로 그가 직접 그렸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사실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영정이 보관되어 있고, 사찰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에는 그가 죽은후 남김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여 젊은 나이인 21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다 간 그의 삶이 아쉬워서 그런지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그래서인지 그가 만년을 보낸 무량사 또한 그의 명성과 함께 크게 번창한 사찰로 보인다. 무량사 입구 마을에서 서쪽편 언덕에는 여러기의 부도들이 모여 있는 부도군이 있는데, 그 중에서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41호), 도심 상가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철당간

청주 남문로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청주목 관아 및 충청병영이 있었던 행정 중심지로 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는 넓은 청주벌판이 동쪽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철당간만이 남아 있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청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사찰로 보이는 용두사는 인근의 흥덕사나 사뇌사와 함께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금속활자를 비롯하여 금속공예가 크게 발달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당간은 절입구나 법당 앞에 깃발이나 괘불을 거는 것으로, 돌로된 지주대를 마주보게 세우고 그 사이에 철이나 돌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당간 몸체에는 당간을 세운 목적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글에는 '준풍3년'이라는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와 함께 청주호족과 학교 관련 내용이 있..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보물 1119호), 라마탑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석탑

창경궁 후원 춘당지 연못가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 석탑인 보물 1119호로 지정된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원래 창경궁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가져온 상인으로부터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1층몸돌에 이 탑을 세운 연대가 1470년대임을 알려주는 명문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탑은 우리나라 석탑은 아니고 중국의 것으로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탑은 팔각의 평면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3단의 바닥돌 위에 1단의 기단을 올려 놓고 그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워 올렸다. 1층 몸돌은 볼록한 형태이며, 2층부터는 목조건축물의 지붕처럼 전형적인 동아시아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부에는 각면마다 꽃무늬 등을 새겨 놓고 있다. 전체적으..

강릉 굴산사지 승탑 (보물 85호), 굴산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범일국사의 승탑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굴산사 옛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85호로 지정된 굴산사지 승탑이다. 이 승탑은 굴산사를 세운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팔각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 악기를 연주하는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윗받침돌은 연꽃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사리를 모시는 몸돌은 상대적을 작고 낮게 만들어졌으며 지붕돌은 상대적으로 크게 만들어 균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 진성여왕대에 활동한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라고 하는데 전체적인 구조나 조각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선종 9산 중 하나로 강릉지역을 대표하는 큰 절이었던 굴산사가 있던 곳이다. 굴산사는 ..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 (보물 360호), 정형화된 통일신라 탑비

새롭게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넓은 로비 공간을 경천사10층석탑과 함께 지키고 있는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이다. 제천의 월광사터에 있던 탑비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겨 놓아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로 머리.몸.받침이 온전히 남아 있고, 비례에 있어서 안정감이 있는 탑비로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서 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탑비는 통일신라 후기 승려인 원랑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리돌을 얹어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탑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랑선사는 당나라에 11년간 유학한 후 월광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 탑비는 헌광왕이 '대보선광'이라는 탑명을 내리고 글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글..

이천 안흥사지 오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는 안흥사지 오층석탑이다. 경기도 이천의 안흥사터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서 석탑 구성 요소의 비례가 표준적인 석탑의 비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조형미는 있어 보인다.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2층의 기단부는 1층은 낮고 2층은 높게 되어 있으며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은 높게, 그 위로는 낮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수법이 많이 남아 있는 석탑이다. 안흥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말이나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석탑의 크기도 크고, 구성요소간의 비율도 안정적이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보물 358호), 석탑 형태로 만든 승려의 사리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보물 358호로 지정된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이다. 이 사리탑은 고려말 승려인 보제존자의 사리탑으로 현재도 보제존자의 사리탑은 여주 신륵사 뒷동산에 석종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특히하게 그의 제자들이 석탑형태로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두개의 탑 형식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며, 아마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구성요소들의 비율의 통일신라시대 양식과 비슷해서 얼핏 보기에도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원주 천수사지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천수사지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다. 고려시대 석탑 중에서 많지 않은 쌍탑을 하고 있지만 5층석탑과 3층석탑이 1쌍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두개의 석탑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진 정형화된 가람배치를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 고려초 대표적인 호족인 경기도 광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하남 춘궁동사지에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과 비교해 볼때 그 규모가 작고 예술적인 미가 떨어져 보인다. 원래 원주 천수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 위치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오층석탑은 기단은 남아 있지 않고 5층의 탑신만이 남아 있는데 2층 몸돌부터 그 높이가 급격히 낮..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보물 282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이다. 원래 여주 고달사 절터에 있던 것으로 받침돌에 있는 웅크린 사자가 인상적이다. 화강암에 새겨진 조각상으로도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상으로 통일신라의 예술성과 조각기술이 남아 있는 고려전기의 유물이다. 이 석등은 높이 2.4m로 원래는 불을 밝히는 화사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나, 2000년 실시한 고달사 절터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상이 새겨진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2마리의 웅크린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받침돌에는 연꽃과 구름문양을 새겨 놓고 있으며, 화사석은 4면이 창으로 뚫린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이 있었던 고달사는 여주 남한강변에서 북쪽 강원도 원조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보..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보물 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보물 166호로 지정된 홍제동 오층석탑이다. 원래 홍제동 사현사터에 있던 탑을 도심확장으로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의 위치에서 전시중인 문화재이다. 전체적으로 탑이 많이 훼손되어 원래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며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다. 이 석탑은 후대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이는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여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형태로 기단이 없어서 어색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탑신 전체적으로 안정감있는 비례를 하고 있다. 1층몸돌에는 장식이 없고, 2층부터는 탑신 몸돌에 기둥과 문짝을 새겨 놓고 있다. 이 석탑을 세운 연대는 칠장사혜소국사비의 비문에 고려 정종 때인 1045년에 이 절이 창건되었다는 ..

김천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보 99호),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했다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국보 99호로 지정된 갈항사 삼층석탑이다. 경북 김천시 남면에 소재한 갈항사절터에 있던 두개의 탑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했던 것을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다가 현재 중앙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네모서리와 각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 몸달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동탑의 기단부에 통일신라시대 영묘사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글로 새겨져 있다. 이 탑에 모셔졌던 사리병과 법어 불경이 발견되었다. 이 석탑은 장식이 없고 약간은 정형화된듯하지만 석탑 각 부분의 비례가 뛰어나고, 당시의 석탑 양식이 잘 드러나 있어서 문화재로..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국보 100호),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 중인 석탑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국보 100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남계원칠층석탑이다. 원래는 경기도 개성 부근에 있던 석탑으로 탑신만이 경북궁에 옮겨졌다가 후에 기단부도 발굴되어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것으로 전체적인 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화된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으로 변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석탑에 비해서 1층기단은 약간 높아졌고, 2층 기단은 약간 낮아져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 삼층석탑을 벗어나 고려시대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라고 한다. 남계원칠층석탑은 2층의 기단부와 7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라석탑의 양식을 가지면서도,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으로 ..

[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 석불 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석불 입상이다. 왕릉을 구성하던 석물들과 부처상인 석불 입상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장면이다. 깊은 산중에 있어야 할 석불입상이 어떤 경유로 해서 이 곳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석을 깍아서 만든 것 같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석불입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석불입상들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조각수법의 섬세함이나 조형미 등이 뛰어난 편은 아니며, 단순하면서도 간략한 서민적인 모습의 불상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석불입상.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정형화된 형태를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로 보이는 석불입상. 2012년에 본 모습 원래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있던 석불입상이 박물관 정원에서 왕릉을 지키..

[중앙박물관] 보신각 종(보물 2호), 오랫동안 제야의 종소리를 들려주던 범종

오랜 기간동안 서울의 중심 종로 보신각에 걸려 있으면서, 전국민에게 새해를 맞는 기쁨을 알려주던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던 보신각 종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을 새로운 안식처로 삼고 긴 휴식을 하고 있다. 이 보신각종은 전형적인 조선초기 사찰의 종이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걸려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종이라 할 수 있으며, 서울시민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왔던 문화재이다. 보신각 종은 조선 세조때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신덕왕후 정릉 안에 있던 정릉사에 있었으나, 원각사로 옮겨졌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종루에서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높이 3.18m로 음통은 없고 2마리의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한다. 몸통에는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적혀있다.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종의 양..

나주 서성문 안 석등 (보물 364호), 고려초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석등

보물 364호로 지정된 이 석등은 원래 나주읍 서문 안에 있던 것을 1929년에 경복궁 정원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삼국시대 이래로 정형화된 8각형을 하고 있는 석등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이다. 복원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그 구조와 조각수법이 우수한편으로 전형적인 석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석등은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세겨져 있으며, 받침돌은 8각형으로 연꽃무늬를 새겼다. 직선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 8각형의 간주석에는 각면에 테를 둘렀으며, 그 안에 글씨를 새겨 놓고 있다. 화개석과 지붕돌, 상륜부는 없어졌던 것을 석등을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석등 받침에 고려 선종 10년(1093)에 이 석등을 세웠음을 기록해 놓..

개성 현화사 석등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현화사 석등은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석등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특이한 외형을 하고 있다. 현화사는 개성에 있었던 사찰인데, 석등의 규모로 보아서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는 높지 않아 보이고, 투박한 느낌을 준다. 석등은 불교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줌으로서 중생을 착한길로 인도하다는 의미를 갖는 공양물로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불상을 모신 불전 앞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석등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익산 미륵사지에 백제에서 만들었던 석등의 하대석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 이후 석등은 기본적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았으며, 고려시대 이후 4각형 석등이 많이 만들..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보 38호),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석탑

경주박물관 뒷편에 우뚝 서 있는 국보 38호로 지정된 고선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던 고선사 절터에 있던 것을 70년대 덕동댐 건설로 절터가 물에 잠기자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 석탑이 세워져 있던 절터에서 1914년 원효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서당화상비가 발견되어 원효대사가 입적한 686년(신문왕6)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높이 10.2m로 상당히 큰 규모의 석탑이다. 초기 신라 석탑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는 석탑으로 감은사지 3층석탑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은 여러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기둥..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사찰 입구 손을 씻는 물을 담아두는 석조와 우물 윗돌

석조는 사찰 입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원형 또는 직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다. 보통 하나의 큰 화강암 석재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하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석조에서는 원형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으나, 통일신라 이후 대부분은 직육면체를 하고 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는 연꽃문양이나 글씨 등을 새겨 놓는 경우도 있다. 석조는 당간지주와 함께 그 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경우가 많으며, 폐사된 옛 절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사찰에서 석조는 대웅전 등 불전이 있는 중심영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하고 있는다. 보통 석조는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샘물로 목을 축이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원래는 사찰에서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여겨지..

반응형